슬럼프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2020년 3월은 엉망이었다. 코로나, 시작은 그 녀석 때문이었지만 나는 안다. 결국 내가 나태했다는 것을.

나를 유지하던 그것들

나를 유지하던 그것들이 하나, 둘 무너졌다.

시작은 독서소모임이었다.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만나는 독서소모임은 코로나로 인해 만날 수 없게 됐다. 지난 몇 년 간 나를 유지하던 큰 그것 중 하나였다. 매달 책을 읽게 하고, 서평을 쓰게 하고, 의견을 정리하게 하고, 말하게 한 그것 말이다.

경영소모임도 만날 수 없게 됐다. 분기별로 경영 마인드를 일깨워준 그것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고, 직장인 마인드를 부수고, HBR을 읽게 하고, 쓰게 한 그것 말이다.

공식모임도 흐지부지됐다. 2020년에는 새로운 공식모임을 출범할 계획이었는데, 운영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니,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굵직한 그것들이 하나, 둘 무너지더니 작은 그것들마저 무너졌다. 간헐적으로 만나던 영감을 주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 이벤트가 됐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 그들에게 신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하던 콘텐츠를 놓을 이유는 충분했다. 들려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날 수 없으니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지 않게 됐다. 내 이야기를 뿌리고 싶지도 않아졌다. 어차피 만날 수 없지 않는가? 철저히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게 됐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게 되자, 내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사라진 그것들

솔직히 귀찮았다.

매일 아침 외우는 영어문장 10개. 업무시간 뒤 펼치는 개발 서적. 매달 읽어야 하는 독서소모임 지정도서. 매달 읽고 써야 하는 IT 칼럼. 또 매달 쓰는 와레버스. 분기별로 읽고 준비하는 HBR 경영소모임. 연 5회 공식모임. 내게 아이디어를 구하는 친구들과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 새로운 제안과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성장에 관한 욕심.

나태할 틈 없이 몰아치는 그것들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주말 밤 EPL 경기를 틀고 치킨을 먹을 때였다. 그마저도 늘어나는 뱃살을 쳐다보며 스트레스받았다. 나태해져선 안 된다는 욕심은 이때도 날 괴롭혔다.

물론 하루아침에 믿기지 않는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날부터 전미대학 대표선수에 선출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극적인 전환점이란 없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전환점이었다. 자잘한 승리들과 사소한 돌파구들이 모여서 점진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그다지 대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내 위치는 수년 전 내가 바랬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갖게 된 것 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많았다. 때문에 늘 불만족스러웠고, 갖고 싶었다. 그렇게 또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불편함은 나를 귀찮게 했고, 그런 불편함을 갖지 않은 이들이 한편으론 부러웠다. 그저 편함을 느끼는 그들이 부러웠다. 불편함이 한편으론 자랑스럽고 한편으론 귀찮았다.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바이러스가 내 귀찮음을 지워줬다. 사라졌으면 했던 귀찮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더 생각지도 못한 것이 귀찮음의 자리를 메웠다. 당혹감이었다.

내 시간을 메우던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자, 나는 마치 내 삶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텅 비어버린 시간은 마치 내 마음과 같았다. 텅 비어버린 공간에 홀로 남겨진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귀찮음과 불편함이 사라진 그 공간에 불안감이 채워졌다.

나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주변 모든 것에 불만이 생겼다. 짜증이 솟구쳤고, 화가 났다. 내가 망가지게 둔 모든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분노는 분노를 불렀고, 텅 빈 공간은 더 넓어졌다. 그리고 넓어진 그 자리엔 더 큰 불안감이 채워졌다.

화가 나거나 고통스럽거나 고갈되었거나 기타 등등의 일이 일어났을 때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는 악몽을 꿨다. 분노를 퍼내고 퍼내도 계속 채워졌다. 악으로 가득 찬 방 안에서 나는 웅크렸다. 악은 점점 커졌고, 나를 집어삼켰다.

며칠이 흘렀고, 역시나 난 혼자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웅크렸다간 돌이킬 수 없게 망가질 것 같았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읽고 쓰며 살았던 내가 왜 읽고 쓰지 않게 됐을까. 고작 몇 주 놓았을 뿐인데, 나는 왜 망가져 버렸을까. 그것들이 내게 단순히 그것이 아니었음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했을 때 빨리 되돌아온다. 빨리 회복한다면 습관이 무너진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상에서 한 달은 짧은 기간일 수 있겠지만, 어둠 속에서 한 달은 결코 짧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무료함 속에서 나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곳은 마치 현실 중력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를 공격하던 불안감이 있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뭔가를 계속 말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정말 그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다시 움직일 시간이 됐다.

습관,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그것.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저자는 작은 습관에 관해 이야기 한다. 작은 습관을 만드는 방법, 작은 습관이 바꿀 수 있는 것, 작은 습관을 크게 만드는 방법, 작은 습관을 유지하는 방법.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여러 고민을 봤다. 내 고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규범적인’ 사람들은 영웅적 의지나 자제력이 없이도 삶을 더 낫게 설계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유혹적인 상황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언젠가 동료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좋아하고, 게임도 안 하고.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나는 내 삶도 재밌다 답했지만, 정말 재밌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난 그렇게 되는 게 무서웠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즐기고, 게임만 하는 그런 인생이 되는 게 무서웠다. 여전히 그런 인생이 될까 봐 무섭다.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그대로 머무를 것 같아서다.

난 게임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엔 안 해본 게임이 없을 정도였다. 늘 게임만 했다. 그래서 난 맥을 쓴다. 맥에선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 게임이 안 되거든. 술을 마시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다음날 허탈감에 천정을 바라보는 게 무섭다. 그렇게 며칠간 속이 부대끼는 걸 느끼는 게 무섭다. 그래서 며칠간 아무것도 못 하는 게 무섭다. 그래서 술을 즐기지 않는다. 계속 즐길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만들었다. 매달 독서모임을 만들고, 주말에 나태하지 않도록 일요일 아침에 모임을 진행했다. 개발을 하면서도 경영 마인드를 유지하기 위해 경영소모임을 만들었고, 기자를 떠나면서 글쓰기 능력을 잃기 싫어 와레버스를 만들어 계속 글을 썼다. 집에 가면 퍼지기 때문에 업무시간 뒤 부족한 개발 공부를 했고, 이유 없는 술자리를 피했다. 뭔가 얻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을 곁에 뒀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친구들을 멀리했다. 그렇게 만든 그것들은 내 습관이 됐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결국, 그것들이 곧 나였다.

이 책을 쓰는 1년 내내 나는 새로운 시간 관리 전략을 실험했다. 매주 월요일에 내 어시스턴트는 내 SNS 계정들의 비밀번호들을 리셋해서 나를 각종 기기에서 로그아웃시켰다. 한 주 내내 나는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금요일이 되면 어시스턴트가 새로운 비밀번호를 보내주었다. 그러면 나는 주말부터 그녀가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 월요일 오전까지 SNS에 올라온 것들을 신나게 즐겼다.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불안감이 뭔지 이제야 알게 됐다. 불안감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늘 내 곁에 있었다. 단지, 불안감과 나 사이 그것들이 나를 보호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불안감에 갇혔다.

나는 불편함을 괴로워했지만, 불편함은 나를 지켜왔다. 불편함 덕에 나는 글을 썼고, 읽었다. 공부를 하고, 나눴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다가갔다. 내 욕심만큼은 아니지만, 늘 조금씩 나아졌다.

1퍼센트의 성장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잘하고 있었다. 내가 휘청거린 이유는 내가 뭘 잘하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만든 불편함이 날 무엇으로부터 보호했는지 이젠 안다.

다시 내가 만든 불편함 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불편해지겠지만, 불안감은 사라질 것이다. 꽤 적절한 시기를 엉망으로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시기는 상관없다. 불편함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된 것이 중요하다.

목표는 우리가 얻어내고자 하는 결과이며, 시스템은 그 결과로 이끄는 과정이다.

내가 만든 불편함이란 시스템이 이제는 썩 편할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슬럼프는 끝났다.

한줄평 ★★★☆☆

나를 만든 것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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