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쓴 서평이 어느새 190개가 됐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200번째 서평을 달성한다. 그리고 그 중 2회 독은 딱 한 권이 있었다.

한국의 기획자들은 내가 2010년 대학생 때 읽고, 2016년에 다시 읽은 책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고, 서평을 쓴 것은 이게 유일하다.

6년 만에 읽은 이 책은 다 읽고 나서야 읽었던 책임을 깨달았다. 그만큼 읽은 내용을 많이 잊고, 그만큼 새롭게 읽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피엔스는 두 번째로 2회 독을 마친 책이다.

2회독, 변한 건 나다.

STEW 독서소모임에서 이 책이 결정되고 살짝 실망했다. 이미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정보를 읽고, 배우기 위해 나는 늘 새로움을 찾았다. 때문에 이미 읽은 책은 내게 흥미 없는 종이였다.

어쨌든 사피엔스를 다시 펼쳤지만, 1회 독처럼 역시나 속도가 나지 않아 짜증도 났다.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데 같은 내용을 다시 읽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사피엔스는 2017년에 전자책으로 읽었다. 3년 만에 다시 전자책을 열자 몇몇 밑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 밑줄이 얼마나 신경 쓰이던지, 내가 읽었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에 30분씩, 그렇게 며칠 읽었을까? 세상에, 내가 이 책을 읽었었다고?

밑줄을 의식해서인지,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부분에 밑줄을 쳤는지, 또 다른 부분은 왜 밑줄을 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STEW 독서소모임의 장점으로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점’을 꼽는데, 3년 전의 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밑줄 친 분량 자체도 달랐는데, 3년 전에는 81개 밑줄을 친 반면, 이번에는 280개 밑줄을 쳤다. 3배가 넘는 곳에서 배웠으니 3년 전에 제대로 읽은 건가 싶었다. 분명 그때도 정독했는데 말이다.

글을 시작하며, 서평 190개를 자랑스럽게 적었는데 190권 중 과연 얼마나 소화했을까 싶다. 190권을 다시 읽어서, 190권 모두 새로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책을 안 사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변한 내가 다행스럽기도 하다.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래, 그게 더 한심스러울 것 같다.

이 정도 깊이 책을 2회독 하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시 3년 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 변화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정독을 2회 하고 나니 책값이 정말 아깝지 않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

책은 크게 4파트로 나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등이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인지혁명으로 많이 요약된다. 나 역시 1회 독 때는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2회 독에는 과학혁명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최근 관심을 두는 ‘자본주의’를 재밌게 봤는데 이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아무튼 사피엔스가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왔다는 것에 스스로를 되돌아봤고, 적절한 시기마다 과학의 힘이 성장을 증폭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무지를 인정하고 성장한 점에서는 내 커리어가 떠올랐다. 3년 전 나는 꽤 무거운 도전을 했다. 내가 독립할 수 있을지, 내가 비즈니스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사람으로 홀로 설 수 있는지. 즉, 나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했고, 싸웠다.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6만 ~ 7만 년을 “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중요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일축하고 싶어질 수 있다.

현재 내 캐릭터를 만든 것은 3~4년 전이다. 그때 배움으로 현재 모습이 됐고, 꽤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니, 다시 무지를 인정하고 성장을 위해 몸을 던질 시기가 곧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지를 인정하려면, 무지해져야 한다. 때문에 나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스스로를 무지의 늪으로 던진다. 새로운 사람을 보며 자극받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 작아진다. 그렇게 늘 불편함으로 나를 몰며, 성장을 향해 걸어왔다.

진보는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아이디어는 곧 경제용어로 번역되었다. 진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리적 발견, 기술적 발명, 조직의 발전이 인간의 생산, 무역,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스스로 ‘꽤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는 나태한 발언을 하는 지금, 사피엔스는 적절한 도서였다. 지금보다 무지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고, 지금 얻게 된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다.

성장을 위해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면, 지금이 꽤 적절한 시기다.

사피엔스 성장 동력, ‘자본주의’

최근 내 관심사 중 하나는 ‘돈’이다. 내 자산을 분배하고, 투자하는 등 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큰 자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관심을 둬야 하는 것에 공감했다.

STEW에서 투자소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있다. 이제 어떤 사건을 보면, 자본주의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했다.

인류의 경제는 근현대 기간 내내 어찌해서든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왔는데, 이것은 오로지 과학자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발견이나 장치를 들고 나온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 내연기관, 유전자 복제 양 같은 것을. 은행과 정부는 돈을 찍어내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사피엔스 역사에 자본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농업혁명으로 밀과 함께 정착하면서부터 인류는 자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일 걱정을 하지 않던 인류가 내일을 걱정하게 됐다는 것에서 자본의 함정에 빠졌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를 이용하는 방법 뿐이다. 난 산으로 들어가긴 싫거든.

자본주의를 깨닫고 나니, 지난 30여 년 간 어째서 늘 곁에 있던 이것을 몰랐을까 싶다. 심지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만 9년을 향해 가는데, 너무 늦었다 싶기도 하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어쨌든 사피엔스 역사는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더 행복한 방향으로 왔냐는 질문에 그렇다 답할 수 없는 게 슬프긴 하지만, 역사를 바꿀 수 없으니 미래를 만드는 것을 택해야겠다.

마무리

책을 읽는 내내 유발 하라리는 나를 무수히 많은 역사 속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내게 묻는다. 뭘 원하냐고. 아니, 뭘 원하고 싶냐고.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3년 전 그 물음에 ‘내 이야기’를 만들겠다 답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내 이야기’를 만들었냐고 물으면, 만들고 있다고 답하겠다.

이제 무엇을 원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더해서 ‘무엇을 원했는지’를 물을 차례다. 원했던 것을 얻었냐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해야겠다.

이제 나는 나에 관한 무지를 인정할 수 있다.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했던 것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나를 몰랐다 인정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장했다. 이제 나는 다시 성장할 자격을 갖췄다.

3년 뒤 내게 다시 묻고 싶다.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3년 뒤에도 무지를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줄평 ★★★★☆

사피엔스의 성장 동력은 ‘자본주의’다.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