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2018년 마지막 책을 읽었다. 본 책의 저자는 포르투갈의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자 사라마구’ 이다.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 속 부정세력에 맞서 싸우고 독재정권에 대해 우화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다양한 책을 집필했고, 특히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이라는 본능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부정부패 권력, 인간의 본성과 본능은 추악하고, 익명의 무서움 등, 
아무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없고, 
이기적인 행동만 더욱 하게 되는 인간들의 진짜 모습을 시대적 경에 맞춰 인간의 본질을 빗대어 말한다.

과거에는 특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하고, 더 심하게는 권력을 악용해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 사회의 이슈가 되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 속에서 발생하는 ‘성악설’과 연관되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얘기한다. 지금이야 경제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이 변화해 과거처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책의 내용처럼 상황이 안 좋아지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면 다시금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생존인 경우에는 나조차도 책에 나오는 수많은 눈먼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 속에서 남들을 과연 도울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성악설이 맞는 것일까?

[읽게 된 동기]

약 10년 전 군대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
어느 날 서점에 들렀는데, 책이 눈에 들어와 구매했고,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군대시절과 다르게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이해하고 싶어서..

[한줄 평]

일반적인 삶의 감사함을 느끼고, 볼 수 있음에 나 자신에게 감사함을 갖도록 해야겠다.

[서평]

10년 만에 다시 읽었던 책으로 다시금 나에게 재미를 선사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보게 되었다.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다르게 한 시간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스토리 전개와 흐름이 적절하게 구성하려고 한 노력이 느껴졌고, 보고 싶었던 책을 봐서 그런지 책을 읽고 난 후 개인적인 만족감도 컸다. 다만 멀리서부터 다가온 인간의 본성에 대한 아쉬움과 언제가 우리 지구에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올 수 있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된 점 외에는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볼 수 없다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하루아침에 원인도 모르는 백색의 빛만 가득하다면,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갖고 오는 공포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사실 백색의 공포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다만 양쪽 눈이 아니라는 점이 조금 다르지만, 한쪽 눈을 잠깐 잃었던 경험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약 한 달 동안은 두 눈 다 잃었던 것 같다. 우연치 않게 한쪽 눈을 크게 다쳤고, 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소 5개월은 눈을 감고 생활을 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백색의 공포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은 의사의 진찰과 소견에도 앞으로 계속 못 보게 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었다. 괜찮아 진다는 얘기는 사실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표현은 못했지만 두렵고 무서웠다.

또 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더욱 하루하루가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이 나에게도 안내자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먼저 희생을 했고, 도움을 주었다. 혼자서 반찬의 위치도 확인하기가 어려웠고, 숟가락과 밥그릇만 잡고 있으면 반찬을 올려주었고, 가끔은 머리도 감겨주셨다.

그녀의 희생은 의무인가 봉사인가

지금 돌이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매일매일 내가 보지 못하는 동안 나의 눈과 손이 되어 주셨다. 그때 눈 과 손은 평생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있을 수도 있고, 아들을 향한 사람의 힘일 수도 있다. 나는 그때의 어머니의 눈과 손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그러나 책에서의 그녀는 아들도 아니고 먼 가족도 아니다. 물론 자신의 남편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위해 희생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남들을 도와가며 나의 삶을 포기하기까지 그녀도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상황이 만든 의무 일 수도 있고, 희생과 봉사에 대한 마음에서 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결코 잊어선 안 될 일이다.

과연 나였더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남을 위해 내가 희생해보고 봉사했던 게 언제 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모습

나는 본성과 본질을 어떨까? 나도 극한의 상황에서는 악한행동을 저지를까? 나는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옳은 정답은 없을 것이다. 왜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할까? 답은 간단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악한 행동을 저지른다. 그 악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욕구이다.

인간의 악함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고, 또 권력을 남용하는데서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면접을 본적이 있다. 이직을 결심했고 우여곡절 끝 최종면접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나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갑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을에게는 법이 되고, 이행해야만 한다. 이를 지키지 않고 생각이 다를 경우 면접에서 미끄러지는 건 안 봐도 뻔 할 것이다.

사실 면접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면접관들은 갑이 아니고 면접자도 을이 아니다. 그러나 면접자들은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면접관의 사인하나와 점수 하나가 그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갑은 아니지만, 때로는 슈퍼 갑이기도 하다. 권력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이용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처럼 권력은 작은 곳에서부터 여러 다양한 곳에 두루두루 있다. 책의 내용 중에 암울한 환경에서도 인간은 권력을 얻고 권력을 이용한다. 권력이 도대체 무엇이고,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느끼는 힘은 어느 정도일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나도 나이가 먹어 어느 정도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권력을 갖고 있을 때, 과연 권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미래에 나에게 묻고 싶다.

[인상 깊은 문구]

– 눈이 먼 남자는 마치 눈을 뜬 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진하고 균일한 백색을 본다고 단언했다.
– 나도 데려가야 할 거에요. 나도 방금 눈이 멀었거든요.
–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 곧 우리가 누군지도 잊어버릴 거야, 우리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
– 모두 입 다물어, 조용히 해, 누구든 목소리를 높이면, 그냥 쏴버리겠다.
– 네 목소리는 잊지 않겠어. 나도 네 얼굴을 잊지 않겠어
– 그녀가 절망감에 사로잡혀 수도꼭지를 비틀자 마치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는 것처럼 물이 갑자기 분출하며 사방으로 튀었다.
– 불길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달빛이 다시 비춘다. 눈먼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의 이런 진지한 걱정을 보면 그런 자들의 선입관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 맨 앞에 볼 수 있는 누을 가진 여자가 섰고, 그 다음에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볼 수는 없는 사람들이 섰다.
– 이 도시의 눈먼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 참나, 눈을 감고도 오르 내릴수 있었던 계단인데
– 우리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두려워서, 늘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용서해 줄 구실을 찾으려고 하죠, 우리 차례가 될 때를 대비해 미리 우리 자신에 대한 용서를 구해놓듯이 말이에요.
– 이 모든 일이 아직도 꿈 같아요.
– 그는 소리쳤다, 눈이 보여
–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진히 그곳에 있었다.

책의 주인공들의 이름은 없다. 이름 없이 특징으로만 그들을 설명한다.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곳에서, 이름은 뭐가 중요할까.

나의 이름을 속여 말할 수 있지만, 나의 이름을 걸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 많다. 나에 대한 믿음과 내가 행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만 나를 알릴 수 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들은 눈 뜨기 전까지 자신을 알리고 말하는데 어려움이 컷을 것이다.

볼 수 있던 볼 수 없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불가능하겠지만 보이지 않아도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갖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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