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20대 초반에 읽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워낙 인기있는 소설이기도 해서 책을 빌리자마자 냉큼 다 읽어버렸다. 눈이 멀어버리는 내용이라 소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줄 평]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과 이기심을 적나라게 드러내 불편했지만 반성하게 만들었다.

 

[서평]

눈에 상이 맺힌다고 해서  본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눈이라는 기관으로 보는 것은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뇌가 순간 잘못된 판단을 하면 우리는 같은걸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즉 착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는 경고 메시지

나는 평소에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일회용품을 마구 사용하고 버리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대량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상황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공간을 눈요기하러 보러 가면서도 이를 위해 깎이고 버려진 자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정작 내가 환경 보전을 위해 큰 일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조금이라도 덜 훼손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금 노력을 할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초기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수용된 정신병원 시설이 수용자들의 배설물,  시체, 먹고 남은 그릇과 음식물 등으로 오염되가는 모습이 인간이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에 오르면서 지구를 파괴하는 모습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농업의 발달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지구의 파괴 속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편리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만든 도시는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 지구가 생겨나면서 이뤄좋은 생태계가 파괴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훼손과 오염을 보지 않고 외면한 채 멋지게 구조화된 도시를 동경하며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건 우리가 눈이 먼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이 멀어버렸다

소설 속의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정작 봐야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만 더듬거리고 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본능에 충실해 허기진 뱃속을 채우고, 성적 욕망을 채우고, 불편한 뱃속을 비운다. 우리는 본능적인 모습을 잘 차려진 음식으로 둔갑시키고,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적이거나 숨겨진 공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고, 배설물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즉시 잊어버린다. 그리곤 우아하고 품위있게 행동한다. 더럽고 추악한 일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짓밟고 착취를 하지만 이를 정당화 시키려는 구실을 찾았다.

마지막 남아있던 양심마저 눈이 멀어버렸다

내가 환경 오염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을 하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양심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안과 의사의 아내는 우리의 마음 속 양심과 같다. 인간의 본능에 의한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주듯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양심은 봐야할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면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의사의 아내는 이내 눈이 멀어버린다. 양심이 눈이 멀어버린다면 과연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과연 제대로 보고있을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환경 말고 또 내가 보고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게 또 뭐가 있을까.

 

[인상 깊은 문구]

나도 데려가야 할 거에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어쩌면 눈이 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하야 해요.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나는 보고 싶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 가지고 눈을 뜰 수는 없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아가씨가 이제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이 아리는 거지요.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건가. 볼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몬 사람들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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