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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된 동기 ]


 

STEW 2019년 1월의 도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감이 강해지는 책.

[ 한줄평 ]


공포앞에서 인간과 사회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 서평 ]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던 남자를 시작으로 원인불명의 실명현상이 전염병 처럼 퍼져나간다.

처음 병동에 수용된 사람

무질서해지고 더러워 짐

점점 불어나는 인원으로 무질서해지고, 더러워지는 병동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

이 소설에서 안과의사의 아내는 어떤 역할일까? 인간의 선한 면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녀는 눈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돕고 남편을 돕는다.

한 무리의 불량배들 질서를 무너뜨린다.

불량배들은 그 음식을 강탈하고, 물건을 요구, 여자를 요구

안과의사의 아내는 불량배들의 우두머리를 아무도 몰래 죽인다.

불량배 위축, 다른 이들의 사기는 올라간다.

한 여자가 병동에 불을 지르는 사건 발생. 모두가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미 세상 모두도 눈이 멀어 버렸다.

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이 얼마나 잘 포장된 동물이었는지, 인간이 쌓아올린 사회구조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 남자가 원인불명으로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린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은 감기마냥 무서운 속도로 전염된다. 사람들은 원인도 모르는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상태가 되고,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은 인류가 공들여 쌓아올린 사회를 밀물 앞의 모래성 마냥 단숨에 붕괴시킨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을 크게 두개로 나눴다. 첫째로, 인간이 얼마나 잘 포장된 동물이었는지다. 사람들은 보통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서 말하곤 한다. 사람들은 동물보다 인간에게만 생명의 존엄성을 매우 크게 둔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고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든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이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위협과 공포앞에서 인간 역시 얼마나 나약하고,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추악함을 드러내는 동물인지를 드러낸다.

 

둘째로, 사회가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규율이 더이상 지켜질 수 없고, 의미가 없어지면서 사회는 붕괴한다. 인류는 생존의 안전망으로써 사회를 만들었고, 국가로 까지 발전했다. 이 소설에서는 ‘백색 실명’하나로 온 사회가 초토화가 된다. 사회가 우리의 생존을 절대적 보장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회적 안전망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이런 위기가 왔을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오.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에요.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에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 읽게 된 동기 ]


따뜻한 커뮤니티 STEW, 2019년도 첫번째 지정도서

 

[ 한줄평 ]


다 잃는다면, 나는 뭐부터 얻으려 할까?

 

 

[ 서평 ]


소설책을 평소 안 읽는 편이다.

STEW에서는 지난 12월에 처음 소설책을 지정도서로 읽었는데, 2월에 연달아 소설책이다.

덕분에 소설책을 읽는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들이 눈을 먼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나약한 존재다. 그저 눈만 멀어도 아무짝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게다가 눈은 굉장히 약한 신체 기관이다. 이토록 중요한 신체 기관이 사라졌을 때, 그러니까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쉽게 잃어버릴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래서 원하는게 뭐야>

최근 겪는 고민과 소설 내용을 함께 읽었다.

사회 생활 8년 차. 이제는 한 분야 전문가가 되거나, 다방면에 축적한 지식이 많아져야 할 시기다. 헌데, 생각보다 지나온 7년이 그다지 대단해보이지 않는다.

 

우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느샌가 방향성을 잃었고, 어딘가로 가고는 있지만 마지못해 가는 것이다. 헌데 가고 싶은 곳도 잘 모르겠다. 그토록 걸어왔는데, 어떤 길이 좋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눈이 먼다면 이런 기분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눈이 먼 것과 다름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에게 기대하는 눈먼 자들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음식과 위생을 바란다. 길잡이는 당연히 그녀 몫이다.

과연 그녀에게 그 많은 것을 맡기는 이유는 그녀가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아등바등하며, 움직여 봤자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가 볼 땐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가?

음식을 얻지 못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는 걸까?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행동은 의미가 없는 걸까?

 

볼 수 있는 의사 아내가 의미 없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의미가 없는 걸까?

 

<잃는다는 것>

어느새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게 됐다.

 

학창시절 갖고 싶었던 맥북을 가졌다. 아이패드도 가졌고, 얼마 전엔 애플워치도 샀다.

어렸을때 로망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도 샀다.

 

좋은 코트도 샀고, 가방도 샀다.

가끔 차를 빌려 타기도 하고, 피곤하면 택시를 타기도 한다.

 

도전을 하고 싶어 창업을 해보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이 궁금해 커리어도 바꿔봤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얻은 걸까?

잃은 걸까?

 

하나 둘, 내 주머니에 들어왔기에 얻은 것일까?

내 호기심과 버킷리스트, 만족감, 기대감 등이 사라졌기에 잃은 것일까?

얻는 삶은 행복이고, 잃는 삶은 불행일까?

 

얻으면서 잃고, 잃으면서 얻었다면

그건 잃은 걸까? 얻은 걸까?

 

<살아야 하나>

소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일까? 눈이 보이는 아내를 가진 의사일까?

새로운 보호자와 함께한 사팔뜨기 소년일까? 젊은 미녀를 얻은 노인일까?

눈이 보이기 시작해 집을 되찾을 흥분감에 젖은 첫 번째로 눈먼 남자일까?

수십 명과 쾌락을 즐긴 깡패 두목일까?

어쩌면, 가장 먼저 죽어버린 자동차 도둑일까?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하루하루 배달되는 음식에 연명하며, 할 수 있는게 없어 그저 먹고 자며,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뭘까?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

 

<무엇을 상상하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만나는 현실은 너무도 처참했다.

특히, 깡패 두목이 여자를 노예로 만드는 과정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주변에서 내가 읽는 부분을 보진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책을 덮어버렸다.

어느새 감정을 이입한 나 역시 그들처럼 삶을 위해 이동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왜 살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것을 갖게 됐지만, 갖기 전에는 행복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어떠냐는 질문을 해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눈이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가진 전부 중 행복의 기준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행복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도 중요치 않다.

어쩌면 살면서 기적을 만드는 것도 의미 없을지 모른다.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나를 지키는 것도 중요치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굴까?

 

끝나지 않는 재귀함수 속에서

기적이 아닌, 기적을 기다리며

 

눈을 뜨기 위해,

눈을 감아본다.

 

 

[ 인상 깊은 문구 ]


  • 최신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아까 말했던 대령이 눈을 멀었소. 지금은 아까 그 기발한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소, 이미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으니까. 그 사람, 태도 하나는 일관성이 있군.
  • 두려움은 실명의 원이이 될 수 있어요.
  •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 아마 인류는 눈 없이도 살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인류라고 부를 수 없을 거에요, 그 결과는 분명해요.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 부호를 생략하며 직, 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