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실 이 책을 베스트셀러에 놓인 것을 보고 산 것이 벌써 2018년이다. 2019년이 된지도 벌써 두달이 넘어가던 때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집어든 책이 바로 이 <검사내전>이라는 책이었다. 사실 이전에 읽어보려 시도했던 책인데, 처음에 저자 본인이 검사로서 해결했던 사건들을 나열하는, 단순히 자기자랑을 위한 자서전같은 생각이 들어 몇 쪽 읽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그렇지만 새해에 했던 다짐이던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를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체 벌써 3월을 맞이하게 되었던 나는 조급하였다. ‘이렇게 내 목표를 또 이루지 못하는 건가..’라는 불안감이 엄습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불안감을 없애고 의지를 다지자는 생각에 새해의 작심삼일을 하는 나에게 모토와도 같은 말인 New Year, New Me를 변화시켜 New Month, New Me를 만들게 되었다. 원활한 시작 위해 내가 읽으려고 사놓았던 책들 중에 가장 짧고 쉬워보였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엄청난 과소평가 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글을 쓴 김웅 검사는 자기소개글부터 자기 자신을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책에서 쓰여있듯이, 검사 회식에 빠질 수 없다는 폭탄주를 단칼에 거절하고 선배검사에게 폭탄주를 마셔야할 당위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조직의 문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질문을 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검찰이라는 조직은 법조계에서 상명하복의 끝판왕이라고 여겨지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살아남고 이렇게 책까지 펴낸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검찰에 대한 편견을 깨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통틀어 나를 포함한 많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하나 둘 씩 깨주면서 세상에 대한 소신 있는 통찰을 던진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저자가 검사로서 해결해야 했던 사건을 설명해주고, 그 사건들을 겪으면서 인간 저자가 얻게 된 통찰을 공유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성행한다는 사기사건부터 학교폭력 및 조직적인 성매매 사건까지 겪어보지 못한 사건이 없다고 느껴질만큼 많은 사건들을 다루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다보니 나도 모르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세상은 넓고 나와 다른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라는 점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생각구조와는 너무나도 달라 그런 행동이 가능하기는 할까? 라는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인 검사생활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김웅 검사는 자신이 치열하게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얻어낸 인사이트를 얻었다는 것에 자랑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전한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인간의 본성과 법의 특징,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 등 정말 근본적인 것이였으며, 그렇기에 그의 담담함은 나로 하여금 그의 통찰에 신뢰성을 더하였다. 사건사건마다 그가 보았던 인간의 본성에 많은 공감을 하였지만, 그가 보았던 법의 본질을 풀어놔주었던 마지막 챕터는 법조인이 되고 싶어하는 나에게 정말 인상 깊었으며 동시에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 중 가장 나에게 와닿았던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있어 법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법으로 인해 생긴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는 그가 했던 주장이기에 되려 신선했고 내 주의를 끌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통찰이었다. 그에 따르면, 분쟁을 다루는데 지금과 같은 절차를 가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 그 전에 있었던 대부분의 분쟁은 공동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사건 당사자인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가 논의 되었으며, 대화를 통한 사과와 용서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런 것에 반해 최근의 분쟁은 “lose-lose 전략”처럼 보인다. 민사사건에선 두 당사자들 막대한 피해를 겪는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당사자들의 속은 타들어감과 동시에 재정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부담이 가해진다. 오히려 소송으로 인해 득을 보는 것은 수임료를 챙기는 변호사라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형사사건에서는 특히 피해자가 입는 2차 피해 문제가 심각하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닌 국가에게 용서를 구하며, 또 피해자가 아닌 국가가 용서를 승낙하냐 마냐의 여부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린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는 커녕 형사소송 절차 속에 철저히 배제된다. 실제로 가해자들의 진정한 반성도 보지 못한체 상처를 안고 고통 받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낯선 모습이 아니다.
분쟁은 전문화되는 와중에 이를 다루는 법과 규범은 너무나도 느리게 변하고 있기에 현재 가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김웅 작가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회복적 사법”이라는 개념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소송보다는 당사자간의 자의적 노력을 공동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끌며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사과를 받고 가해자도 가해자대로 공동체로 다시 속할 수 있게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대립을 조화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가해자가 본인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적인 태도를 취해야한다는 것이 이 사법이 기능할 수 있는 일차적 조건이며 제도적으로 자리 잡기에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나, 정말로 효과적인 제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실제 형사소송은 아니지만 작은 민사소송으로 인해 법원을 드나들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함께 피고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을 바로 옆에서 봐왔던 나에게 회복적 사법이라는 개념은 한줄기 희망과도 같아보였다. 대립을 누구보다도 싫어하고 그렇기에 법조인이 되고 싶었던 나에게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사실 김웅 검사가 말했듯이 “법대로 하자”라는 것은 끝장을 보자는 뜻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기자는 뜻으로 통용되는 현실에 놓여져있고, 그러한 사실은 호기심에 시작했던 법공부를 하면서 내가 공감하기 싫으면서도 이해가 되었던 때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내가 법에 대하여 아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보다 최소 20년은 법공부를 더 했던 김웅 검사가 제안한다니 법을 소송에서 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충분히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김웅 검사와 나의 바람대로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어차피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분쟁을 더욱 수월하게 해결해 조금은 더 인간적인 사회를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행복한 고민이 든다.
[인상 깊었던 문구]
“이타심은 건물의 장식품과 같다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사회가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정의는 건물의 기둥과 같은 거라서 그것이 없어지면 건물이 무너지듯 사회가 무너진다고.” (p.135)
“우리나라 사람들은 웃는 것을 경박하다고 생각한다…..(중략)…그래서 자주 웃는 것은 출세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세상을 사는 데 웃는 것보다 더 좋은 비법은 없더라. 출세보다는 잘 사는 게 더 이득이다.” (p.147)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p.193)
“유엔이나 유럽연합 등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제도(형사조정)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세금 낭비라며 국가형벌권의 기초를 파먹는 두더지 취급이나 하는 것일까? 이런 비난에는 ‘법의 지배’와 ‘법기술자의 지배’를 혼동하는 엘리트주의가 숨어 있다.” (p.313)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공권력 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p.323)
“법만으로 세울 수 없는 것이 법치주의이고 국민의 신뢰다. 결국 국민들이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은 밥과 희망이다.” (p.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