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 조지 오웰, 『1984』, 문학동네
다 읽은 날짜 : 2019년 8월 24일
< 읽게 된 동기 >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원작이자 언젠가 읽고 싶던 문학 고전.
< 한줄평 및 별점 > ★★★★ ★ ( 5점 / 5점 )
1948년 조지 오웰 쓴 마지막 대작. 2019년 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 서평 >
‘1984’라는 책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누구나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그 소설.
거대한 얼굴의 포스터가 벽에서 그를 응시했다. 포스터는 아주 교묘하게 고안되어서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그 눈초리가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라는 표제가 그 밑에 적혀 있었다.(8p)
무표정한 얼굴의 절대자 ‘빅 브라더’는 항상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생각도 선택도 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은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될 뿐이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이 1984년쯤 펼쳐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소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원작이자, 영화 ‘이퀼리브리엄’이나 가이 포크스의 가면으로 더 유명한 ‘브이 포 벤데타’를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내용을 대강 알 수 있다. ‘1984’와 그 속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는 수세기 동안 수많은 문화에 파생되어 재생산되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당을 위해 일하는 외부당원이다. 그는 역사의 기록을 조작하고 조작한 증거를 불태우는 ‘진리부’라는 곳에서 일한다. 그로 인해 빅 브라더는 절대 틀릴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비교할 과거의 대상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윈스턴은 풍부부*의 숫자를 고쳐 쓰면서, 사실상 이건 위조라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단지 되지 않은 소리를 다른 종류의 되지 않은 소리로 바꿔놓는 일에 불과했다. 우리가 취급하는 대부분의 자료는 현실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노골적인 거짓말만큼도 상관이 없었다.(55p)
*풍부부 :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부서
진리부 슬로건인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이다. 조지 오웰은 1984년 빅 브라더가 현재를 지배하기 때문에 과거를 지배하고, 결국엔 미래까지 지배하는 세계가 올 거라 경고했다. 대한민국도 80년대 무렵 빅 브라더 같은 독재정권 속에서 민주화를 부르짖은 수많은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빅 브라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민주주의 국가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책에서 보았던 1984년과 대한민국의 2019년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하나 있다. ‘1984’에서 당은 무산자(당원이 아닌 자)는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 뿐이고 그들을 겁주고 괴롭히면 절대로 반기를 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 세대는 꽃피는 청춘에 80년대 독재에 대항했고, 우리는 2017년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인간의 존엄과 연대의 힘을 간과한 것이다. 시대가 흘러도 우리 안에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런 힘이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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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은 빅 브라더에게 불만을 품고 사상죄를 저지른 윈스턴 스미스를 잡고 고문하고 세뇌한다. 내부당원은 윈스턴에게 손가락 4개를 보여주고 당이 5개라고 말한다고 하면 몇 개라고 답할지 물어본다. 윈스턴 스미스는 4개라고 대답한다. 당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고문은 계속된다.
무엇이든 진실일 수 있다. 소위 자연 법칙이라는 것은 엉터리다. 중력의 법칙도 엉터리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비눗방울처럼 이 바닥 위를 떠다닐 수도 있어.” 윈스턴은 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그가 바닥에서 떠오른다고 생각을 하고, 그와 동시에 나도 떠오르는 그를 본다고 생각하면 그 일은 이루어지는 것이다.'(342p)
이것이 철학에서 나오는 칸트의 ‘인식론’이다. 칸트 이전에는 저기 돌이 ‘존재’하는 것을 내가 본다는 ‘존재론’이 대세였다면 칸트는 그 반대로 ‘내가 저 돌을 ‘인식’하기에 저 돌은 거기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철학의 전환점을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라고 말한 지동설과 비유된다. 개인적으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초등학생 시절 신체검사를 하면서 누구는 색각검사표에 색으로 그려진 숫자를 읽고 누구는 읽지 못한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 둘이 보는 색깔은 조금 다를 것이다. 우리는 같은 색을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미술 그 자체의 미와 함께 그 미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면서 새로운 미가 창조된다는 해석이 책을 읽는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의미 없어 보이는 추상화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나의 마음을 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변기에 자신의 서명을 하고 ‘샘’이라 칭한 마르셀 뒤샹도 우리에게 예술적 충격을 주어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가라고 평할 수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서는 맹인에게 대성당이 어떻게 생긴 지 가르쳐주려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은 열심히 설명하지만, 맹인에게 ‘대성당’의 모습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다. 맹인은 주인공에게 대성당을 같이 그려보자고 제안한다.
이제 눈을 감아보게나.” 맹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았다.
“감았나?” 그가 말했다. “속여선 안 돼.”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계속 눈은 감고.” 그가 말했다. “이제 멈추지 말고. 그려.”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게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중략)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내가 보는 이 물체는 존재하는 걸까? 내가 없다면 이 물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대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르게 본다고 생각한다. ‘빅 브라더’가 4개의 손가락을 5개라고 말한다면, 나는 4개로 보이지만 5개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4개라고 말해도 나는 고문을 당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나의 윤리적, 논리적 판단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양심의 자유’를 가지며 ‘빅 브라더’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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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19년에 사는 내가 ‘2184’년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아래는 조지 오웰이 1948년에 했던 상상이다.
텔레비전의 발전과, 한 번에 동시에 송수신이 가능한 기계의 발명으로 개인의 사생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시민들, 적어도 감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인물들은 하루 24시간 경찰의 시선 아래 있어야 하며, 다른 모든 통신망은 다 봉쇄된 채 정부 선전만 듣게 된다. 그래서 국가가 하자는 대로 완전히 복종할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의사를 획일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출현하게 되었다.(251p)
빅 브라더는 사람들의 집 벽면에 설치된 흐린 거울 모양의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구로 24시간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빅 브라더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지켜본다. 우리는 잠자는 순간에도 방심할 수 없다. 빅 브라더를 부정하는 잠꼬대를 하는 순간 사상죄로 재판 없이 증발해 버린다. 그가 존재했던 과거 또한 사라지며 그는 태어난 적도 없는 사람이 된다. 빅 브라더와 같은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싹을 자르려 노력한다. 과거에는 첩자를 통해, 지금은 해킹을 통해 말이다. 과학의 발전은 곧 감시의 발전이다. 자 다른 예를 들어보자.
2184년 서울. 나의 수면 주기를 파악한 AI(인공지능)가 나를 적절한 시간에 깨워준다. AI는 오늘 내가 할 일을 알려주고 입을 옷을 추천해준다. 집을 나서면 무인 자동차가 내 앞에 대기해있고, 나는 그 차를 타고 회사를 간다. 어쩌면 회사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봇이 나 대신 일을 할지도 모르니.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이 미소를 떠올렸다면 다시 읽어보자. AI를 빅 브라더로 바꿔서 말이다. AI 서비스가 나에게 정확한 정보를 추천하려면 나의 개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동의를 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의 고민을 AI에게 맡기고 자유를 스스로 박탈당한다. 이건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애플 “‘시리’와 나눈 대화, 계약업체 직원들이 들은 것 사과”(mbc)
우리가 흩뿌린 데이터가 곧 나를 말해준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쓴 글을 텍스트 마이닝(글자를 추출해 분석하는 기술)하면 내가 어떤 말을 많이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도 예측할 수 있다. 내가 검색한 가전제품은 곧 검색 사이트 잘 보이는 곳에 광고되고 나는 그 제품을 별 고민 없이 산다. 쇼핑몰에서는 내가 산 제품을 많이 산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른 제품도 나에게 추천한다. 나의 데이터를 많이 가질수록 나의 행동력과 구매력을 얻는다. 그 말은 고객의 데이터를 많이 가질수록 회사는 제품을 많이 알리고 팔 수 있다.
은행은 나의 금융 데이터를 독점한다. 내가 친구에게 100만 원을 송금하면 은행 서버의 내 계좌에 있던 100만 원의 데이터가 차감되고 친구 계좌에 100만 원의 데이터가 추가된다. 내가 100만 원을 송금했다고 해서 실제 돈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데이터가 움직인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은행에 100만 원을 요구하면 은행은 나의 데이터를 보고 돈을 주지 않고, 친구가 100만 원을 요구하면 은행은 친구의 계좌 데이터를 보고 돈을 준다. 우리는 은행을 신뢰한다. 아니 은행의 데이터를 신뢰한다. 은행의 데이터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면 우리는 믿을 것인가?
‘블록체인’이 그 대안으로 떠오른다. 블록체인을 쉽게 설명하면 내가 너에게 100만 원을 보낸 거래 기록을 나도 너도 그리고 다른 사람도 가진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기록을 일정 주기마다 암호화시켜서 블록으로 압축시키고 앞의 블록에 연결한다. 이처럼 거래 기록을 담은 블록을 체인처럼 잇는다고 해서 블록체인이라 부른다. 블록체인을 한마디로 풀자면 ‘암호화된 분산 장부’이다. 내가 100만 원을 보냈다고 주장하면 받는 사람의 장부나 다른 사람의 장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거래 내역을 위조하려면 장부의 51%를 위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이 접목된 기술이 ‘비트코인(bitcoin)’이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개발자가 비트코인을 개발했다. 비트코인의 핵심 철학은 ‘중앙집중적 권력의 개입 없이 작동하는 새로운 화폐 창출’이다.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화폐. 이것은 금융기관의 존재 이유인 ‘신뢰’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낸 엄청난 발견이다. 간혹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별개라고 말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책 ‘만화로 배우는 블록체인’에서 벌 이야기가 나온다. 꽃은 벌을 통해서 꽃가루를 옮기고 생식한다. 벌은 단지 꿀을 얻기 위해 일할 뿐이지만 그로 인해 꽃의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블록체인 거래를 확인해주는 ‘마이닝’ 작업을 완료하면 벌에게 꿀을 주듯 ‘비트코인’을 주어야 블록체인 생태계가 완성된다.
금융권은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이다. 익명의 통제할 수 없는 화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 규제가이드라인 권고안’을 내놓았다. 여기까지 읽으면 필자가 비트코인 예찬론자인가 싶을 것이다. 허나 나는 블록체인은 하나의 기술일 뿐이고 비트코인을 포함한 블록체인이 세상을 단번에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은 점점 빨라지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것이다. 이미 카카오페이 인증 서비스가 블록체인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신뢰의 인터넷’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뢰가 필요하다.
2184년은 나의 데이터를 독점하지 않고도 신뢰할 수 있는 사회일까?
< 인상 깊은 문구 >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그러나 빅 브라더의 얼굴은 화면에 몇 초 동안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눈에 와 닿은 충격이 생생하면 금방 씻어버릴 수 없듯이. 자그만 갈색머리 여자는 자기 앞쪽에 있는 의자 등판으로 몸을 굽혔다. 그러고는 떨리는 소리로 “나의 구세주여!” 하고 중얼거리며 화면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런 다음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기도를 중얼거리고 있음이 분명했다.(25p)
독재자 빅 브라더의 출현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
일기장은 재가 되어버릴 것이고, 자신은 증발돼버릴 것이다. 사상 경찰만이 그가 쓴 기록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거 전에 읽어볼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종이쪽지에 끼적거린 필자불명의 글씨마저 쥐도 새도 모르게 꺼져버리는데 무슨 방법으로 미래에 화소연할 수 있단 말인가?
텔레스크린이 14시를 쳤다. 10분 안에 떠나야만 한다. 그는 14시 반까지는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희한하게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의 마음에 새로운 기분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그는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고독한 유령이었다. 그렇지만 좀 애매한 표현을 쓰는 한 그 발언은 지속될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은 그의 진실을 들려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신을 지니고 있게도 하는 것이다. 그는 책상으로 다시 돌아가 펜을 들고 써나갔다.
미래에게 혹은 과거에게, 사상이 자유롭고 인간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고 서로 고립되어 살지 않는 시대에게 – 그리고 진실이 죽지 않고, 이루어진 것은 짓밟혀 없어질 수 없는 시대에게.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빅 브라더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 축복이 있기를!(39p)
일기장을 통해 세계의 진실을 말하려는 고독한 주인공 .
(빅 브라더의 위엄을 높인 오길비 동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든 뒤) 윈스턴은 오길비 동무에게 특별훈장을 줄까 하고 생각을 거듭했다. 그런데 주게 되면 쓸데없이 까다로운 대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주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또 한 번 맞은편 집무실에 앉은 자신의 적수를 힐끗 보았다. 웬일인지 틸롯슨이 자기와 똑같은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판에 누구의 원고가 채택될지는 알 길이 없으나 자신의 것이 뽑히리라는 확신이 섰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오길비 동무의 존재가 이제는 사실이 되었다. 죽은 사람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산 사람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충격을 주었다. 현재까지 존재한 일이 없던 오길비 동무가 이제는 과거 속에 존재하고, 일단 날조 행위가 망각되면 그는 샤를마뉴 황제나 줄리어스 시저처럼 똑같은 증거 위에 확실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63p)
과거는 현재에 의해 창조되고, 날조된 현재마저 이중사고로 잊혀진다.
(당이 쓰는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주인공 친구의 말) “신어의 완전한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려는 데 있다는 걸 자넨 모르겠나? 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놓자는 걸세. 왜냐하면 그걸 나타낼 낱말이 없으니까 말이야.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하게 단 한 마디로 표현될 거고, 그 의미는 정밀하게 뜻을 나타내고 다른 보조적 의미는 지워져 잊게 될 테니까 말이야. 벌써 제 11판에는 그만큼 되고 있거든. 그렇지만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난 뒤에도 오래 이어질 거야. 해가 갈수록 낱말은 자꾸 그 수가 줄고 그러면서 의식의 범위도 계속 좁아지는 거지. 지금도 물론 사상죄를 범하는 데 이유나 구실은 붙일 수 없어. 그건 단지 자기 수련이나 현실 통제의 문제거든.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런 것마저 필요 없게 될 거야. 언어가 완성될 떄 혁명은 완수될 걸세. 신어는 영사고, 영사는 바로 신어야.” 그는 알 수 없는 만족감으로 덧붙여 말했다. “늦어도 2050년까지 우리가 지금 나누는 대화를 알아들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있을 것 같은가?”(69p)
언어가 인간의 생각을 만들기 때문에 언어를 장악하여 인간을 통제하려 한다.
당은 눈이나 귀로 잡은 증거는 거부하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당의 최종적이며 가장 본질적인 명령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위력이 자기 앞에 가로놓여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에서 지성인이라고 하는 작자들은, 그가 대답은 고사하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묘한 문제를 끄집어내 논쟁을 벌여 그를 손쉽게 굴복시키고 말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믿는 것은 옳다! 그네들이 틀렸고 그는 옳다. 명백한 것, 순박한 것, 그리고 진실한 것은 지켜져야만 한다. 자명한 것은 진실하며 그것은 사수되어야 한다! 세계는 굳건히 존립하며 그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허공에 뜬 물체는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말하는 기분으로, 또한 중요한 공리( 公理 )를 내세우는 기분으로 다시 글을 적기 시작했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 자유가 허락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여기에 따른다.(103p)
자유가 있다면 둘 더하기 둘이 다섯이라고 해도 넷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백은 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결국은 하게 될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거니까요. 당신도 별수 없어요. 놈들이 고문을 하니까요.”
“내가 말하려는건 자백이 아니야. 자백은 배신이 아니니까. 당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중요하지 않아. 감정이 문제일 뿐이야. 놈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건 정말 배신이지.”
줄리아는 그것을 거듭 생각했다. “놈들은 그럴 수 없어요.” 그녀가 결정적으로 말했다. “놈들한테 유일하게 불가능한 게 그 일이에요. 당신에게 무엇이고 자백하게 할 순 있어요. 무엇이든지요. 그렇지만 당신이 그 말을 믿게 할 수는 없어요. 당신 속까지 파고들 수는 없다고요.”
“그래.” 그는 약간 희망에 차서 대꾸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놈들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하진 못해. 만약 인간으로 머무르는 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 비록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해도 놈들을 때려 부수는 격이 돼.”(207p)
양심의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불가침의 본질적인 자유.
새로운 귀족 정치는 대부분 공무원, 과학자, 기술자, 노동 운동가, 선전 전문가, 사회학자, 교사, 언론인 및 직업 정치인 등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그 출신이 중류층 봉급생활자와 노동 계급의 상류층으로서, 독점산업과 중앙집권으로 인해 세계가 황폐해지자 한데 모여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과거 그들의 반대 세력과 비교해 그들은 덜 탐욕스럽고 덜 사치하는 반면 순수한 권력에의 갈망이 더 크고, 반대 세력을 타도하는 데도 더욱 적극적이었다. 이 마지막 차이점이 주가 된다. 오늘날 존재하는 전제자와 비교해보면 과거의 그들은 열의가 낮고 비능률적이다. 과거 모든 지배집단들은 언제나 어느 만큼은 자유사상에 감염되어 있고, 어디에나 엉성한 면이 남아 있고, 명백한 행동만을 문제 삼고, 자기네 국민들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된 것은 과거에는 어떤 정부도 국민을 계속해서 감시할 힘은 없었다는 데 약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은 국민 여론을 쉽게 조작할 수 있게 했고 영화와 라디오가 그것을 한층 더 진전시켰다. 텔레비전의 발전과, 한 번에 동시에 송수신이 가능한 기계의 발명으로 개인의 사생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시민들, 적어도 감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인물든은 하루 24시간 경찰의 시선 아래 있어야 하며, 다른 모든 통신망은 다 봉쇄된 채 정부 선전만 듣게 된다. 그래서 국가가 하자는 대로 완전히 복종할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의사를 획일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출현하게 되었다.(251p)
새로운 귀족 정치의 시작,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과학의 발전을 통한 감시!
(윈스턴을 고문하는 내부당원의 말) “두번째로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이란 인간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라는 사실이야. 인간의 육체 위에 군림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권력이지. 물질에 대한 권력, 그러니까 자네가 말했던 외적인 실재에 대한 권력은 중요하지가 않아. 물질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이미 절대적이니까.”
잠시 동안 윈스턴은 다이얼을 잊어버렸다. 그는 몸부림을 치며 일어나 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몸을 조금 뒤틀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물질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 그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은 날씨나 인력의 법칙도 지배를 못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질병과 고통과 죽음이 있는데 말입니다.”
오브라이언은 손짓으로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을 지배하는 걸세. 실재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거야. 윈스턴, 차차 알게 될 걸세.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없어. 눈에 안 보이게 할 수도 있고 공중을 날게 할 수도 있고 무엇이건 할 수 있어. 또 내가 원하기만 하면 비눗방울처럼 이 바닥 위를 떠다닐 수도 있어. 그러나 나는 원치 않네. 당이 그걸 바라지 않으니까 말이야. 자연 법칙에 대해선 저 19세기 식 사고방식을 버랴야 하네. 우리가 자연 법칙을 만들고 있으니까 말이야.”(325p)
물질은 인식에서 시작하고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면 물질을 지배한다(인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