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나의 철학 선생님에게 받은 책
한줄평
내 생에 첫 철학 책. 철학은 사치가 아니다.
서평
딱 한 달간 이 책을 읽었다. 10월 1일에 시작해 10월 31일에 마쳤으니, 정말 딱 한 달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다. 15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을 받고, 챕터마다 서평을 남기기로 하며 꾸준히 곱씹으며 읽었다. 초기 절반은 하루 한 챕터씩 음미하며 읽었지만, 절반이 지나고서는 시간이 촉박해 하루에 3 ~ 4 챕터를 보기도 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인생인 것을.
저자 김재인 철학자님은 나와 인연이 있다. 기자 시절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연으로 SNS에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다.([올스팀] 김재인 아름다운 철학자 “지속할 수 없다면, 아마추어다”) 조금 특별한 경험도 있다. 블록체인 스팀잇(Steemit)이라는 블로그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려 강의를 열었는데, 당시 나와 철학자님이 같은 날 강의를 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내가 앞에, 철학자님이 뒤에 하게 됐다. 수십 년 간 강의해온 교수님 앞에서 부끄러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떨렸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수십 명 앞 스피치 경험은 많지만, 교수님 앞에서 강의라니… 덕분에 강한 담력을 얻게 됐으니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인터뷰를 보면, 철학자님이 철학 입문서를 저술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쓰고 있으니 책 나오면 보라고 했는데, 세상에 책이 나왔다며 싸인을 해서 내게 보내셨다. 그간 감사하게도 많은 저자분이 내게 싸인본을 주셨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더 감동했다. 그렇게 감사함을 표하고자 챕터별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15 챕터 서평, 꼬박 한 달간 함께한 <생각의 싸움>
책 자체는 엄청 두껍진 않다. 400페이지긴 하지만 책 크기가 크진 않고, 챕터가 많아 틈틈이 읽으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처음 읽는 분야인 걸 간과했다. 생각보다 진도가 더뎠다. 어떤 챕터는 읽고, 쓰는 데 2 ~ 3시간이 걸렸다. 퇴근 후 하루 여가를 꼬박 사용했다.
10월에는 특히 바빴다. 커뮤니티 STEW 일을 더 벌이기도 했고, 본업에서 별도 학습이 필요했다. 이래저래 치이며 한 달을 보내면서도, <생각의 싸움>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 없었다.
감사함을 표하려 시작했지만, 감사함만으로 진행하진 않았다. 사실 내게 서평을 부탁하지도 않았고, 혼자만의 다짐이었기에 그만둬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챕터별 쓰기를 지속한 것은 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시작한 블로그에 서평을 약 170개 정도 썼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10년간 약 200권을 읽었다. 그중에서 챕터별로 서평을 쓴 것은 처음이다. 약 200권 만에 도전인 셈인데, <생각의 싸움>이 아니었다면 중도 포기했을 것 같다. 꽤 적절한 포맷과 적절한 깊이, 적절한 문체였다.
특히, 실제 대화를 나눠 본 저자의 책이라 대화체로 설명하는 부분에서 철학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터뷰 외에도 강의, 밋업 등을 함께 다녔기에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문체가 적절한 것은 그 이유였다.
원래 철학책이 그런진 모르겠지만, 내겐 독특한 포맷이었다. 각 챕터 도입부는 해당 철학자의 삶을 소개했고, 이후 철학자가 집중한 문제를 소개했다. 그리고 철학자가 쓴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저자가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팟캐스트에서 진행한 문답을 풀고, 철학자의 텍스트를 넣었다. 각 챕터가 강의 하나였다. 입문서로 참 적절한 포맷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깊이다. 입문서임에도 내게 적절한 깊이를 보였다. 사실 철학책은 말만 들어도 어렵지 않은가? 이미 번역서와 저서를 많이 쓴 저자이지만, 입문서를 쓰며 적절한 깊이를 고민했을 거라 생각한다. 수십 년간 강의를 했으니 그 경험치를 녹였을 것이다. 철학을 잘 모르는 내게 <생각의 싸움>은 철학 에피타이저로 적절했다.
그래서 철학이 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신은 무엇인가? 자연은 무엇인가? 자유는 무엇인가? 왜 그동안 그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을까? 누군가 일생을 살며 고민한 결과를 나는 볼 생각을 안 했을까?
누군가는 내가 고민하는 것을 지금 같이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이미 앞서간 누군가는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중 몇몇 천재들이 나름의 해답을 놓았다. 그들이 철학자고, 그들이 인류를 지금 방향으로 이끌었다.
철학자들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우주 과학, 생물학, 수학 등이 과거엔 철학으로 분류됐고, 지금 수학자, 과학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당시엔 철학을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꽤 많은 것을 포용했고, 단순히 ‘인문’이라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감히 철학을 정의할 순 없지만, 그래도 표현하자면 모든 도서 카테고리 상위에 철학을 두고 싶다. 철학이 뿌리가 아닌 학문이 있을까 싶다.
나의 철학 선생님, 김재인 철학자
더 많은 기록을 하고 싶지만, 물리적 한계가 아쉽다. 요즘 일을 너무 벌여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 둘 줄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시간은 풋볼매니저 게임을 켜고, 치킨을 먹으며, EPL 경기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풋볼 매니저를 켜본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주말에도 계속 미팅이 있어 집에서 치킨을 먹은 것도 이번 달에 한 번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서평에 쏟는 시간도 제한적이다. 더 많은 느낌을 남기고 싶지만, 어느새 내게 사치가 돼 버렸다. SNS를 줄이려 모바일 앱을 다 지웠다. 줄이고 줄여도 시간이 부족하다. 퇴근 후 마시던 맥주도 이번 달엔 마시지 못했다. 맥주 한 잔도 다음날 영향을 주더라고. 그렇게 시간을 쪼개 벌인 일을 마무리 하고, 본업을 보충하고, <생각의 싸움>을 읽었다. 아끼며 만든 시간이라 그런지, 무척 집중해서 읽었다.
<생각의 싸움>은 철학 입문서다. 책을 다 읽고 김재인 철학자님이 내게 여러 차례 말했던 ‘들뢰즈’가 궁금해졌고, 몇몇 철학자는 관련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먼저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난다. 내 캐릭터와 유사한 면을 발견했다. 내가 마음에 들 문장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데아를 만든 플라톤과 지속하는 시간 베르그손도 생각난다. 배움의 시작은 내가 뭘 모르는지 아는 과정 아닌가? 이제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됐으니, 철학. 시작할 수 있겠다.
훗날 내게 영감을 준 사람을 주제로 책을 쓴다면, 내 철학의 시작으로 김재인 철학자님을 소개하고 싶다. 열다섯 철학자를 배웠으니, 그중에 김재인 철학자님을 비유하자면, 내가 철학을 시작할 수 있게 그리고 따져 물을 수 있게 해준 사람. 탈레스라 하고 싶다.
사치스러운 시간을 기대하며 펼쳤던 철학책. 그 안에서 현실을 발견했던 한 달. 새로운 지식의 ‘맛’을 찾았던 <생각의 싸움>을 덮으며,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