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히 읽을 기회는 없었던 책이지만, 2019년 마지막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여서 읽게 되었다.
한 줄 평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서 얻은것, ……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정의에 대하여 다루지만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가 무엇인지 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정의란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 뒤,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답을 내리는 것을 유보시킨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목적론적 사고의 주장을 사례와 함께 다루면서 각자의 논리에서 각자의 변호를 들어보고 그에 대한 반론은 다른 입장에서 제기하는 것이 이 책의 구성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정의를 정의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대와 계층의 변화와 함께 정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며 이런 자신의 강의와 같은 논쟁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들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의 정의에 관한 사례들은 현재에도 통용된다. 한국의 경우 징병제 모병제, 올바른 대입선발제도, 소수우대정책, 빈부격차 문제 등은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한 토의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다. 이런 논의에서 철학적 논쟁은 보통 기저에 깔려있을 뿐 주요한 고려사항이 되는 경우는 없다. 거기에 더해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참여를 통한 논의가 아니라 단순한 다수결의 논리로 치환되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한적 논쟁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모르겠으나 사회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모든 제도가 금방 부작용을 드러내었고 해결되었다는 생각보다는 갈등을 그냥 덮어두고 지나갔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항상 이러한 한국의 정치 방식에 불만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정치논쟁에는 기본이 되는 철학이 부족하고 참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게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껏 압축적 성장을 겪으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도 많은 시간을 할당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이 철학적 논쟁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높이고 개인을 넘어 사회적, 도덕적, 목적론적 관점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민주주의가 오히려 논쟁을 막고 있으며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현재 한국의 가장 이슈 중 하나인 대입제도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제도의 변화에 따른 그 효과성에 대한 논의만 할 뿐 진적으로 대입이 목적하는 것이 무엇이고 대입의 공정이 무엇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논쟁을 하지는 않는다.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 사례에서 보듯 각 대학의 목적성에 과한 논의도 없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여론조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부는 해결책을 발표한다. 신문에서도 자극적으로 그 결과에 대하여 나누기만 할 뿐 사람들 사이 건전한 공론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이야기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모든 현상의 텔레스, 목적을 중시하였고 이를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발전시킬 수 있는 폴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에 대한 부분이 한국사회에서는 분명 부족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뤄낸 국가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논쟁없이 다수의 의견으로만 움직이는 사회는 일견 보기에는 괜찮아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소화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것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분명 글로써는 이해를 하지만 그 의미까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쓰고 있는 서평이 더욱 의미가 있다. 책을 덮은 뒤 24시간도 되지 않은 현재에 내 생각과 이해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후에 책을 다시 펼치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