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W 첫번째 모임, <지리의 힘> 팀 마샬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설레임의 문장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절망과 체념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모순은 이 질문이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듯 우리는 운명을 선망하기도 하지만 모든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부정한다. 나의 삶의 주체는 나이며, 모든 결정과 행동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가 운명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정해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서평의 화두를 ‘운명’으로 던진 것은 보통 운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환경’이 자주 회자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태어난다. 혹자는 이것을 ‘금수저’ 등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출발선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명백한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다름에 있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 또한 온전히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밀려난 사람들은 온전히 본인의 노력만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해야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해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듯 보인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서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일까?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 특유의 문화와 기질이 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 혹은 주어진 환경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문화와 기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견지할 수는 없다.
진화심리학 관련 책을 읽다가, 농업이 발달하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다. 동남아나 남미처럼 기후로 인해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생산성 증대와 효율성 제고에 대한 니즈가 높지 않기 때문에, 혁신보다는 안정을 택하게 되고 또한 높은 인구밀도는 낮은 인건비를 야기해 산업혁명의 필연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리와 기후의 영향력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4대문명의 근원지는 큰 강을 끼고 시작되었으며, 대부분의 국가들의 국경선이 산맥이나, 강을 경계로 나뉘어져있다는 점을 볼 때, 어디에서 국가가 시작되었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좋은 교육환경과 교통의 편리함을 확보하기 위해 강남의 집값들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처럼, 비옥한 땅과 교통의 요충지를 차지하는 것이 한 국가에게는 사활이 달린 중대한 문제일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경쟁들이 분쟁이나 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그러한 예는 ‘독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리의 힘>을 통해서 좀 더 명확해진 것은 각 대륙별, 각 나라별 지나온 역사들과 현재 처한 상황들이 우리의 생각이상으로 ‘지리’라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수많은 이해관계와 인과관계요소들 속에서도 유의미하고,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민으로 ‘한반도’라는 곳에서 살아오면서 어떤 영향들을 받았을까?
1. 사계절의 영향, 봄여름가을겨울과 눈, 비 등
2. 3면이 바다, 실질적으로 섬나라의 포지션
3.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들의 전략적 요충지
4. 과거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영향력
5. 불교 그리고 유교
등.
결국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들이고, 그로인해 형성된 문화와 기질 그리고 현재까지의 역사라고 본다면 이 또한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우리가 타고난 재능과 환경만을 믿거나 탓해서는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없듯이, 주어진 지리적 여건 중에서도 끊임없는 선택과 변화를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닐까..
실시간으로 정보가 오가는 글로벌 시대에 아직도 우리는 국제적인 사건에 대해서 판단을 할 때, 단편적인 모습만 보는 경향이 있고, 간단하게 정리된 이분법적인 사고를 통해서 사건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간편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인과관계가 얽히기 마련이며 이 또한 그동안의 역사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열린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그들에 대한 공부와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깊은 이해를 추구해야만 한다.
지리는 언제나 운명들을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