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참을 수 없다는 말을 아끼게 된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설정한 미덕 중 하나가 참을성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공존한다. 서로 다른, 모든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규율을 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참기만 하고 살겠는가?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분출하는 과정이 있기에 인간이 인간적이다.
이 책은 프라하의 봄, 소련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외치던 체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체제의 억압 속에서 모든 열망을 참으면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기에 주인공들의 철학적 고뇌는 더욱 진지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영원성이라는 무거움과 일회성이라는 가벼움 사이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지는 않았다. 인간과 역사의 모든 순간은 일회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에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4명의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갈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상황이기에, 조금은 과장되고 민망한 이야기가 많음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야만 한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래야만 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어떤 무거움으로 인해 인생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항상 고뇌한다.
토마시의 연인인 테레자는 사랑과 육체의 대상은 동일해야 한다는 Muss es sein을 인생의 당연함으로 생각하기에,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연인 토마시의 외도 행위로 인해 괴로움 속에 살다가 도망친다. 그리고 토마시의 사회적 추락으로 인해 시골의 트럭 운전사가 되는 과정에서 평안함을 느끼면서도 자책한다.
프란츠는 고리타분한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온 지식인이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 정조를 으뜸의 덕목으로 생각해왔고, 부인에 대한 존중은 여자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부인에게 내재한 여자, 즉 어머니였다. 하지만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사비나를 만나면서 배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무거움과의 배신을 택한다.
내 삶 또한, 나를 위해 살아가자 생각했지만, 결국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사회가 이상적으로 만든 이미지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이미지의 말과 행동을 하며,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내 안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일을 한다.
그렇다고 이런 무거움에 허덕이며 살지는 않는다. 무거움이 있기에 가벼움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표면적으로는 존재의 무거움이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시간이 있다. 나 또한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정신이 가벼워지는 행위를 한다. 이 밸런스가 있기에 자아는 성숙해지는 것 같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Muss es sein과 반대되는, 존재의 가벼움을 표현하는 문장이다. 인간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행동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은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
토마시는 외과 의사의 Muss es sein인, 사물의 표면을 열고 들여다보는 행위를 넘어서고 싶어 했고, 그 욕망이 사랑과 육체적 관계를 별개로 생각하게 하여 수많은 여자에 대한 육체적 탐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곁에 있는 한 여자 테레자에게 Muss es sein을 느낀다.
사비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살았다. 그랬기에 사비나에게는 배신, 즉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불렀고 이 끝나지 않는 배신 끝에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가장 완벽한 연인이었던 프란츠 또한 배신한 사비나에게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N극과 S극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랑하면서 행복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괴롭다. 이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단어는 인간이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게 하는, 삶에 대한 의지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간은, 연인은 서로를 밀고 당기는 자석과 같다. 자석은 같은 극은 서로를 밀어내지만 다른 극은 서로를 당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봤을 때, 사랑이 실패하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싸우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나에게 없는 모습을 가진 누군가이다.
이 책에서 토레시와 테레자 / 사비나와 프란츠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와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을 욕망하지만, 다르기에 괴로워한다. 이 모순이 사랑의 매력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도 같은 논리인 것 같다. 무거움은 가벼움을 갈망하고, 가벼움은 무거움을 원한다.
책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존재라는 단어 자체는 무거움을 뜻하고, 참을 수 없다는 말은 두 단어 무거움과 가벼움은 서로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뜻 아닐까?
리허설뿐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리허설뿐인 한 편의 연극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하고, 연극은 계속 이어져야 하기에 또다시 나아간다. 리허설이기에 인생의 무의미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연극보다는, 리허설이 주는 실패 속의 깨달음, 피와 땀이 주는 쾌감, 가벼움 속의 무거움, 무거움 속의 가벼움이 주는 시간 또한 아름다운 것 같다. 끊이지 않는 다음 리허설을 위해.
한 줄 평
참을 수 없이 어렵지만,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책
인상 깊은 문구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Ja, es muss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 p13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 p17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p28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 p87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재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 p93
꿈은 커뮤니케이션일 뿐 아니라 미학적 활동, 상상력의 유희이며, 이 유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하는 것, 없는 것을 희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다 – p105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34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 p143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브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p152
첫 번째 배신은 그 연쇄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들을 야기하며,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 p157
이 어둠은 우리들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성이다… 사비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아 자기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어둠은 무한성이 아니라 다만 그녀가 보는 것과의 불화,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 보는 것의 거부만을 의미했다 – p161
삶이 잔인했기에 공동묘지에는 항상 평화가 감돌았다 – p174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해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 p187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p202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 p226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17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토마시는 이 100만 분의 1을 발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으며, 그의 눈엔 이것이 바로 그의 여자 집착증이 지닌 의미였다… 따라서 그를 여자 사냥에 내모는 것은 관능의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정복(지상에 머무는 육체를 메스로 개봉하고자 하는)하려는 욕망이었다. – p321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 p358
그는 자신이 언제라도 행복의 집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언제라도 꿈속 젊은 여자와 함께 사는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떠나 테레자, 그로테스크한 여섯 우연에서 태어난 그 여자와 함께 떠나기 위해 자기 사랑의 “es muss sein!”을 배신할 것을 알았다 – p385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부른다 – p399
테레자의 꿈은 키치의 진정한 기능을 고발한다. 키치는 죽음을 은폐하는 병풍이다 – p410
그녀는 이 노래에 감동하지만 자신의 감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노래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 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p415
키치의 원천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다… 정치 운동은 합리적 태도에 근거하지 않고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들에 근거하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정치적 키치를 형성하다… 좌익인사를 좌익 인사답게 만드는 것은 이런저런 이론이 아니라 어떤 이론이라도 대장정이라 불리는 키치 속에 통합하는 능력인 것이다 – p417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p439
잊히기 전에 우리는 키치로 변할 것이다.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 p455
사람들에게는 힘 있는 자들 중에서 범인을 찾고 약한 사람들 속에서 무고한 희생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 테레자의 약함은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아 그녀 품에서 토끼로 변할 때까지 매번 그에게 타협을 강요했던 공격적인 약함이었다. – p502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승픔의 공간을 채웠다. – p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