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2020년의 혼란을 예측하다
2020년 마지막 날, KBS에서 2020년 1년 동안 전 세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 상영 중이었습니다. 저 모든 것들이 365일 안에 일어난 것이 놀라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한 해더군요.
민족주의의 심화, 코로나 19 팬데믹,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한 각종 시위,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유혈사태. 1년에 하나씩 와도 벅차게만 느껴질 일들이 매달 찾아오는 진기한 경험을 한 것이죠.
이렇게나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대학원 수업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 세계화의 위기 등을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런 위기들을 목격하니 적잖이 당황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살고 사회문제 앞에 나와 직접 대면하고, 상황을 분석했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분명 2018년에 쓰인 글이지만 이미 2020년을 미리 보고 온 건가 싶을 정도로 현재 상황에도 적절한 주제 선정과 통찰력을 보여줬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인간의 권위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단연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식상하게 들릴 정도로 이미 많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 권위가 이동하는 문제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단순히 4차 산업혁명이고 일자리가 없어지고의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이죠.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대량 실업의 위험과는 별개로도, 우리가 훨씬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인간의 권위가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특히 유발 하라리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파악하는 존재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요. 그러한 점이 너무나도 편한 나머지 우리가 의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내가 직접 찾아보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추천해줍니다. 또 글을 기재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알고리즘 검색 최적화를 시킬까 는 고민도 하기 마련이죠.
광고 사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객은 사람이 아닌 일개 알고리즘, 즉 구글 검색 알고리즘이다. 사람들은 이제 웹페이지를 디자인할 때 어떤 사람의 취향보다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취향에 더 신경을 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했던 나머지 포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인간의 권위를 알고리즘에 나서서 양도하고 있던 것이죠.
그것도 모자라 편리함에 눈이 멀어 제 데이터를 여기저기 공유하기까지 했으니, 알고리즘이 권위를 가지는 데에 나름 혁혁한 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섬뜩한 일이기도 하고요.
인간은 가축화한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중략)…우리는 지금 거대한 데이터 처리 매커니즘 안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며, 아주 효율적인 칩으로 기능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젖소는 좀처럼 인간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할 줄은 모른다.
데이터-젖소에서 탈출하려면 인간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데이터-젖소 탈출은 시작일 뿐입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의 깊은 본질에는 우리 인간적인 특성이 있는 것이죠.
문제는 결국 인간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을 통해 기술의 발전 이외에도 종교 분쟁, 테러리즘, 민족주의의 유행 등 2020년 우리 사회를 위협할 만한 주제에 대해 논합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종교나 기술이나 모두 그 자체로는 중립적일지 몰라도 그것들은 인간의 특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는 것이죠.
특히 유발 하라리가 말해준 종교는 이러한 특징이 너무나도 잘 드러났습니다. 유발 하라리에게 종교는 매우 특이한 존재인데요.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도 수천 년간 우리 인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하지만 종교가 장수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기능 때문이었습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인류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면서 자신의 힘을 유지한다는 것이죠.
이슬람교, 힌두교 혹은 기독교가 근대 경제 구조 위에 놓인 화려한 장식일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장식을 자신과 동일시할 때도 많다. 또한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이야말로 역사를 이끄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물론 종교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나 절에 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좋은 교리를 새기고 오고 가는 이유도 그 이유겠죠.
종교가 갈등의 대상이 되고 문제를 일으킬 때를 지켜보면 종교를 이용하는 “인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교라는 이야기를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결국 종교도 기술과 같이 쓰는 사람에 의해 좋게 활용될 수도 악용될 수도 있는 대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습니다. 거대 담론들의 문제가 결국 하나로 이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즉, 인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너무나도 거대해서 건들지도 못했을 것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교육과 명상, 21세기 우리가 가져야 할 무기
결국 인간이 가장 중요해서였을까요? 거시적인 담론들로 쉼 없이 달려왔었지만, 유발 하라리의 책 후반부는 모두 개인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부터 알려줬는데요. 그가 강조했던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현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비록 지금으로서는 세부 내용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변한다는 것만큼은 유일하게 확실한 미래의 진실이다
우리 개인의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알고리즘보다, 아마존보다, 정부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 그들보다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적인 레벨부터 인간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문제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올라서자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 이후 자기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능력 또한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인간적인 특성을 파악하기 쉬운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의 감정, 그리고 감정을 통해 전해져오는 물질적 감각을 살펴보면서 온전히 내 몸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또 이건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행위죠.
명상은 정신을 직접 관찰하기 위한 돋보기다. 자신이 명상을 하는 대신 다른 어떤 명상가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활동을 관찰만 하는 경우에는 명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성과의 대부분을 놓치게 된다.
사실 책을 처음 다 읽었을 때는 이러한 해결책에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이 모든 거대 담론 끝에 명상이라뇨. 처음엔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인간으로 귀결된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 중 하나인 나를 진정으로 탐구하기엔 명상만 한 도구도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도 유발 하라리의 조언을 따라보려 합니다. 바로 끊임없는 교육과 자기 재발명, 그리고 명상을 말이죠. 거대 담론들이 앞에 있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저 자신을 재발견할 좋은 무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