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
누구에게나 꿈 같은 세상이 존재한다. 현재를 버티게 해주는 마음의 기둥이자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인 꿈. 누군가에게는 로또일 수 있고, 사업의 성공일 수 있고, 자식의 행복일 수 있고, 끝없는 폭식일 수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꿈의 공간은 다르다.
내가 꿈 꾸는 천국은 이 책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월든에서 살았던 삶과 비슷하다. 정확한 내 유토피아는 신화 속 도시인 아틀란티스와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기억’에서 아틀란티스의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소유의 개념은 없으며, 직업의 개념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뛰어나다. 저자의 월든에서의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다면 아틀란티스였지 않았을까?
‘마주보기’
저자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 인생의 본질을 직면하기 위해 월든에 들어갔다.
나는 내 인생의 홀로서기를 위해, 나와 마주보기 위해 자취를 시작했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이 책은 자취를 시작하는 시점과 함께 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 비록 그 의도의 무게는 다르지만, 가족의 보살핌에서 떨어져 나와,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자취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고, 더 나아가서는 내 인생을 마주보는 태도가 바뀌었다.
저자는 ‘월든’을 읽어야 할 독자를,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욕심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나 또한 누군가와 비교하고 내 현재를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있다. 자취방을 구하면서 느낀 부동산의 현실적인 벽과, 부족한 재정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는 등. 그래서 나는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을 읽어야하는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다.
그리고 읽기 쉽지 않은 이 책을 정독한 끝에 저자가 선사하려는 선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주보기의 전환이다.
삶은 마주보기의 연속이다. 한 방향으로 바라본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안 좋은 쪽만 마주보기 때문에 불행하기 시작한다. 내가 마주보는 수없이 많은 행복한 면들을 다시 마주봐야 한다. 내가 한 방향으로 바라봤던 오해와 착각들이 얼마나 짧은 관점이었는지 깨달았다.
저자는 책에서 호수와 나무, 동물, 꽃, 태양, 바람 등 모든 것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창의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처음에는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책의 막바지에 와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니 모든 글이 새롭게 보였다. 저자는 우리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과하게, 창의적으로 생각하듯, 이 과정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입한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바로 적용해봤다. 아침 햇살을 웃으며 바라보고, 노래 소리에 몸을 흔들고, 설거지에 리듬을 타며, 거리의 활력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매일 산책하는 탄천에서 바라보는 하늘, 꽃, 하천, 나무, 가로등, 다리 등 모든 것이 나를 기분 좋고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다시 마주보고 나서 알게 됐다.
‘솔직히’
솔직히 말해서, 난 평범한 사람이다. 위인전을 읽는다고 위인이 될 수 없는, 월든을 읽었다고 소로우처럼 살아갈 용기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집의 노예가 되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적당한 내 집을 갖고 싶고, 차는 사치라고 생각 하지만 캠핑을 다닐 수 있는 SUV를 가지고 싶고, 자연속에서 살고 싶지만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할 수 없어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 p40
끝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위로의 말이 아닐까 싶다.
난 평범한 내 삶을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이 있다. 그 불안감은 성공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라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원천적인 불안인 것 같다. 어떤 삶이 성공한 것이고, 실패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 저자의 말은 비교와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매일 읽어야 할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행복은 자신에게 있으며,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항상 놓치는 부분이다.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발 밑에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나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모든 것은 거짓이 된다.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다.
나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는 것은 나임에도 주변의 상황과 사람을 탓하곤 한다. 변명일 수 있지만 이것이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인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 p258
길을 읽고 나서야, 내 오류를 깨닫고 나서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바라보고 다시 발전할 수 있다. 비록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방어를 위해 현상을 회피하고 무시한다면 절대 발전할 수 없고, 인간이 인간적일 수 없다.
주변이 변했다고 생각이 들 때, 내가 변한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겠다.
내가 다음으로 제외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 상황 속에서 자극과 감흥을 발견하며 연인들 사이에나 있을 법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인데 – p35
저자가 이 책의 독자에서 제외한 한 유형이다.
현대 사회와 고통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누군가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고 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고 느끼는 삶을 만들어가야겠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통찰을 선사해준 저자에게 평생 잊지 않겠다는 감사를 표하려 한다.
한 줄 평
행복은 가까이 있다. 이 책은 이 문장에 확신을 준다.
인상 깊은 문구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이다 – p22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 p22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한 시간 동안에 세상의 모든 시대를, 아니 모든 시대의 모든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시, 신화 등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하여 읽어본 그 어떤 것도 이만큼 경이적이고 유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 p27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 p32
나 역시 하나의 바구니, 올이 섬세한 바구니 하나를 엮어 놓았으나 그것을 남이 살 만한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경우에 그 바구니는 역시 엮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남이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팔지 않아도 될 것인가를 연구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 p40
그런데 그 여자 재봉사가 나의 성격은 재지 않고 마치 외투를 걸어둘 나무틀이나 되는 것처럼 나의 어깨 넓이만 잰다면 나를 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미의 세 여신’이나 ‘운명의 세 여신’을 숭배하지 않고 유행의 여신을 숭배하고 있다. – p48
만약 문명이 인간 상황의 진정한 발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문명은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 보다 훌륭한 주택을 마련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비용은 당장에 혹은 궁극적으로 사려는 그 물건과 바꾸어야 할 ‘생명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 p55
우리들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의 면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 p58
매일 한 번씩 이것들의 먼지를 털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겁을 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가구의 먼지도 아직 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데 -p 62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배가 고프면 마음대로 과일을 따먹던 인간이 이제는 농부가 되었고, 나무 밑에 들어가 몸을 가렸던 인간이 주택의 소유자가 되었다. 우리는 야영하면서 밤을 보내던 생활을 청산해버렸다. 땅 위에 정착하고 나서 하늘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기독교를 단지 진보된 토지 개간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현세를 위해서는 가족의 저택을 마련하고 내세를 위해서는 가족 묘지를 마련했다. – p63
우리의 발명품들은 흔히 진지한 일로부터 이루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예쁘장한 장난감일 경우가 많다. 그것들은 ‘개선되지 않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개선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목적이란 기차가 보스턴이나 뉴욕에 쉽게 도착하듯이 이 신발명품 없이도 너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이다 – p84
나는 빠른 여행자란 자기 발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p85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 p111
그의 ‘착함’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흘러넘치되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또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 – p119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 p139
뉴스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 p146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영원속에는 진실하고 고귀한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도 현재의 순간에 지고의 위치에 있으며,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그 어느 시대도 지금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진실을 계속적으로 흡입하고 그 안에 적셔짐으로써만 비로소 숭고하고 고결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사실이지,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 않는다 – p172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 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199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행위들과 그 결과들로부터 초연하게 서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격류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치게 된다. – p204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는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혼잡한 교실에서도 정말 공부에 몰두해 있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홀로인 것이다 – p205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 p258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 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불순물은 그 속에 가라앉거나 태양의 아지랑이 같은 솔이, 그 너무나도 가벼운 마른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준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워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 들판과도 같이 넓은 물은 공중에 떠 있는 정기를 반영한다. 그것은 위로부터 끊없이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중간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 – p284
진정한 부를 즐길 수 있는 가난,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 p295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을 때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그를 천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의 양이나 질이 문제가 아니고 감각적인 풍미에 빠지는 자세가 문제이다. 먹는 음식이 우리의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고무하는 양식이 되지 못하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벌레들의 양식이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 p327
각자는 육체라고 불리는 신전의 건축가이다. 우리는 모두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이며, 우리 자신의 피와 살과 뼈를 작품의 재료로 쓴다. 어떤 사람의 내적 고귀성은 즉각적으로 그의 겉모습을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하며, 비열함이나 관능은 그를 짐승처럼 추하게 보이도록 한다. – p332
자연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으며 우리 인간이 묻는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던 것이다 – p420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도 있다 -p422
법칙과 조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게 우리가 탐지해낸 경우들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탐지해내지 못했으며 그래서 보기에는 모순된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합치되는 무수히 많은 법칙들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조화는 참으로 멋진 것이다. 개개의 법칙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과도 같다고 하겠다. 즉 길 가는 나그네가 한 걸은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산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의 형태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산은 쪼개거나 구멍을 뚫어보더라도 그 전체가 파악되지는 않는다. – p432
사실 그것은 배설물 같은 성격을 약간 가지고 있으며, 지구의 안팍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간과 폐와 내장이 무더기로 쌓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대자연이 내장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결국 대자연이 우리 인류의 어머니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얼음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봄이다. 이것이 있은 다음에야 꽃피는 푸른 봄이 뒤따르게 된다. 마치 신화가 있은 다음에 순수한 시가 뒤따르듯이. 겨울의 노기와 소화불량을 씻어내는 데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성싶지 않다 – p455
연약한 생명체가 펄프처럼 짓눌려 없어지더라도, 예를 들면 왜가리가 올챙이를 통째로 삼킨다든지, 길 위에 거북이와 두꺼비 들이 마차에 치여 때론 즐비하게 죽어 넘어지더라도, 자연은 그것을 허용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해명은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현명한 사람이 여기서 받는 인상은 보편적인 결백이다. 독이란 것도 알고 보면 위험한 것이 아니며, 어떤 상처도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연민이란 지지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임시변통적인 감정임이 틀림없다. 그에 대한 면명을 고정관념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469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 p473
사회에 대해 무조건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한 인간의 의무는 아니다. 자기 내부의 법칙을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취하게 되는 태도를,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 간에 견지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 p476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에 의해 표가 나도록 되어있다. 마음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나는 이제 배 밑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 p477
만약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원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만 쌓으면 된다 – p479
미래를 생각할 때, 또 앞으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 p480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 p482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파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p485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 p485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 p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