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 중, 정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기득권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자, 권력에 붙어 자신의 생명줄을 연장하는 자, 기득권의 부패에 항의하는 자, 나만의 길을 가는 자,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 이 모든 행위는 사실 정치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정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불평등 구조를 ‘세대’와 ‘위계’라는 두 단어를 통해 설명한다. 모든 나라는 고유의 문화가 있고, 그 문화는 내부의 변화와 외부의 변화에 맞물리며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책은 교수의 논문답게 굉장히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현 불평등 문화의 원인과 결과, 나아갈 방향을 설명한다.
‘권력의 역사’
인간 역사에서 권력 스토리의 결말은 대부분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권력을 쥔 자는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새로운 권력에 대체되고 만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그 정의를 딛고 권력을 쥐게 되면 인간의 기본 욕구로 돌아간다.
저자는 386세대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기틀을 쟁취한 역사적인 세대이지만, 결국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권력을 놓지 않는 상황을 통해 현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1997년 금융위기로 산업화 세대는 퇴출당하고 아래 세대는 취업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조직이 항아리 구조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동일하다. 최고 권력에 386세대가 포진해 있으며, 바로 아래 세대는 다음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386세대의 충실한 신하 역할을 한다. 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386세대 권력층은 386세대 하위 계층과, 뒷세대의 말 안 듣는 후배들을 내보낸다. 젊은 세대는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상명하복 문화에, 젊은 세대가 새로움을 외치면 386세대는 충실한 신하들을 통해 젊은 세대가 목소리도 못 내게 칼을 든다. 좌절한 젊은 세대가 퇴사라도 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끈기가 없다며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더 단단하게 한다.
블라인드 같은 기업 게시판을 보면, 오래된 회사의 대부분은 동일한 문화이다.
권력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권력의 부당함을 외친다. 권력을 가져본 사람은 그 달콤함을 알기 때문에 부당함을 외면한다.
‘대안의 역사’
현 기득권에 문제가 있을 때, 현 기득권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이 아닌 다른, 다음 기득권을 위한 대안을 만들었던 역사가 있었을까?
학교 교육으로만 역사를 접했던, 내 좁은 역사 식견으로는 없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의 대안은, 대단한 리더의 등장이나, 기득권의 무자비한 행패로 비기득권의 집합에 의한 변화이거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른 변화이거나, 외부 압력에 의한 변화가 대부분이다.
비관론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현 기득권 세대가 사회의 안정과 자식 세대의 안녕을 위해 밥그릇을 일찍 내려놓거나, 부동산 가격을 낮추거나, 세금을 더 내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기대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세월은 흘러간다. 기득권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과 같은 저자의 목소리는 굉장히 중요하다. 비록 우리나라는 급격한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산재해 있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강력한 무기를 지닌 나와 같은 젊은 세대가 더욱더 현명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를 향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기득권층에서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복지국가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그랬듯, 아래층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틀을 만들지 않는다면 아래에서의 전복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이 누리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을 모두가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복지의 방향이 정상적으로 갈 수 있도록 할 수는 있다. 결과의 불평등을 당장 고칠 수는 없지만,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평등은 반드시 최소화되어야 한다. (100% 고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최소화한다는 표현을 썼다. 인간의 역사에 100% 평등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정치’
서두에도 썼지만 현대 사회의 모든 사람은 정치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말한 현 우리나라 불평등의 구조는 이 전부터 느꼈지만, 이 책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됐다.
이 결정을 내려야 할 주체가 바로, 앞서 이야기한 성별로 계층화된 노동시장 지위의 상층 남성, 그중에서도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한 386세대의 리더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여성 친화적 일-가정 양립 경제체제를 수립할 뜻이 있는가? 아니면, 아랫세대는 한 세대 혹은 두 세대를 더 기다려야 하는가? – p255
저자도 책에서 말했듯이, 현 불평등의 구조를 만들어 꼭대기에 오른 386세대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까? 이 구조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도 있겠지만, 그들이 살아온 벼농사 문화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386세대 내에서도 불평등이 심하기 때문에 이 모든 원인을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또한 불평등의 문제가 있다.
나는 솔직히 애매한 정치를 하며 살아간다. 자본 계급의 아래에서 시작하였기에 아래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 기득권층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따라가야 하는 부분은 열심히 따라가지만,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득권이 봤을 때 끌기에는 말을 안 듣고 버리기에는 아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래의 삶을 살아봤기에 현재의 기회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이 사회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앞장서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러한 문제를 주위에 알리고 투표로서 더 나은 삶에 기여하는 최소한의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사실 한동안 사회에 무관심했다. 어릴 때는 내가 중심이고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보이는 게 많아질수록 한계 또한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고 무관심의 정치를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 무관심이 나와 내 자식에게까지 악영향이 끼친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의 최소한의 정치가 모여 큰 흐름이 된다는 것은 역사에도 나왔다. 내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될 때까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한 줄 평
구조를 봐야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다
인상 깊은 문구
우리는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구조의 희생자들이지만, 끊임없이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주체이기도 하다 – p6
이미 밥그릇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에게 금융 위기는 하늘이 준 기회다. 이들은 조용히 폭락한 부동산 시장의 급매물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 p15
우리는 동일한 연대기적 시간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상이한 시대를 각기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대론은 바로 이러한 객관적 기회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서로 다르다는 데서 시작된다 – p15
세대와 위계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나는 특정한 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혹은 세대의 기회(운)를 통해 이 위계 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하면서 세대와 위계가 얽히게 된다고 주장한다 – p20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권력도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란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 그 이상의 것, 즉 자원 동원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 p33
386 네트워크의 문제 : 1. 규모 2. 응집성 3. 디지털 전환 4. 이념 충돌 5. 독점 – p34
연공서열에 따른 정치 구조에서 반란의 씨앗은 리더 세대의 바로 아래에서 형성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 쟁취를 위한 연합에서 권력에 대한 약속은 공유될 수 있지만, 권력 그 자체는 나누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균열은 리더 세대의 약속 위반에서 생겨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경우는 드물다 – p66
왜 어떻게 민주화와 세계화, 즉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던 자유주의의 시기에 자유주의 원리와 어긋나고 충돌하는 위계화가 더 극심하게 진행된 것일까? 이들은 정치적 민주화 프로젝트를 통해 평등의 가치를 한국 사회에 전파한 첫 세대지만, 그 자신은 동아시아적 위계 문화를 여전히 체내화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다. 한 세대 안에 존재하던 이 두가치의 충돌은 세계화를 거치며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 세대는 동아시아 위계 구조와 자신들의 세대 네트워크를 결합시켜 시장자유주의에 적응한, 보다 진화한 형태의 위계 구조를 발전시켰다. 이 모순적 결합과 접합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386 세대다 – p83
기업의 386 세대는 1997년 금융 위기로 인해 저절로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산업화 세대는 추풍낙엽처럼 노동시장에서 퇴출됐다…. 그다음 세대의 전멸… 386세대는 졸지에 아래위가 모두 잘려나가면서 기업 조직에 사실상 홀로 남겨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 p92
데이터는 ‘우리도 다 겪었으니 인내하라’ ‘세대 갈등은 위험하다’ 라는 윗세대의 다독임과 우려 섞인 충고가 상당 부분 거짓임을 폭로한다. 그 다독임은, 그들이 겪은 젊은 시절은 오늘의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대였다는 점에서, 또한 인내한다고 해서 좋은 시절이 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이중의 거짓이다.
농사일에 대한 이 세대의 원체험이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사회의 바닥을 이루는 협업과 협력의 윤리를 구성했다 – p151
벼농사 체제의 특성상 나이와 연공을 바탕으로 위계 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는 효율적으로 벼농사를 짓기 위한 사회적 분업 시스템이며, 마을 혹은 씨족 단위의 조직적인 협업 시스템이었다…1930년대생들은 이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유래하는 유교적 위계 구조를 몸과 마음에 새긴 채 도시로 상경하는 첫 세대이면서, 농촌의 기억과 윤리를 몸에 지닌 마지막 세대였다 – p156
농촌 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품고 상경한 신분적 위계 표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상제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학벌이다 – p169
이 세대는 불평등에 익숙한 세대다… 농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소농 출신 1세대 도시인은 그렇게 땅뙈기를 늘리듯 아파트를 사들였고, 과거에 급제자를 낼 목적으로 자식들을 입시 경쟁으로 밀어넣었다… 이 세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일하지 않는 자는 게으르다고 믿는 비율이 높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높았으며,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인구 비율이 높은 세대였다…1930년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을 생존시키고 스스로를 생존시킨 이 생존의 세대는 우리에게, 오늘의 청장년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많은 답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자산불평등이다 – p177
이 결정을 내려야 할 주체가 바로, 앞서 이야기한 성별로 계층화된 노동시장 지위의 상층 남성, 그중에서도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한 386세대의 리더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여성 친화적 일-가정 양립 경제체제를 수립할 뜻이 있는가? 아니면, 아랫세대는 한 세대 혹은 두 세대를 더 기다려야 하는가? – p255
구조 조정이 필요한 순간, 50~60대 연공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연장자들이 젊은이들의 목을 날린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인가? 아니면 탈산업화 때문인가? … 이 땅에 민주화를 가져온 386 세대가 한국 사회의 리더가 되면 조금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했던, 나를 비롯한 아랫세대들이 아둔했던 셈이다 – p260
젊은 세대가 오늘날 겪고 있는 세대 내부의 차별과 불평등의 기원은 세대 간 불평등 혹은 세대 간 갈등과 경쟁, 대결 과정에서 세대 내부에 권력 자원을 불균등하게 축적하는 데 성공한 세력과 네트워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세대 간 대결과 경쟁, 복속과 통합을 통한 위계화의 과정에서 세대 내의 특정 분파가 전리품을 독점하게 되고, 그 결과로 세대 간 불평등과 세대 내 불평등이 동시에 증가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렇게 세대론을 접근하게 되면, 한국 사회에서 세대론은 불평등이 축적되는 메커니즘의 맨 앞에, 계급론과 계층론은 세대와 불평등의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 두 이론적 관점이 반드시 배타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p272
세대론의 앵글로 조명하고자 했던 피사체는 바로 위계구조였다… 세대와 위계를 연결하는 매개 고리는 유교 사회의 핵심 윤리인 나이이다 – p274
한국형 위계 구조의 구성 요소와 작동 원리 : 1. 나이 2. 시험 3. 경쟁과 권력의 집중 4. 강력한 혈통 상속의 욕구 – p276
이 선발의 과정, 이 제도화된, 하지만 비제도적인 선발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들의 몸부림 자체가 정치다… 달리 이야기하면 상급자의 권력을 침해하지 않고 보호해주면서, 수적으로 다수인 하급자 집단에 대한 통제력을 잘 발휘하는 자가 그 세대의 리더로 발탁된다. 수많은 신입사원 중 누가 그 간택을 받게 될까? 당연히, 이러한 상급자의 이해를 미리 꿰뚫어 보고 그 비위를 잘 맞추면서도 하급자들을 잘 굴릴 수 있는 자가 선택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형 위계 구조는 조폭적이다. – p278
앎의 체계 (동양 : 니 주제를 알라 과 서양 :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라 의 차이) – p282
산업화 및 386 세대의 중, 장년층은 미래를 할인할 줄 몰랐다. 다시 말해 위계 조직에서 세대의 네트워크를 따라 한 걸음씩 밟아가다 보면,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질 것을 집단적으로 믿었던 세대들이다. 그에 반해 오늘의 청년 세대는 이 보상에 대한 기대의 공식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한국형 위계 구조 최초로 이 공모에 동의하지 않는 세대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 p307
산업화 세대의 리더들에게 그 세대 전체가 보여준 동의의 구조, 386세대의 리더들에게 그 세대 전체가 보내준 연대의 구조가 형성되지 않고, 위계구조에 순응하는 척하는 적응의 세대가 출현하면서 위계 구조는 효율성을 잃는다. 위계 구조 혹은 조직 전체를 위해 희생하며 협력하고 경쟁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순간,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는 작동을 멈추게 된다 – p318
불평등은 확대되고 성장률은 낮아지며 상층 노동시장 점유자의 소득과 자산은 나날이 늘어가는 한편, 중하층과 젊은이들은 낮은 소득과 실업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출산을 포기 거부하고 있다. 합계 출산율이 0.95로 떨어진 뉴스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본질, 네트워크 위계라는 한국형 위계 구조의 등장과 심화, 를 밝히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극심한 저출산으로 사회가 스스로를 죽이고 있고, 기업 조직들은 활력을 잃고, 기업 이윤은 저하되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의 장기 집권의 폐해는 조용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내부자들은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는 한국형 위계 구조가 진화된 마지막 형태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틀과 함께 침몰할 것인가 –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