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책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는 지구에 오기 전 다양한 별들을 탐험한다. 거기서 그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하루 종일 명령을 내리는 왕, 끊임없는 박수갈채를 원하는 허영쟁이, 부끄러움을 잊으려 술을 마시는 주정뱅이, 자기가 가진 별의 개수를 세고 또 세는 상인, 쉴 틈 없이 일하는 점등인, 기록에 파묻혀 사는 지리학자… 이들은 모두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어쩐지, 이들의 삶은 텅 빈 것 같은 공허한 느낌을 준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어린왕자는 생각한다.
<소유냐 존재냐>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들의 삶의 태도를 소유적 실존양식으로 명명한다. 어린왕자가 만난 ‘이상한’ 어른들처럼, 우리는 그 ‘무엇’−권력과 타인의 인정, 물질과 지식, 새로운 감각적 자극, 삶을 지배하는 익숙한 습관 등–을 소유하고 지켜내기 위해 분투한다. 끝없는 소유의 추구는 어느새 집착이 되고 강박이 되어, 결국 우리는 소유의 노예로 전락해 자기 자신을 잃고 만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작은 별에서, 프롬의 표현을 빌리면 “고립된 자아의 감옥(p. 130)”에 스스로를 가둔 채 오늘도 부단히 쳇바퀴를 굴리고 있다.
반면, 소유적 양식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적 실존양식은 고립이 아닌 연결성, 소외가 아닌 주체성과 능동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존재적 양식에서 더 이상 우리의 존재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 증명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자유롭다. 프롬은 인간이 ‘존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구를 지니며, 이러한 본성과 일치하는 삶을 살 때 비로소 활기를 되찾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존재는 “지금 여기”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동감으로 발현되며, 관계 안에서 타자와의 공유된 체험을 통해 전달된다.
책에서 다양한 예시를 통해 설명하듯, 소유와 존재의 실존양식은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가? 혹 소유로 존재를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프롬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린왕자가 수많은 어른들에게 질문했던 것처럼.
프롬은 병적인 소유양식이 지배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결코 개인을 힘없는 희생양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가 제시한 ‘사회적 성격’ 개념은 개인과 구조 간의 상호작용을 포착함으로써, 개개인의 각성이 곧 사회적 변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세기병”으로 표현되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무기력감, 우리의 공유된 고통에 대한 자각은 오히려 연대감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이끌 희망의 단초인 셈이다.
매일의 생존 경쟁에만 몰두되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깨어날 것을 요구하는 각성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소유냐, 존재냐? 사실 마음 속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본성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어떨 때 우리가 진정 기쁨을 느끼는지를. 그러나 자꾸만 고개를 내미는 두려움은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대며 진짜 욕구를 만나지 못하게 훼방을 놓곤 한다. 어쩌면 바로 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일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말한다. 존재는 묘사될 수 없고 오직 체험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요성을 쉽게 잊곤 한다. 여우와 어린왕자의 우정은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 속에서 빚어졌기에 소중했다. 나 역시 나와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매 순간을 스스로에게 충분히 내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충분히 존재하고 싶다.
한 줄 평
갈수록 존재감 제로가 되어가는 텅 빈 내면의 현대인에게 프롬이 던지는 경고 메시지
인상 깊은 구절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 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p. 59
“사랑은 소생과 생장을 낳는 과정이다.” -p. 73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 총체적인 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든 개성, 지문처럼 나에게만 뿌리박힌 일회적인 나의 실체는 결코 완전히 포착될 수 없다.” -p. 128-9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p. 183
“사랑의 체험, 기쁨의 체험, 어떤 진리를 발견하는 체험은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 이와 같은 지금 여기는 영원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초시간적인 것이다.” -p. 185
“현대사회의 “자아의 실체성의 위기”는 그 구성원들이 자아를 상실한 도구들로 변해버려서, 대기업(또는 거대하게 부풀려진 다른 관료조직)에 속해 있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게 된 사실에 근거한다. 참된 자아가 실재하지 않는 곳에는 자아의 실체도 있을 수 없는 법이다.” -p. 212
“만사를 소홀히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정서적 유대, 심지어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유대마저 상실한 결과이다. 실제에 있어서, 시장적 성격에는 가까운 사람이 없다. 하다못해 자기 자신마저도.” -p.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