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커뮤니티스튜 4분기 독서소모임은 ‘노동의 미래’ 3부작으로 운영됐다. 가짜 노동, 노동의 종말,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로 이어지는 3부작은 일을 핑계로 모두 정독하지 못했고, 서평도 마지막이 돼서야 겨우 적는다.
13년째 일을 하며 ‘일’에 관해 많이 생각했는데, 이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열려 속 시원히 이야기 나눴다. 어쩌다보니 나는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 돼 버렸는데, 싫어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삶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노동 시장은 변화 중이다
미디어는 오늘도 AI를 외친다.
2020년쯤인가?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다며, 조만간 개발자 없어지는 거냐고 물었던 지인이 있다. 당시 개발 팀장으로 일하던 나는 안 없어진다고. 단호히 말했다. 지금도 개발자가 없어지냐는 질문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숫자가 줄어들 수 있으며, 역할이 굉장히 많이 바뀔 거라 생각한다.
최근 대학가에는 무기력증이 퍼져있다고 한다. 어차피 AI 못 이길 텐데 공부해서 뭐 하느냐고 말이다. 명문대생이 말하는 소리에 ‘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생이 된 걸텐데, 열심히만으로 안된다는 걸 너무 빠른 나이에 깨달아 무기력증이 와버렸나 싶더라.
노동 시장은 변화 중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이 많느냐 하소연하던 친구에게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너는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일이 더 많아질 거란 짤을 보낸 적이 있다. 지금도 바쁜 사람은 정말 너무도 바쁘다.
결국 노동 시장은 점점 더 양극화 될 거다. 대체되지 않는 사람은 노동 강도가 더 올라갈 것이고, 대체되는 사람은 일이 줄어드는 걸 넘어 사라져버릴 거다. 미디어에서 외치는 AI가 굉장한 역할을 하게 될 거다.
노동의 미래 3부작은 현 AI 시장이 달아오르기 전부터 꾸준히 나온 책들이지만, AI가 제대로 기름을 부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막을 수 없다는 게 3부작 모두의 의견이지 싶다.
대안이 아쉽다
그런데 노동의 미래 3부작은 겁을 주는 게 목적인가 싶다.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건 좋다만, 그래도 책이라면 나름의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측면에서 3부작 모두 굉장히 불만족스럽다.
특히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는 대응이라는 챕터를 다뤘기에 기대했는데, 교육과 대기업 통제라는 너무도 흔한 이야기라 실망이 컸다.
교육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교육을 더 많이. 더 많이를 넘어 평생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은 누군들 못하나.
대기업 통제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차피 이런 식의 통제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이 있게 마련이다. 막을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막는 것 자체가 ‘가짜 노동’과 뭐가 다른가 싶다.
특히 큰 정부를 말하며 많이 버는 사람에게 많이 걷어서 나눠줘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이 시점에 저자의 커리어를 다시 살펴봤다. 앨리트 출신의 정책가, 연구자. 그럼 그렇지, 돈 벌어본 적 없이 펜대만 굴린 아재다.
전 세계가 저성장 시점에 접어들었다. 누구도 풍요롭지 않은데, 국가 자체가 힘들기도 한데 뭔 큰 정부인가. 능력 있는 자는 굳이 국가에 남아 자신의 돈을 나눌 이유가 없다. 결국 힘 없는 국가에는 떠날 수 없는 자들만 남게 될 거다. 이런 상황에 큰 정부라고?
많이 걷어서 나눠준다는 건 사회주의가 아닌가? 저자도 의식했는지 소련과는 다른 컨셉이라고는 하는데,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화성에 가서 살 곳을 마련하겠다는 일론 머스크가 더 희망차다.
내 선택은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국가가 무너진걸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회사가 무너지는 건 경험해봤다. 주변의 동료들의 업무가 사라지고, 그렇게 자리가 사라지는 경험. 국가가 무너지는 건 이보다 훨씬 더 처참할텐데, 어찌 해야 하나 싶긴 하다.
결국 힘을 가져야 한다. 과거엔 총과 칼이 무기였다면, 지금은 자본이 무기다. 자본을 모아야 하며, 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가 원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다. 즉,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자가 우리 시대에는 더 중요해질 것 같다.
그래서 도전 중이다. 제로투원이란 키워드를 참 좋아하는데, 2025년에는 제로투원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자리는 없어질 수 있다.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때문에 일을 만들어내고,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고, 그렇게 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자가 정말 정말 큰 힘을 가질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정말 파티는 끝났을지 모른다.
마무리
노동의 미래 3부작을 읽고 대화하며 독서소모임 분위기가 다소 우울해진 감이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모든 위기엔 기회가 오더라. 흐름 자체가 어둡더라도 그 안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개인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기회는 있다고 믿는다. 아니, 어쩌면 좋은 흐름일 때보다 더 기회가 있는 지점이 있을지 모른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을지 몰라도,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인상 깊은 문구
- 내가 주장하는 큰 정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계획경제주의자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대로 정부를 이용해 파이의 크기를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이용해 모든 사람이 파이를 나눠 갖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큰 정부가 맡을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다.
- 큰 정부가 맡아야 할 주요 역할은 두 가지다. 첫째, 앞으로 용케도 가치 있는 자산과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크게 매겨야 한다. 둘째, 그렇게 모은 돈을 자산과 소득이 없는 사람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국부 펀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그 가치가 무려 1조 달러가 넘는다. 석유 개발에 나선 뒤로 노르웨이 정부는 수익을 곧장 다 써 버리지 않고 “노르웨이 국민을 대신해” 기금을 조성했다. 노르웨이 인구가 520만 명이므로 시민 한 사람마다 19만 달러에 해당하는 주식을 사실상 보유하는 셈이다. 정부는 해마다 기금 일부를 빼내 노르웨이 경제에 투입한다.
- 고용주와 사회를 연결하는 한 방법은 조세 제도다. 현재 미국에서는 조세 제도가 의도치 않게 자동화를 부추기고 있다. 사람 대신 기계를 쓰는 고용주에게 이를테면 직원 임금에 따라붙는 사회보장세, 실업 보험을 내지 않아도 되는 몇 가지 주요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조세 제도가 노동의 시대에 만들어진 탓에, 정부가 세수입을 대부분 고용주와 피고용인에게 거두는 세금에서 얻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 “우리는 여가를 즐기고자 일한다. 평화를 누리고자 전쟁을 일으키듯이 말이다.” 실제로 ‘일’을 뜻하는 그리스어 ascholia(아스콜리아)는 말 그대로 “여가(schole)가 없는(a-) 상태”를 뜻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그리스인에게는 여가가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