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북 성주 출신으로 어릴 적 외할머니 댁 근처에 전두환의 처인 이순자의 본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커왔다.
어릴 적 기억에 그 집은 성주라는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컸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 집과 거리를 두려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 커서 다시 그 집을 봤을 때에도 참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집이라는 생각만 했지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전두환도 그 이순자의 처이자 대한민국 대통령 중 나쁜 대통령에 가깝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을 뿐 나는 말그래도 광주에 대하여는 방관자였다.
역사의 방관자에 대한 선량한 시민들의 무언의 아우성
소년이 온다를 얘기만 들었지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장에서는 너무 징그럽다는 생각을 둘째 장에서는 깊은 한이 셋째 장부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그날 광주시민들의 고통을 느꼈다. 특히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커다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나에게 이 책을 가져다 들이대면서 반성하라고 하거나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한 사실은 없다. 그러나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 커다란 실망을 느끼게 했다.
희생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날 광주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총을 잡고 군인들의 물결에 맞서 싸운 시민군이었다. 그들이야 말로 그날의 광복군이고, 나라를 위해 일어선 계엄군이었다. 그런 그들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죽어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은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몸소 지킨 시민군이었음에도 시대의 잘못된 흐름에 따라 자신을 숨긴채 무력한 소시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동호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호, 정대, 정미, 진수, 영재, 은숙, 선주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억울한 피해자들이다. 가해자는 전면에 나오지도 않고 가해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단지 이 모든 책 속의 사람들은 과거를 과거로 취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방관자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 어떤 메시지도,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담담히 그들은 피를 흘리며 나와 같은 방관자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무언의 아우성이 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그 무거운 아우성에 스스로 한평생 방관자로 살았던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알면서도 모른척 하였던 사실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고 현재에서라도 과거를 바로 잡아야 한다.
작가는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라는 유족의 부탁을 받고 이 책을 썼다. 나는 518 행사에도 참여한 적도 망월동 묘지에 가서 참배를 한 적도 있다. 이정도면 광주를 모독한 적은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위선적으로 그들의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온 일생 자체가 그들에게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2024년 전두환이 죽으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심지어 그 손자인 전우원이 광주에서 조부의 죄를 고하며 참배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도 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직도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생각나며 “동생을 모독할 수 없도록” 적어달라는 유족의 말이 너무나 깊게 와닿았다.
그날 광주는 현재까지도 많은 오해를 사고 있고, 많은 논쟁을 부르고 있다. 누군가는 그만 이용하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아직도 광주는 계속되고 있다고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가해자는 측정불가한 부를 쌓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나 그 너머로 나아갔고 남은 사람들만 아직도 서로 아귀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멈춰야 한다. 과거를 과거로 두지 말고 과거의 연장인 현재에서라도 과거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앞으로 다가올 현재를 위해서라도 과거를 마주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