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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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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것을 직면하고 깨닫는 것”

모든 문제 상황의 해결은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결국 부의 감각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내 안과 밖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직면하게 해주고, 이를 인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천할 수 있는 해결방안들을 제시해준다. 결국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새롭지 않더라도 다시금 상기시키고 이를 구체화 시킨 실험 결과들을 접함으로써, 우리는 이 사실들을 내면화할 수 있게 된다.

100달러 > 200달러 반값 할인

저자가 언급한 JC페니의 실제 폭탄 세일 풍경

사람의 마음은 상대성에 나약하다.

내가 지불하는 가격이 결국 100달러로 동일하다 해도, 기존 100달러 가격의 제품을 100달러로 구매하는 것과 200달러 가격의 제품을 반값 할인하여 100달러에 구입하는 것은 심리적 만족도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결국 내 잔고에서 비워지는 현금의 양과(그로 인해 다른 100달러어치의 제품에 대한 포기), 얻게 되는 제품의 질이 동일하다고 해도 말이다. 

실제로 본인은 ‘가성비’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잣대 중에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던 시절,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그때 자리 잡은 습관 중의 하나가 가성비 쫓기였다. 지금은 그때와 경제적 상황은 변했지만 가치관은 이미 내재화되었다. 어떤 소비를 할 때마다 무조건 가성비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고, 세일 상품에는 득달같이 달려들게 되었던 점도 맞다. 하지만 위 이야기를 읽고 나니 실제로 합리적인 소비를 했는지보다는, 내가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진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지불의 고통을 결정하는 마법 같은 타이밍

결제의 순간과 소비의 순간 사이 시간의 격차가 클수록, 개인은 결제의 고통을 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제한 사항이 굉장히 재미있는데, 바로 소비의 순간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우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소비의 순간에 육체적인 고통이 동반되면, 지속적으로 지불의 순간을 떠올리게(후회하게) 된다. 본인은 이를 매주 2번씩 느끼고 있는데, 직장동료와 함께 주 2회 필라테스를 3개월 치 동반 결제했기 때문이다. 결제의 순간은 벌써 두 달이 지나고 있지만, 내 직장 동료는 매주 2회 느끼는 육체적 고통 이후 항상 그 지불의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결제의 순간을 소비의 순간으로 끌어오는 것의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문제를 인식했으니 해결해보는 것이다. 2인 동반 결제 2주 서비스를 포함한 3달 패키지의 대가로 지불한 43만 원이라는 가격은, 결국 모든 회차를 나간다는 전제 하에 1회 1.5만원 꼴의 수업이다. 그렇다면 지불의 순간을 소비의 순간으로 당겨보자. 매주 2회씩 ‘하루 정도 필라테스를 빼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1.5만원을 지불한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조금은 쉬워지는 마법의 주문이다. 실제로 이를 통해 근 2주간 필라테스를 안 빼먹을 수 있었다.. ^^

우리는 모르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소비자의 심리

5월달 백화점에서 한 여름용(실내 에어컨 바람막이용) 자켓을 입어보았다. 컬러감과 핏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이 10만 원이었다. 보통 여름옷에 5만 원 이상 투자하지 않았기에 고민했지만 결국 구매를 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1) 20만원짜리 자켓의 50% 할인이었다. 그냥 10만 원짜리 옷이 아닌 20만 원짜리 옷의 반값이라는 상대성에 한 번 흔들렸다.

2) 곧 인턴 업무를 시작하는 나에게 있어 이는 쇼핑이 아닌 투자이다. 일반 쇼핑이 아닌 직장용 복장에 대한 투자라는 “심리적 회계”가 작용했다.

3) 직장용 복장은 대학생 때 입던 옷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자유롭고 개성 있는 복장이 미덕인 대학생 타겟의 옷들과 커리어우먼을 타겟으로 한 옷들은 가격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직장에서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입는, 밖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는 “여름용” 자켓을 구매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일이었다. 관련 지식이 존재하지 않던 나에게 자켓의 할인 전 가격은 ‘원래 이 카테고리의 옷들은 이 가격이다’라는 “앵커링” 효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그 한순간 내 머릿속에는 저자가 이야기한 비이성적인 합리화 과정이 몇 가지나 복합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새로운 사실은 없다.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을 굳이 꼬집어내어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존재했다.

부의 감각을 얻기 위한 독서 중, 내 소중한 e-book 리더기가 고장 났다… 올해 처음으로 주식을 도전하며 ‘내 시드머니는 투자가 아니라 수업료로 지불됐구나’를 깨달았는데, 부의 감각을 감히 리디셀렉트라는 구독료로(저자가 경계하라고 지적하는 공짜의 함정에 빠진 채) 읽으려던 게 화근이었을까? 책은 책값을 내고 읽자. 저자 말대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상 깊은 구절

“돈은 가치value를 표시한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의 가치를 표시할 뿐이다. 그러니까 돈은 가치의 전달자messenger이다.”

“금액이 얼마든 언제든 (거의) 모든 것을 사는 데 돈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본질적인 사실 덕분에 우리 비이성적인 인간 Homo irrationalist은 서로 직접 만나서 물물교환을 하는 대신에 어떤 상징(즉, 돈)을 사용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예전보다 한층 더 효율적으로 교환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여기서 돈의 최종적이며 가장 중요한 특성이 생성된다. 바로 공동선common good이라는 특성인데, 이는 돈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어떤 것의 가치를 지불하는 수단으로 다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의사결정이든 돈이 결부될 때마다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뭔가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것을 하지 않을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에 돈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가 분명히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때 그는 4달러를 포기한 게 아니다. 그 돈이 지금 혹은 미래에 제공할 수 있는 어떤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물론 월요일에도 고려해야 할 기회비용이 있었지만 그때는 이 개념이 당신에게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일요일이 되면 기회비용이 선명하게 부각되는데, 이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가 지출하고자 하는 그 돈을 미래에 얻을 일련의 경험이나 재화를 살 수 있는 잠재적 역량으로 바라볼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 이는 돈이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라서 기회비용을 떠올리고 고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뭔가를 사려고 돈을 지출할 때는 사고자 하는 그 대상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어떤 것을 사는 데 돈을 지출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것과 비교한다. 이처럼 비교를 할 때 우리는 상대적인 가치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상대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니라 이를 적용하는 방식에 있다.”

“정상가격 옆에 붙어 있는 할인가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객은 스스로가 상당히 똑똑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피실험자들은 자기가 먹은 실제 식사량이나 자기가 느끼는 ‘배부름-배고픔’ 정도에서 만족감의 단서를 얻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그릇에 담긴 수프가 줄어든 정도를 기준으로 만족감을 판단했다.”

“흥정해서 물건 값을 깎을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자기는 발견하고 그 가치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실제로 우리에게 작동하는ㅇ ㅝㄴ리나 우리가 하는 행동은 이성적이지가 않다.”

“100달러>200달러 반값 할인”

“어떤 금액을 지출할 때 실질적인 지출금액 자체가 아니라 전체 지출 가운데 차지하는 백분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불리하고 그래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 하나를 포함시킴으로써 매출을 세 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어떤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상대성을 맞닥뜨릴 때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가 쉽다.”

“어쩌면 상업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운동장은 조금 기울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적 회계를 함으로써 우리는 ‘대체할 수 있다’는 돈의 기본적인 원리를 깨뜨리고 만다.”

“사람들이 지출계정 분리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라스베이거스에서 생긴 일은 라스베이거스에 묻어두고 가라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라는 마케팅 구호까지 만들어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지출이나 수입은 우리와 함께 집까지 따라온다.”

“가진 돈을 어떤 지출계정에 두든 그게 자기 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

“돈을 벌어들인 방식에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그 돈의 일부를 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기 돈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 지출 방식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속임수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의 모든 지출을 손쉽게 합리화하기 위해서 창의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러므로 도시에 살면서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은 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할 때 드는 돈을 절약하는 기분과 더불어 그야말로 공짜 여행을 즐긴다는 느낌을 만끽한다. 정해진 기간마다 자동차와 관련된 지출을 하긴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시점에는 이 활동과 관련해서 (기름 값 외에는) 직접적인 지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불의 고통은 지출 자체가 아니라 지출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고통은 아프지만 중요하기도 하다. 고통은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다.”

“신용카드, 전자지갑, 자동이체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금융 헬멧’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실력이 형편없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고통이라는 증상을 치료하긴 하지만 그 증상의 기본 원인인 지불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지불의 고통=시간 + 주의력.’”

“사람들이 미래의 돈을 현재의 돈보다 낮은 가치로 평가한다는 사실”

“공짜라는 가격이 하나의 선택지로 주어질 때 사람들은 대부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공짜를 선택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지불의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

한국 사회에서의 ‘정상’ 범위는 너무 좁다. 

일전에 친구와, “길거리에 정상적인 사람이 많다는 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올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장 최근에 외출한 날만 생각해보아도, 길거리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는지 떠올려보면 간단하다. 그러다 사회 속 비정상의 통계를 보면 생각보다 큰 수치에 놀라기도 한다. 단순히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거리인 게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야만 편하게 나올 수 있는 거리인 게 아닐까?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가족>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가족이라는 구성원 형태 속 정상 범위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나는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정상 범위의 가족에서 자랐고 가까운 지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게 우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반 자살이 아니라 가족 몰살”

저자는 한국의 특이한 ‘동반 자살’ 포맷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겨 그 처분 또한 부모가 결정할 수 있다는 의식과,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정상가족의 형태가 아니면 자식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공공 역할의 부재가 합쳐져 만들어진 동반 자살. 서양에서는 ‘아동 살해’ 혹은 ‘자녀 살해’, ‘가족 몰살’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말 그대로 나와는 독립적인 다른 인격체를 죽이는 행위에 살해가 아닌 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도 인식을 하고 나니 굉장히 기형적으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자식을 살해한 부모는 동반 자살을 ‘선택’한 부모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흔히 자살자에 가지는 연민을 그들에게도 가지게 된다.

(※스포일러※)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도 동반 자살을 시도한 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서 어머니의 행위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내린 안타까운 결단으로 비춰지거나 모성애로 포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로 인해 성인이 된 아들이 가지는 트라우마와 피해를 적나라하게 그릴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성애’의 아이러니를 꼬집는 명작이었다.

“왜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을까”

미혼부도 존재한다. 보이지 않을 뿐. 

책은 미혼부가 아닌 미혼모만 존재하는 현상에 대해 여성에게 양육을 떠넘기고 남성에게는 책임을 지우지 않으며, 아버지 없이 혼자 키우는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문제로 꼬집었다. 이 또한 일리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미혼부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다.

몇 년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으로 ‘미혼부’라는 개념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영상 속 아버지는 아이를 두고 어머니가 도망을 가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3개월 전 처음으로 미혼부도 아이의 어머니 없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엄마에 대한 서류 없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혼부에 대해 아동이 태어난 즉시 출생을 등록할 수 있는 권리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첫 사례이다. 이처럼 당연한 논리가 2020년에서야 인정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이 또한 이상한 정상가족을 위한 든든한 첫 계단이 되어줄 것이다.

“저를 때리고 싶다면 돌을 던지세요”

책은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폭력에 반대합니다(Never Violence)’ 연설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한 여성이 아들을 매로 가르치려고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하자, 아들이 회초리감을 찾을 수 없었다며 대신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돌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는 일화였다. 이 부분을 읽고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훈육 목적을 위한 체벌에 찬성하는 사람 중에서도 위 일화를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회초리로 때리는 것과 돌을 던지는 것의 차이가 뭔가?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행위의 의도는 다를 지언정 결과는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 두 행위를 구분지어 보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일 뿐이다.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훈육 행위이고 돌을 던지는 것은 죄를 지은 자에게 행하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보는 그 ‘시선’. 결국 사회적 시선이 아직 내면화되지 않은 아이를 통해 우리의 고착화된 관념이 깨지는 것이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정상 가족”

저자는 마지막 챕터에서 이상한 정상가족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아동학대를 해결하기 위한 스웨덴의 예시가 인상 깊다. 아동 체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가정 내 뿌리깊은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스웨덴은 1979년 체벌 금지를 분명히 명시하는 법을 개정했다. 단순히 유명무실한 법 개정으로 남지 않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다양한 언어로 적힌 설명서를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배포하는 등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그 결과 스웨덴 전체 가구의 99%가 이 법에 알게 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본인은 이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위한 미디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미디어는 우리 안의 정상을 규범짓고 내면화하는데 놀랄만큼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한국의 미디어 속에서는 너무나 많은 정상가족만이 등장한다. 비정상 가족이 등장하면 그들은 항상 어딘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상한 비정상 가족으로 비춰진다. 아니면 정상의 범위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응원한다. 정상 규범에서 벗어나면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이상한 정상가족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정상가족에 익숙해지며 이상한 정상가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환상을 심는다. 이처럼 아직은 해결책보다 문제가 많은 세상이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몇십년동안 이상한 정상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상함이 이상해지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

인상 깊은 구절

“선량한 많은 이들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금을 매우 쉽게 긋는다는 걸 깨달았다.”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특정 연령층에 대해 특정한 조건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하는 사회에서는 체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폭력이 더 높은 수위의 폭력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가 된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사랑의 매’라는 표현은 때리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어떤 폭력은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뜻인데, 이는 전적으로 매를 든 사람의 논리다. 맞는 아이들에겐 체벌의 이유가 사랑이든 분노든 다를 게 없다.”

“학창 시절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역향 중 하나”

“체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폭력도 사랑이라고 가르치며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학대가 일어나기 쉬운 취약가정으로 분류한 셈이다… (하지만)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었다.”

“이렇게 예측을 하려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안전은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쓰는 놀이터니까 이같은 동시 폐쇄가 가능했을 것이다. 한꺼번에 이렇게 폐쇄된 곳이 경로당이라고 생각해보라.”

“언론이 ‘동반자살’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유포할 위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이렇게 구조적으로 아이 버리기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아이를 버리는 ‘주범’이 여전히 미혼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삶은 잘못되었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교육받을 권리와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한국의 가족주의에 그 혐의를 두고 싶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가장 특징적인 차이는 혼외출산 비율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다.”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 위기가 닥쳤을 때 위험을 타자와 관련짓는 반응은 근대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어온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경쟁단위다.”

“우리는 왜 중립적 호칭을 놔두고 굳이 가족적 거리를 암시하는 표현들을 점점 더 많이 쓰게 되었을까?”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법 개정의 목적 자체가 체벌이 자연스럽고 양육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문화적 규범을 바꾸자는 거였으므로 스웨덴 정부는 법 통과 이후 이를 알리기 위해 대대적 캠페인을 펼쳤다… 법안 통과 2년 후인 1981년엔 스웨덴 전체 가구의 99%가 이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언젠가 읽어보자, 읽어보자, 마음 속에 간직만 해두었던 책인데 이번 기회로 좋은 책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비록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나에겐 너무 어려운 책이었지만 인생, 특히 사랑에 대한 좋은 문구를 많이 접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첨언할 말은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구. 그 가벼운 마음이 너무 소중하다. 사랑은 은유라는 우연에서도, 평소보다 늦은 발걸음에서도 생길 수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언제 공격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프란츠의 사랑이란 언제 공격이 올지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랑은 나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굳이 가장 약한 속살을 내보일 필요는 없지만, 이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는 마음의 상태.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크리스티나 양이 메러디스 그레이를 표현할 때 사용한 표현이 있다. “내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만약에라도, 그렇다면 내가 가장 먼저 불러서 같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할 사람은 메러디스야.” 드라마 역사상 이만큼 사랑을 잘 표현해주는 문구가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멍한 상태에 빠뜨렸고 동시에 그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라고 그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의 무기력함에 구원받았다. 그의 무기력함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불능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인과관계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결정이 선택이고 선택은 포기라는 것이다. 그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결국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것은, 선택(이자 포기)을 외면한 도피성 낙원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Movie ref) 미스터 노바디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동정심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을까? 일생 동안? 한 달 동안? 딱 일주일만?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회귀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불확실한 선택에서 오는 확실한 불확실보다 이미 한번은 입증된(같은 결과리란 보장이 없음에도) 과거의 선택으로 회귀하는 것이 불확실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심리적으로나마 줄여주기에, 우리는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확실한 도전을 하는 건 더 큰 행복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테레자가 그의 친구 Z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그가 느낀 유일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다.

세상에 우연 아닌 결과나 우연 아닌 운명은 없다. 모든 것(물건, 생각, 행동, 현상까지도)은 그것이 비롯된 우연에 의하고, 그 우연도 우연에 의한다. 우연이라 칭해도 운명이고, 운명이라 칭해도 우연인 것이다. 그 둘이 같은데, 무엇이라 부르든 의미는 없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한 번(저자에 의하면 의미가 없다는 그 횟수)’이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없다. 과장의 신경통은 토마시의 삶과 상관 없으면서도 그의 인생의 끝자락까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자신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독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몸이 아니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 혹은 핵심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다.

문학의 핵심은 empathy다.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 상황에 공감하고, 기쁨에 공감하고 사랑에 공감하고 절망에 공감하는 것. 모든 위대한 문학의 의의는 그 공감에서 온다. 그 공감이 나와의 동일시에서 온다면 그것은 자아성찰일 것이고, 그 공감이 나와의 이질감에서 온다면 그것은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1부의 여운을 한 장 사이에 두고 저자는 나의 공감의 대상을 종이 위에 분해해서 펼쳐놓았다. 비록 그것이 채 한 문단이 되지 않는 길이였다고 해도, 저자는 순간적인 강렬한 이질감을 통해 비로소 이 글 너머에 있는 저자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했다.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그는 정중한 말투로 말했고, 테레자는 자신의 영혼이 그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그녀의 모든 정맥, 모세혈관, 모공을 통해 표면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가 뭐래도 운명을 믿는 낭만론자들에게 이는 드물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서로의 짝을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고요함 속에서 시끄럽게 외치는 나의 존재를.

* Movie ref) 팬텀 스레드

인지혁명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이라는 종이 역사적으로 유일무이 하나뿐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만들어낸 인간 신화일 뿐, 사실 우리는 사피엔스라는 여러 인간 종 중의 하나가 번식한 결과이다. 오히려 왜 호모 중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인지혁명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인간 역사적으로 가장 첫번째로 중요한 변환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임 안에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 등을 언어로 교류하며(결론적으로 서로 가십을 하며)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을 높였다. 저자는 이것이 근본적인 언론인의 목적임을 이야기한다. 미디어학부생으로서 언론과 뉴스에 대해 공부하며 배운 것은, 어떤 것이 뉴스 거리가 되냐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 등 부정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것이 가장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누가 질서를 해치는가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 사회를 보호한다 할 수 있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객관적 실재와 가상의 실재.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가상의 실재’를 믿는다는 능력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실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부재하는 것을 긍정하는 신기한 능력을 인지혁명 기간 동안 획득했고,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저자가 언급한 ‘푸조’가 부재하면서도 모두의 인지 속에 실재하듯, 인간에 대한 당연한 사실 대다수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농업혁명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사실 농업혁명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어떤 동물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 혁명이라는 것은 평생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농업을 시작한 인간은 잉여식량으로 인해 인구수는 늘어날 수 있었지만, 수렵채집 때보다 삶의 질은 곤두박질쳤다. 그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1. 더 많은 시간 일했으며 2. 특정 작물의 생산에 의존하며 오히려 더 높은 굶주림의 위험에 놓였고 3. 전염병의 위험 또한 높아졌으며, 4. 수렵채집에 맞게 진화해온 인체가 농업이라는 노동을 통해 고통받으며 디스크 등 각종 질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들의 경우에도, 가축화되면서 종의 개체수 자체는 늘어났지만 그 삶의 질 자체는 결코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본문에 사진과 함께 나와있듯, 송아지는 어미와 떨어져 자기 몸만한 우리에서 평생을 보낸다. 근육이 생기면 육질이 질겨지기 때문에 평생 자유롭게 뛸 수도 없다. 우리는 그런 육질이 좋은 최상급의 고기를 고가의 돈을 주고서라도 구입하며, 높은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수요가 넘쳐나니 공급 또한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송아지를 그 우리에 가둔 건 우리고, 결국 저자의 말대로 농업혁명의 승리자는 ‘밀’ 뿐이다.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

인류의 통합

“한편으로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돈과 상업의 이동을 막아온 공동체라는 댐을 기꺼이 파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와 종교와 환경이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막아줄 댐을 건설한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이후 물물교환이 등장했을 때, 화폐는 물물교환의 교환율 단점을 극복했다. 또한 부동산 등 공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재산의 거래 및 물리적 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해,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할 수 있었다.

은과 금을 바탕으로 한 화폐 시스템이 곳곳에서 발생하며, 근대 말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가 단일 화폐권역이 되었다. 지금의 미국 달러 같은 통화를 기반으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공통의 신념과 의사소통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돈은 공동체 밖의 사람과도 원활한 교류를 가능하게 하지만, 비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결국 세상을 하나의 비정한 시장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과학혁명

우리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이 결국 고용인, 피고용인, 모두에게 WIN-WIN 전략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론상으로는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지인이 다니던 회사는 직원 2명에 인턴 14명으로 팀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적인 자유시장 이론에 따르면, 회사는 인턴을 회사 시스템에 적응한 인력으로 길러내어 많은 수의 인턴보다 적은 수의 loyal한 직원으로 굴러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결국 고용주는 그보다 값싼 인턴을 대량 고용해 반년마다 갈아치워버린다.

기원전 8500년의 사람은 농업혁명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지만 농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

농업혁명 파트에서도 저자는 ‘돌아가는 다리가 끊어졌’기에 우리는 농업생활 이전 오히려 더 풍요로웠던 수렵채집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농업은 커녕 수렵채집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지언정 그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리 없다. 하지만 이를 자본주의에 대입하니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용하고 비판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더 이상 자본주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은 폭력과 체제의 전복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결말에 대해 긍정적이고 어두운 관점을 모두 제시한다. 그 중 어떤 관점이 현실이 될지는 결국 두고봐야 할 것이다. 마치 사피엔스의 인지, 농업, 과학혁명의 결과를 그 후손인 우리가 돌아보고 있듯이.

“둘 중 어느 쪽이 사실이었든, 네안데르탈인(그리고 여타의 인간 종들)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만일’의 소재다.”

‘만일’이라는 질문은 인간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사고방식이다. 무언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현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싶다는 욕망이자, 개선을 위한 노력의 시작이다.

“일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하지만… 사피엔스의 첫 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생태적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과거의 농업혁명과 지금 누리고 있는 편의성의 인과관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농업혁명이 인간을 위해 가장 중요한 혁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인간의 삶의 질은 점차적으로 떨어지고 대다수 육지 동물의 그것은 곤두박질쳤다. ‘만약’ 농업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인간이 수렵채집의 삶의 방식을 계속 영유했다면 삶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궁금하다. 결국 역사의 어느 시점에는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말았을까, 아니면 인간은 수렵채집을 하며 또 다른 방식의 삶의 양식을 개발시켰을까. 우리 모두 세상 당연한 것에 만일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