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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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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

어느 날 뉴스에 알파고라는 이름이 나온 적이 있었다.
구글에서 개발한 알파고는 이세돌이라는 우리나라의 천재적인 바둑기사와의 대국을 앞두고 있었다.
대국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국에서 이세돌의 승리를 예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AI, 머신러닝의 분야가 각광받게 된 상징적인 경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AI의 능력에 관심을 가졌고, 그 후 더욱 빠르게 개발되어 현재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술이 되었다.

하지만 새로움에는 항상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유발 하라리는 AI가 자유 주의 즉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릴 수 있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보의 기하 급수적인 증가로 인간은 완벽하게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일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졌다.
하지만 AI는 기계 하나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 집권화된 정보에서 필요한 정보를 내려받는 식이다.
그리고 각 기계는 중앙 데이터에 다시 자신이 모은 데이터를 보낸다.

많은 데이터는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돕는다.
인간과 기계의 데이터 처리량의 격차는 이미 인간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의 의사 결정 판단을 선택해야 한다면, 기계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처음에는 작은 의사결정이겠지만, 이후에는 거의 모든 부분의 판단을 기계에게 맡길 수 있다.

의사결정을 AI가 대체한다고 해서 그리 큰 일이 일어날까.
우리의 인생은 한편의 의사 결정 드라마와 같다.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의사 결정에 놓이고, 선택을 통해 인생이 변해간다.
그 의사 결정을 모두 AI가 대체한다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주체가 자신이 아님을 느끼며, 허무주의에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피하기 보다는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저자는 이 문제가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세계가 공동체로써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노력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큰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우리는 세계화를 막는 작은 문제들부터 해결해야한다.

이민

세계에는 다양한 이슈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민에 관련된 부분이다.
지금까지 이민을 논할 때 우리는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의견만을 내놓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도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인종차별주의가 아닌 문화주의라는 사상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이 우리와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차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민자들과 시민들은 아래와 같은 논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이민에 관련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첫 번째로는 이민자는 이민하는 국가의 핵심 규범과 가치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전통 규범과 가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민자들이 만약 첫번째를 잘 받아들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당장의 이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사람들의 문화주의적인 생각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지역의 우월성을 객관적인 우월성과 혼동하지 말며, 우월성을 주장할 때에도 잣대와 시기, 장소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너무 일반적인 주장으로 개인을 예단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문제를 파악하고 세계를 돌아봤으니 이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할 차례가 왔다.
앞으로의 우리 삶에 아래 두 가지의 생각을 꼭 해야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한다.

첫 번째로 넘겨 짚기를 주의해야한다고 한다.
세상에 다양한 가짜 뉴스가 있다. 그리고 그 뉴스의 영향력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진실을 찾기 보다는 가짜를 믿는 것에 더 치중한다.
복잡한 문제를 보다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착오적인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그 뉴스의 진실을 보기 보다는, 정보를 축소하고, 휴면 스토리에 집중하며, 음모 이론에 귀기울인다.
사람들은 어려운 정보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감정을 건들이는 이야기는 항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쉽고, 간단한 정보들은 이해하기 편하며, 음모 이론은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넘겨 짚기를 통한 예단이 아닌 진짜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두 번째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한다고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직업은 이제 내가 누구인지 규정할 수 없다. 자신의 기술 또한 AI에 대체될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을 받들고 있는 여러 개념들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무너지기 쉽다.
이럴 때일 수록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야한다.
저자는 명상이라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추상적인 가치에 나의 존재를 의지하는 것보다, 지금 물리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숨을 내쉬고 마시며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느끼기를 권유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정의한 이후에야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서 흔들림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책을 끝마치고 있다.

현재 도래한 사회부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부수적인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필수적이지만 등한시 했던 문제들을 일깨워 주었고, 책을 읽으면서 관련된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앞으로 직업이 사라지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한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나는 직업과 일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현재 나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직업은 4차 산업 혁명과 가장 잘 맞는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을 잃는 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대학교를 들어가는 2013년만 해도 컴퓨터 공학과는 그렇게 좋은 과가 아니었다.
이처럼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AI분야가 미친듯이 성장하고 있는 지금, 나의 직업도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사라질 수도 있을 것 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정의해야할까.
나는 저자과 말한 것과 같은 명상을 이용해 볼 예정이다.
명상이 처음에야 어려운데 후에 지나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적인 걸 싫어해 매일 유투브를 틀어놓고 지내지만 하루 10분만이라도 시간을 내보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결국에는 혼란 안에서의 나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 아닐까.

인지 혁명

이 책은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대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믿었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그 이론을 완전히 부정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공존했으며 그들은 서로의 부족을 죽임을써 더 강한 종족이 살아남아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생태계를 교란시킬만큼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인간은 약한 종족이었다. 우리의 큰 뇌는 쓸모없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뇌가 소모할 많은 에너지를 찾아야 했고, 큰 뇌는 우리의 근육을 퇴화시켜 다른 종족들보다 약한 몸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맛좋은 부위를 다 먹은 후 남은 것들을 가져와서 먹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점점 그 단계를 높여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로 언어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상상력에 있다고 한다. 동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며 서로간의 친밀성이 커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언어의 공이 크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정보를 공유했고 빠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들도 언어를 사용했지만 인간의 언어는 다양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효율적이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위험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또 좋은 이야기이던 나쁜 이야기이던 뒷담화를 통해 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유대감을 키웠고, 동족을 더 빠르게 늘려갈 수 있었다. 언어와 상상력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일 수 있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강한 힘을 주었다.

농업 혁명

아직까지 정확하게 어떻게 농업이 시작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 사람들은 녹말에 중독 되었다고도 하고, 신에게 바칠 재물을 위해서 농업을 시작 했다고도 한다. 어쨋든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이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축복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농업은 하나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냥을 하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했다. 동물을 먹으면서 단백질을, 채소를 먹으면서 섬유질을 골고루 섭취했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하면서 한정된 종류의 곡물 만을 먹게 되었고, 이는 영양소 불균형을 가져왔다. 우리는 평소 배가 고플 때 나가서 사냥을 했고, 그 이외의 시간은 자신들의 시간을 즐기며 보냈다. 하지만 농업 혁명 이후로 우리는 그 시간을 농사짓는 데 써야했다. 또한 날씨가 농사에 중요했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농사는 사람들을 정착하게 만들었고, 정착을 통해 늘어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했다. 또한 농사를 위해 길들인 가축들은 인간들에게 질병을 퍼뜨렸고, 정착 생활은 질병을 옮기기에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 과연 이것이 인간들이 자신들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해온 행동 일까. 진정으로 우리가 원했던 발전은 이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의 통합

우리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구들이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비슷한 이념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통햡한 것은 언어였을까. 언어는 이렇게 많은 숫자들을 모으는 데 있어 기반을 마련했을 뿐, 더 강력한 통합의 방법으로 아래의 3가지를 꼽는다.

첫번 째는 재화이다. 첫 거래는 물물 교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가진 사과 3개와 고기 한덩이를 교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원하는 것이 달랐다. 나는 고기 한덩이를 얻고 싶었지만, 상인은 사과가 아닌 딸기를 가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나는 복잡한 물물 교환을 통해 딸기를 얻어 다시 고기 상인에게 가야할 것이다. 이는 비효율적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색을 칠한 종이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종이가 주는 가치를 신용하였고, 이를 통해 더 편리한 거래를 할 수 있다. 재화가 주는 통합의 가치는 문화의 가치보다 크다. 문화는 국가적으로 한정되어 있을 수 있지만 재화는 범세계적인 통합의 수단이다.

두 번째로는 제국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들은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를 통치하기 쉽도록 문화의 망각에 밀어넣었다. 지금은 제국주의라는 것이 모욕적인 단어로 들리지만 제국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제국주의는 피지배국에게 문화적 산물을 낳았다. 피지배국은 이를 테면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 아프리카, 아랍, 중국, 망뢰족 사람들은 영어를 배웠고 인권, 민족자결의 원칙을 신봉하였으며, 서방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페미니즘 같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는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동의한다. 현재 자유주의, 인권에 대한 중요성,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받아들인 이념이다. 하지만 그 문화가 전달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그 문화가 정말 모두를 위한 좋은 문화라고 할지언정 그 과정에서 인도주의적이지 않다면, 그 행위를 가치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문화는 새로운 문화와 섞이며 다양성을 통해서 발전한다. 따라서 피지배국이 지배를 당한 후 문화가 발전된 것은 그들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피지배국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우월함과 탐욕을 위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것이 우연히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게 만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종교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창조한 상상력을 얼마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지, 이러한 믿음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흥미로웠던 내용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종교가 인간의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한명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이 노하여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벌을 내리는 형식을 통해, 인간이 동물들과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또한 악마를 통해 일신교는 다신교를 믿고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신은 우리를 창조시켰고, 우리는 그 신을 믿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일신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악마라는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신이 하나 더 있다. 하지만 일신교란 하나의 신만을 믿는 종교인데, 어떻게 그 신과 동등한 악마라는 신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악마를 믿어 지옥에 가게 만든다면 신은 왜 우리는 창조했는가. 그것은 지금까지도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들 중 하나라고 한다.

종교에 대해서 가장 재밋 었던 부분은 바로 이념에 관련된 부분이다. 나는 항상 이념이라는 것은 종교와 완전히 분리했으며, 종교는 무언가에 광적으로 신뢰하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념은 객관적인 생각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념 또한 종교와 같다고 이 책에서는 설명한다. 종교란 자신들이 상상한 무언가를 믿고 그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 주제가 신이 아닐 뿐 이념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를 외치는 우리들도 자본주의라는 종교에 열렬한 신봉자 일지도 모른다.

과학 혁명

우리는 무지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과학을 발전하게 했다. 처음으로 이전의 능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얻기 위해 도약했다. 우리는 그 동안 알 수 없었던 익명의 신에게 호소했던 무언가를 기술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우리는 앎으로써 힘을 얻어갔다. 그동안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범위라고 생각했던 생명의 탄생과 죽음도 우리는 그저 기술적인 문제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 혁명의 부분에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과학 기술들과 공존하기 위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념과 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치게 되면 법은 어떤 판단해야할까. 우리가 영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이념을 가지고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 나가야 할까. 라는 문제에 우리는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인간이 생태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우리의 잘못을 꼬집으며, 지금이라도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앞으로를 다시 계획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중략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 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운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나는 어떠한 문제를 생각할 때 한 번이라도 지리를 원인으로 꼽았던 적은 없었다. 지리는 하나의 학문으로만 인식했으며, 그저 수도를 정하는 데 필요한 지식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각 국가의 지리에 대한 설명과 그로 인해 이루어진 현상과 그리고 그 현상에 의해서 발생된 역사를 읽어보면서, 그 국가가 내린 결정들에 대해서 더 깊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모든 결과의 진리라고 생각하면 위험할 것 같다. 정답을 정해놓고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설명하더라도 맞아 보이며, 그것이 진리로 치부되기 싶기 때문에 경계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지리가 유일한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진 않지만,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강대국들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을 지나 한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들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잘 사는 나라들, 이미 자유로움과 행복을 누리는 나라보다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만 알 수 있는 국가들, 특히 그 중에서 도움이 필요한 빈곤층이 주를 이루는 국가들에게 더욱 관심이 갔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가장 나의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아프리카였다.

무책임한 선 긋기 놀이

아프리카라고 하면 아이들이 마른 몸이 화면에 나와 모금을 유도하는 유니세프가 먼저 생각난다. 실제로 하루에 1.90달러 미만을 사용하는 극빈층의 수가 3억 8900만이며, 이는 아프리카 전체 인구 12억의 1/4의 숫자이다. 아프리카는 끊임없이 내전이 발생하는 나라인데, 1946년부터 2008년까지 약 60여 년간 119개의 내전이 발생했고, 이는 평균 1년에 2개의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끊임없는 분쟁과 내전은 정치, 경제 등을 활성화 시키지 못했고, 빈곤층은 더욱이 극빈곤층으로 가게되어, 결국 다른 나라에 도움이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왜 아프리카는 이런 상황에 있을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책에서는 제목과 마찬가지로 지리를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세계 최대 건조 사막인 사하라 사막이 존재한다. 이는 사하라 사막의 광활함만큼 그 땅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쪽에는 지배할 식물도 별로 없고, 길들일 동물들도 많지 않다. 땅의 대부분은 늪과 사막이며, 많은 동물들이 밀이나 쌀을 재배하는 것을 돕지 않는다. 만약 코뿔소나 코끼리가 사람에게 친화적으로 벼를 재배하고 전쟁을 했다면 아프리카의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농업을 하기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면, 무역을 하기엔 좋은 나라 일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가파른 강 때문에 배를 띄우는 것도 쉽지 않고, 이 강들은 다른 지역을 연결 해주지 않아 배가 무역을 위한 이동 수단이 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다양한 언어는 서로 간의 소통을 더욱이 어렵게 하여 지역간의 단절을 야기했다.이러한 환경은 아프리카가 다른 지역과의 소통을 어렵게 했고,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으며, 유럽의 침략을 무방비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 이들은 문화, 종교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선을 그려 넣었다. 하루 아침에 국가가 나눠 지고 경계가 생긴 지역들은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 안에서 억지로 단일 민족으로 묶으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잘 될 일이 없었고, 내전으로 벌어져, 수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낳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콩고 민주 공화국인데, 200개가 넘는 부족으로 나뉜 이 나라는 언어 또한 수백만 개이며, 각 부족은 한나라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러한 전쟁은 나라가 발전될 토대조차 만들 수 없게 만들었고, 빈곤층은 극빈곤층이 되어 생계를 꾸려 나가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에는 아프리카가 위치한 곳, 즉 지리가 있었다.

지리의 힘, 결국 넘을 수 없을까

이 책에서는 제목과 같이 지리가 우리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또한 결과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유를 보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리의 힘은 절대적인 것이며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것이었을까.

요컨데 그리스는 척박한 토양으로 빈곤했고, 전쟁이 일어나기 쉬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비를 많이 지원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수십개의 섬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해양 국방비를 예산으로 잡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는 이러한 환경과는 반대로 문명의 꽃을 피운 나라 중 하나이다. 그리스의 척박한 땅은 다른 나라를 탐험하게 할 필요성을 부여했으며, 이로 인해 무역이 활발해졌다. 이는 타지의 다양한 지식 등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많은 지성인들과 지식인들을 발생할 수 있게 하는 요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리에 대한 더 많은 관심으로 인하여 양질의 토양을 갖춘 국가들보다 지리에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지리의 힘은 중요한 요인이나 넘을 수 없는 산은 아니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대의 장점을 이끌어내면, 다른 국가에서 가질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