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김지훈

Browsing

한줄평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한 관계, 우울한 사회상이 어울어져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서평

실제로 이 책은 나에게 꽤나 재미있었다. 매우 속도감있게 전개가 이루어져 읽는데 집중하기도 용이했다. 하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책이다. 다른 멤버들은 인생의 책으로 꼽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고 뜻깊은 책이겠지만 나에게는 ‘아 무언가 있긴 한데 나는 모르겠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서평도 길지 않게 쓰려한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했던 부분까지만 써보려 한다.

수면 위의 행동은 수면 아래 감정을 나타내지 못한다.

토마시, 테라자, 사비나, 프란츠, 시몽, 카레닌 등 주인공들은 모두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소련의 공산화가 진행중인 동유럽을 배경으로 각 인물들은 매우 인상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들의 관계는 혼란이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글을 전개하며 작가는 각 인물 한명한명의 심리를 세밀히 묘사해준다. 특히 불륜이라 할 수 있는 관계에서 토마시가 가지는 태도, 사비나의 예술관을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묘사하는 기자에 대한 항의, 죽음 직전 법적 아내를 보는 눈빛에 대한 프란츠의 심정 등 다양한 장면에서 수면 아래 숨어있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람의 행동은 그 감정을 오롯이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정말 인상깊게 활용한다.

토마시

토마시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다. 그는 분명 배우자를 사랑한다. 그 스스로도 헷갈려하고 다른 여자를 습관적으로 만나기는 하지만 결국 그녀가 테레자에 가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사랑에는 육체적인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테레자와 그 사이와 같은 사랑의 형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뿐이다.

성공한 외과의사에서 정치세력에 찍혀 유리닦이, 트럭운전수로 지속적으로 그의 사회적 지위는 하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갈수록 더욱 안정되어간다. 그의 혼란은 사실 테레자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는데서 시작했다. 사랑을 의심하던 그는 지속적으로 다른 여자를 만나며 그 의심을 이어나갔지만 사회적 지위가 하강하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지면서 줄어들었으나 의심이 사라지진 않았다. 결국 시골에 가서 테레자와 카레닌을 묻으며 서로 간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안정을 찾게 된다.

토마시 이야기 중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매우 와닿았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통해 그는 공산화의 모순을 꼬집었고 당시 사회 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렸다. 그런 소신을 그는 끝까지 꺾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소 오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정말 생각지도 않게 나에게 이 책을 각인시켰다. 아마 10년 뒤 이 책을 떠올릴 때 나는 다른 이야기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는 아마 내가 소설 속에서 현실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대 대한민국에도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지만 스스로는 정의감에 불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디 그들이 더이상 부끄럽기 전에 오이디푸스의 과오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응당한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테레자

테레자는 시골소녀다. 사랑에 빠져 도시의 혼란에 몸을 던졌고 도시의 혼란이 점점 심해지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혼란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프라하에서 취리히에 가서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시골소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었으나 결국 그것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처음 도시에 나온 사랑하는 토마시마저 버리고 프라하로 돌아간다. 프라하에서도 그녀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돌아온 토마시와 함께 할 시간마저 없는 뒤바뀐 생활을 하게 된다.

토마시의 여성편력은 지속적으로 테레자를 괴롭혔고 그러한 토마시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여자의 냄새를 배고 온 토마시에 대해서도 그녀는 말 한번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국 정말 시골 소녀였던 것이다. 시골소녀가 자신의 소중한 것 하나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는 것과 같이 자신의 사랑인 토마시가 정말로 떠날까 두려워 혼란에 빠진 것이다. 결국 테레자는 시골에 돌아가서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다. 카레닌과 함께 소를 치면서 좋아하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그녀는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카레닌의 죽음을 통해 토마시와의 관계를 재발견하고 춤을 추러 가는 장면은 그를 무엇보다 확실히 보여준다.

사비나

소설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작가의 작품관을 표현하는 듯한 사비나의 예술관이었다.

사비나는 배신이 목표인 여자였다. 프란츠에게 사비나의 배신은 그녀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정도이다. 그녀의 그러한 배신은 처음에는 모든 것에 대하여였다. 조국을 도망나온 뒤 조국을 침략한 세력에 관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끝에 가서 사비나는 그녀의 배신은 키치에 대한 배신이라 했다. 사실 아직 키치가 어떤 것인가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나름 짐작으로는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 좋다고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은 불행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보통의 관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삶은 극적이게도 그가 바란 키치에 둘러싸여 끝나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가 상류층으로 그녀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가식적인 문화에 스며들어가는 것으로 그녀는 살아가게 된다. 이런 그녀의 삶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부정하려하지만 이미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프란츠

프란츠는 엄친아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없는 것을 동경했고 그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진흙탕으로 뛰어들어갔다. 예쁜 부인, 안정적인 직업, 소득, 사회적 지위를 다 버리고 사비나라는 자신과 전혀다른 존재를 추구하며 새로운 자신을 찾으려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그러한 시도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가 믿었던 대장정은 결국 허구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죽음을 맞게된다. 대장정은 허울뿐이었고 어떠한 사람도 대장정에 진심인 사람은 없었다. 단지 구호만을 외치고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운동일 뿐 실제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모순을 죽음으로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를 비롯한 현대에도 여전히 진행중이 대장정의 모순과 위선을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가 프란츠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후 그의 의사와는 상반되게 그는 결국 자신이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은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사비나가 배신했던 곳이다.

시몽

토마시의 아들이라는 시몽은 매우 신기한 캐릭터다. 마지막에 가서는 겉으로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안정을 찾은 것 같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동경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 아버지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고 아버지를 신성시하며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기자를 도우며 사회운동을 했고 아버지의 사회운동에 대한 미참여를 보고 사회운동에 대한 혼란을 느끼며 결국 사회운동을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며 살게된다.

시골에 가서 살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상상에 기반하여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 어찌보면 시몽은 너무나 이해가 되는 캐릭터이다. 어린 사람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부풀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시몽은 인물 중 사비나와 함께 살아남는다. 이를 그가 젊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시몽은 진정한 안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시골로 돌아간 토마시-테레자와 달리 시골에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찾으려 했기에 그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였다. 사비나 또한 모순된 일상 속에서 혼란을 여전히 겪고 있었다.

카레닌

개인적으로 카레닌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동물보다 못하다. 동물보다 복잡하지만 결국은 동물과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멀리 돌아오는 존재이다. 개의 삶은 인간보다 훨씬 짧다. 짧은 카레닌의 삶은 단순히 반려견이라기 보다는 모든 주인공의 삶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계인이 본다면 우리의 삶 또한 매우 짧을 것인데 왜 우리가 개와 다른가. 창세기 구절로 시작한 챕터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지우며 인간과 개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결국 모든 주인공들이 매우 혼란스러운 일생을 살아왔지만 카레닌과 같이 안정을 추구한다. 카레닌은 극 중 초반부터 안정된 상태로 그 상황에 적응하여 살아왔지만 극 중 인물들은 매우 복잡한 삶을 살다가 결국 카레닌과 같은 안정을 찾고 곧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개와 사람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동일한 목적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이다.

주인공들은 정말 말도안되게 커다란 혼란을 고민한다. 키치에 대한 배신이 그러하고 대장정에 대한 회의가 그러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본질, 사회의 본질과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 모두 거대한 혼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의 끝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조그만 카레닌과 같다. 삶의 모습이 어떤 방식이든 그 사람이 추구한 이상이 무엇이든 결론은 사과 나무 아래 네모난 흙더미가 그의 마지막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정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것 같다. 결국 어떤 사람이든 같은 모습으로 끝이 나기에, 끝에 가서야 이를 깨닫는 존재이기에 그러한 거 같다.

그럼에도 사람은 위대하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명예를 쌓아도 이는 말일 뿐 끝을 바꿔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나누며 전해왔다. 그 결과가 이 세상이다. 21세기의 발전한 문명이 그 증명이다. 물론 여전히 혼란스럽고 갈등하며 결론을 못 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진 않는다. 한 개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혼란은 전해지고 발전한다. 그것은 위대한 것이다. 유한한 삶에서 영원한 혼란을 낳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잊혀질지 몰라도 어떠한 과거의 가벼운 존재가 떠올린 생각, 혼란은 남아 세상에 전해진다. 그렇기에 인간은 개와 다르고 가벼운 존재지만 동시에 위대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지리의 아래 살아가는 작디작은 인간이어라

★★★★☆

지구는 5대양 6대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에는 평야, 산맥, 고원, 빙하지대, 툰드라, 사막 등 정말 다양한 지형과 지물이 존재하는다.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지리의 힘에 지배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여름의 무더위와 습기, 겨울의 칼날같은 시베리아 기단의 한파, 대부분의 대학교가 산지에 위치하여 어느 학교나 자랑할만한 오르막길이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지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지리의 힘]은 그러한 지리의 힘과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 정치를 합친 지정학이라는 분야로 세상을 설명한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극복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지리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책에서는 단순히 도덕적, 정치적으로만 생각하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국제정치적 행태에 지리를 곁들여 설득력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한반도의 산맥과 강, 지역별 특산물 등을 공부한 이후로 이 책을 읽을 때만큼 지도를 많이 본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지도를 펴놓고 고개를 무한히 돌려가며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총 10가지 지역의 이야기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중국,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지리이다

중국은 북한과 더불어 지상 최악의 인권침해국가이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는 외부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티벳과 신장, 최근에는 홍콩에 있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티벳과 신장 지역은 오랜 기강 소요 사태도 있었으며 현대에도 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많은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중국의 티벳과 신장, 홍콩 지역 탄압에 대해 비난하지만 중국은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사상을 주입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국제정치학의 입장에서 보면 실익은 없는데 명분만 잃는 백해무익한 행위이다. 하지만 중국의 진정한 의도는 국제정치학이 아니라 지리학을 통해 보아야 드러난다.

중국의 서쪽 끝에 위치한 티벳은 중국의 물을 지배하는 곳이다. 중국의 커다란 세개의 강의 원류는 티벳고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티벳고원은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 인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최근에도 유혈사태가 벌어질만큼 사이가 좋지 못하다. 물론 지리의 영향으로 지금까지는 소규모의 교전으로 끝나고 있지만 티벳을 인도가 장악한다면 중국이 치뤄야하는 대가는 적지 않다. 그렇기에 중국은 티벳을 그렇게 사수하는 것이다. 신장 지역도 동일하다. 중국의 한족과는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도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신장지역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잇는 지역으로 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동시에 중국 중심부를 지키기 위한 완충지로서 전략적 위치에 해당한다.

중국은 현재 해양강국을 노리고 있다. 한세기전 청나라가 양무운동을 통해 해상강국을 꿈꾸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남중국해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남중국해의 영유권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군을 육성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다오위댜오(센카쿠) 열도와 말라카 해협, 대만 등의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국가들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지난 오랜 역사동안 외쳤듯이 중화사상을 다시 되살려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형의 한계를 뛰어넘어 땅이 아닌 해양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이웃한 모든 국가들은 중국의 잠재력을 알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언제든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자 하고 있다.

미국, 사기적인 스타팅 포인트

미국의 지형은 먼저 광활하다.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다양하다. 거대한 사막에서 거대한 삼각주 지형, 평야, 사막, 협곡, 태평영과 대서양 등 정말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지정학적인 조건도 매우 우호적이다. 접하는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 밖에 없는데 그 둘 마저도 미국에 호의적이고 의존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미국의 힘은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라는 것이다. 달러화는 기축통화이고 미군은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주둔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원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기술의 발달로 자국 내에서도 어마어마한 석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약점이 보이지 않는 국가이다. 그 정치체제의 자유로움이 역으로 약점이 되어 혼란이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많은 호사가들의 예측과 달리 이미 한세기 이상 지구 상 최강의 국가이다.

미국은 사실 본토보다는 앞으로 언급할 나머지 지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의 개입은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각 지역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서유럽, 혼돈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는 길

서유럽은 정말 오랜시간 크고 작은 분쟁을 겪어왔다. 이유도 다양했다. 허울뿐인 황제의 자리를 두고 싸우기도 했고 종교적 해석을 두고 싸우기도 했으며 가문의 원한을 두고 다투기도 했다. 수많은 국가들과 그들 사이 복잡한 국경선만큼이나 그들은 많은 혼란은 겪었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유럽은 통합을 바라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심되는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브렉시트 전에는 영국도 한 자리르 차지할 수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영국은 스스로 유럽의 국가이길 바리지 않고 있어서 언급하지 않겠다.

프랑스는 명실상부한 유럽 내 최고의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가 주는 축복의 힘으로 프랑스는 카를 대제 이후 지속적으로 강대국이었다. 2차 대전에서 굴욕적으로 독일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유럽 내에서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가장 잘 사는 국가였다.

그에 비해 독일은 매우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굽이치는 라인강을 따라 수많은 소국으로 나누어져 전쟁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근대에 들어 프로이센이 등장하고 독일은 처음으로 통일의 가능성을 엿봤다. 근면성실한 국민성과 프로이센의 유능한 재상, 국왕의 힘으로 독일은 마침내 통일을 했고 통일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두번의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무참히 패배했다.

세계 대전에서 2번이나 괴멸적인 타격을 받고 냉정시대 갈라져 반쪽짜리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은 다시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정말한 기계를 생산하고 가장 믿을만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산업을 부흥시키고 기업을 성장시켜 어느새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강대국이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독일은 다시 한번 유럽정복을 노리고 있다. 이번에는 전쟁이 아니라 통합의 물결을 타고 독일의 유럽 제패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EU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둘은 현재까지는 자유와 정의라는 관점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지도자 간에도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지도자와 미국 기업의 침공에 맞서 유럽의 자존심을 세우고 러시아의 독재자가 유럽 정세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 중이다.

러시아, 거대한 영토이나 기후가 발목을 잡는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유럽에서 극동아시아까지 이어진 거대한 영토는 러시아의 힘이자 장애물이다. 영토에 비해 적은 인구는 영토를 개발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영토가 기후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동항을 찾아 끝없이 남하하던 러시아 제국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유효할만큼 러시아는 기후의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푸틴이라는 독재자는 러시아를 그 어떤 지도자와 비교해도 잘 이해하고 있고 러시아의 자원을 활용해 영향력을 늘리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천연가스라는 자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강화하여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어 있던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국제 정세와 지리의 힘을 활용하여 잠재적인 적국에 혼돈을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리아 사태와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이다. 둘 모두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강행하였고 이제는 되돌리지 못할만한 결과로 만들어 착실히 러시아의 영향력을 늘려가고 있다.

거기에 최근 온난화의 급격한 진전은 러시아에게 영구 동토의 해빙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까지는 활용법보다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지만, 시베리아 영구 동토의 자원을 무한정 이용하게 된다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 애증의 동맹관계

한국과 일본만큼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어디있을까? 마주보고 악수는 하고 있으나 마주보는 눈은 동맹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적국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북한이라는 ‘위험한 약자’의 존재가 있다.

한반도 문제는 한국인인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고 지리의 힘에서 다루는 내용은 다소 지리보다는 정치에 치우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북한의 문제 있어 주변국의 선택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과연 미국은 어느 지점까지 북한 문제에 개입할 것이며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에 대핸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일본은 통일 한국에 대해 호의적일까? 한국은 통일 비용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다양한 주제를 던지긴 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 [지리의 힘]은 명쾌한 답을 주진 않는다. 다만 지형이 한국과 일본의 민족성에 영향을 준 부분은 읽어볼만 하다.

라틴 아메리카, 속 빈 강정 같은 대륙

보통 라틴 아메리카는 아마존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실제로 대륙 전체가 지형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다.

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아마존은 사람의 개발을 허용치 않으며 물자 수송에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아마존을 둘러싸고 빙둘러 도넛과 같은 지형 활용도를 보이는 라틴아메리카를 비유하는 말로 ‘속 빈 강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하지만 동시에 라틴 아메리카 남부를 보면 평야와 함께 세계에서 손꼽을만큼 비옥한 땅이 나온다. 아르헨티나가 위치한 평야지대의 힘은 대단해서 한때나마 아르헨티나를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중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이 후 정치적인 요인으로 그때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곡창지대의 위력은 언제나 경계할만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 너무나 큰 축복, 상반되는 결과

아프리카와 중동은 모두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중동은 석유라는 현대 산업 시대의 젖줄을 쥐고 있고 아프리카는 마찬가지로 다양한 광물자원을 통해 현대 산업시대, 나아가 미래 4차 산업혁명에서도 중요성을 차지할 광물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두 지역은 매우 비슷한 분쟁과정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부족을 기준으로 내전에 빠져 있고 그 격렬함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어떤 전쟁보다 격렬하다. 다만 전쟁의 종결에 있어 차이가 발생한다.

먼저 중동 국가들 중 일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자원과 자치권, 보호권을 바꾸었다. 영국과 미국이 2차 대전 이후로 지속적으로 자원 확보를 위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동 정세에 개입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란,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듯 분쟁과 개입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대표적인 이슬락교 종주국이지만 미국과 영국은 동맹으로서 중동 등지에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면서도 사우디만은 존중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반대로 아프리카는 강대국의 개입을 통해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중동과는 달리 아프리카에서 강대국의 전략은 전쟁의 혼란을 이용해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 선진국은 아프리카에 매우 무신경하다. 그들의 정치적 혼란에 개입하려 하지도 않고 그들의 요구에 귀기울지도 않는다. 서구 열강이 멋대로 그은 국경성 때문에 오늘 이순간에도 아프리카인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아프리카는 낙후된 환경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WHO 수장이 된 테드로스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 눈부신 성장을 반복했고 그 결과 세상에거 가장 오래된 이 국가는 중국의 일대일로의 영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중국의 개입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일어나지만 중국은 경제적 이득 외에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내전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어도 아프리카의 광물에만 관심을 갖는다. 더구나 중국은 아프리카에 건설만 할뿐 아프리카를 발전시키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건축과정에서도 자국민을 데려와 쓰는 등의 방식으로 자국의 기술이 아프리카에 퍼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듯 아프리카와 중동은 둘다 자원을 지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된 반면 나머지 한쪽은 여전히 타국이 그어놓은 국경선 아래서 끝없는 분쟁을 반복하고 있다.

인도, 그 어떤 국가도 인도를 단일 지배한 적 없다.

인도는 정말 크다. 지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중국 못지 않는 인구를 자랑한다.

힌두교를 바탕으로 한 이 국가는 영국의 식민지배 이전에는 다른 국가들의 침공을 그 거대한 품으로 안아가며 성장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벌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였고 그 후 오랜 시간 계속된 이슬람의 침공을 받고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단 한번도 통일된 적 없다. 거대한 인도 대륙은 언제나 몇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공생했으며 단 한번도 통일된 정치체제를 갖춘 적 없다. 영국은 이를 활용해 인도를 단일한 체제로 지배하기 보다는 그 지역 간 갈등을 이용해 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활용하는데 집중해왔다.

영국의 갈등을 활용한 식민지배는 식민지배가 끝난 후로도 커다란 분쟁을 남겼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그것이다. 특히 파키스탄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언제나 커다란 인력 피해를 낳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에 비해 방글라데시는 종교적 차이로 분열되어 있긴 하지만 인도에 비해 약한 국력으로 갈등을 표면화 못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국력에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맞서기 위해 주변 국들을 활용한다. 아프가니스탄을 끌여들이기도 하고 중국과 연대하는 등 방식으로 인도와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최근에도 유혈사태를 낳았다.

북극, 온난화가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

북극은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인류가 정복한 지역이다. 하지만 북극은 바다로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등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불모지라는 것이 언제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환경파괴는 북극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기회다.

북극항로는 그야말로 21세기판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야 하는 대륙간 항로가 북극을 통하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러한 가치를 인지한 러시아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에 나섰고 급기야 군대를 주둔시키며 북극항로를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온건한 국가들도 나서고 있다. 북극항로 자체의 가치 외에도 북극에 묻힌 수많은 자원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각자의 군사력을 동원해 러시아의 북극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그들의 정당한 몫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에 비해 알래스카를 통해 북극항로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미국은 조용하다. 온건한 캐나다, 스웨덴도 나서는 판국에 너무나 조용하다. 물론 미국은 북극 아니라도 충분한 지리적 축복과 국제적인 영향력을 지닌 국가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북극에 대해 침묵할까?

지리는 극복하는 날은 오겠지만 21세기에는 불가능할 것

자연재해를 통해 자연의 힘을 체감하는 것과 달리 지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고정된 변수로써 존재하여 그 위력을 실감하기 어려우나 분명 실재하고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주고 있다.

인류는 수많은 기술을 만들어왔다. 이제와서는 화성 정복을 위해 민간, 공공 모두 달리고 있다. 항공기술은 사실 지리의 힘을 무력화하고 있고 인류의 통신기술은 지리를 뛰어넘어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21세기동안에는 인류는 지리에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이는 인류의 기술 발전이 느리거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지리의 힘이 그만큼 강대한 것이다. 홍수와 태풍과 같이 눈에 띄는 피해를 주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평지라면 직선으로 도로를 건설하여 많은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산의 존재 때문에 수많은 비용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있는 현대의 도시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지역에서도 지리는 인류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처음으로 인류는 지리의 힘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지리를 대상으로 한 기나긴 인류의 투쟁은 과연 인류의 승리로 끝날 수 있을까?

2020년 7월 지정도서

  1. 일시 : 2020년 7월 5일 오전 10시
  2. 장소 : 강남역 부근(예정)
  3. 도서 : 지리의 힘
  4. 저자 : 팀 마샬
  5. 발제자 : 김지훈

(Brainstorming)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지리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그리고 그 지리가 당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1. (중국과 미국) 중국과 미국의 자국 영향력 확대를 위한 타국 개입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G2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두 나라는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영토 밖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럽과 중동지역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중국은 아프리카와 한반도에 지속적인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국가의 개입의 양상은 전혀 다릅니다.

미국의 경우, 냉전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유럽에 나토를 통해 개입을 하였고 중동에는 세계 평화와 석유 확보를 위해 개입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개입은 군사 개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지역 내 권력 양상을 미국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만드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아프리카에 개입을 하면서 자원을 비롯한 경제적인 이득만 취할 뿐 이외 지역내 갈등관계나 권력구조에는 개입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영향력을 쌓고 있습니다.

2. (러시아) 러시아는 과거 소련과 같은 국제적인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러시아는 이 책 속에 소개된 그 어떤 국가보다 지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입니다. 풍부한 천연가스라는 지리의 힘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동시에 넓은 영토를 가졌지만 대부분 척박하고 자력으로 해양으로 진출하기에는 한계를 가진 지리의 힘에 갇혀 있습니다. 거기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 항로가 개발될 경우 가장 수혜를 받는 지리이나 그를 둘러싼 갈등의 한가운데 위치하기도 합니다.

3. (아프리카와 중동) 아프리카와 중동의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프리카와 중동은 모두 식민주의의 희생양입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서구 국가들의 식민지로서 기능하기 위해 내부적 사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국경선이 그어졌고 그로 인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가장 조명 받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광대한 크기의 대륙이며 동시에 많은 자원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동 또한, 종교라는 거대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제국 주의 국가의 지배의 용이성을 위해 지배계층 구조가 왜곡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거기에 더해 이슬람 자체의 종교적 갈등까지 합쳐져 IS, 알카에다, 이란 등 갈등이 진행중인 지역입니다. 거기에 중동이 보유한 석유는 전세계의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자원이어서 중동의 갈등에는 언제나 수많은 국가들의 관심이 따릅니다. 석유를 차지하려는 미국, 유럽,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대리전이라 할만큼 중동은 여전히 서구의 영향을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4. (한국, 북한, 일본) 한반도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한국과 북한,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하면서도 매우 이질적인 국가들입니다. 특히 북한은 위험한 약자의 입장에서 문제의 소용돌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명목상 여전히 진행중이며 한국과 일본은 미국, 북한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한반도 문제는 지난 70년간 고착화되어 왔습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권력구조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방위비를 두고 협상을 하고 있으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관계는 전에 없이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습니다. 북한과 한국의 관계는 최근 몇년간 화해 무드로 흘러가는 듯 했으나 최근 돌연 북한과 한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중국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전에 없던 긴장관계를 만들어가면 신냉전시대로 이끌고 있습니다. 거기에 북한과 맞닿아 있는 러시아는 호시탐탐 동아시아 정세에 개입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득을 취하고자 합니다. 거기에 중국과 일본,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영토 문제도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5.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올바른 방향일까요?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다보면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3.1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라고 배웁니다. 민족자결주의는 민족의 일은 민족이 결정하자는 이야기로 당시 1차대전 승전국들은 패전국을 상대로 식민지 문제 해결을 각 민족에 맡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당시 일제는 1차대전의 승전국이었으므로 민족자결주의는 한반도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민족자결주의는 결국 민족주의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경우 민족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민족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며 칼로 자르듯 자를 수 없는 개념이어서 오히려 민족주의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책 ‘지리의 힘’에서도 너무나 많은 민족, 부족이 나오고 그들의 갈등은 지리와 만나며 증폭되는 사례도 있고 지리를 만나 일단락되는 경우가 나옵니다.

민족주의는 어떠한 집단의 결집력을 높이는 것에는 분명 효과적이나 이는 동시에 집단 외 존재를 배척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2차대전에서 나치의 게르만민족주의의 폐해를 목격한 서구 국가들은 새로이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강조하며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1970-80년대 부상한 아시아의 용들은 민주주의 국가였고 민족주의 성향을 짙게 띄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신용

당신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타인을 얼마나 믿습니까? 만일 길가다가 한 사람이 너무 급하다며 당신에게 돈을 5만원을 빌려달라는 사람에데 당신은 5만원을 그냥 빌려줄 수 있습니까?

위의 대답은 곧 신용의 위력을 보여준다. 한국과 같은 신뢰가 바닥을 치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없기에 매우매우 다양하고 귀찮은 과정들을 통해 신뢰를 담보한다. 최근 없어진 공인인증서가 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귀찮은 방식으로 신뢰, 신용을 구축하려 할까? 거기에 첫번째 챕터의 답이 있다.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편에서는 빚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자극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빚을 내주고 있는 은행 또한 악덕 기관이 아니다. 그들의 거래는 신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은행이 돈을 빌리고 지정한 기간까지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은행의 이익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그를 통해 시장이 커지고 산업이 발전한다는 외부효과를 고려할떄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 더 크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신용이다. 그리고 은행은 신용을 담보로 빚을 내어준다.

자본주의의 신용거래는 산업을 발전시키고 시장을 키우는데 최적인 제도이다. 과거에는 신용이 없었기에 사람 간 거래는 요원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급자족 외에는 매우 좁은 금전관계를 가지며 살아갔다. 상업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신용을 담보하는 다양한 방법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가 은행이었다. 은행은 자신의 이익과 돈을 굴린다는 목적에 맞추어 운영되면서 점차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였고 그 결과가 보험이었다. 또한 대출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산업과 기업에 투자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결국 금융상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근거에는 신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진도 분명 이를 이해한다. 하지만 도입부에 은행은 모든 사람의 예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기라는 논조로 흥미를 끈다. 사람의 관심은 살 수 있겠지만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소비 마케팅에 현혹당하는 것이 잘못인가?

마케팅의 시대다. 개인 맞춤형 광고는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 전방위적으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고 있다. 매 회마다 어이없는 ppl을 가져오는 모 드라마는 낮은 시청률에도 ppl이 화제가 되는 수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소비마케팅들이 사람을 현혹시키고 바보만드는 것처럼 묘사한다. 과연 진짜 그러한가?

소확행, 가심비라는 말은 소비마케팅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책에서 나오듯 자신이 아는 범위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다. 상품 구매에 있어서도 필요만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대다수이다. 현대의 마케팅을 그 지점을 핀포인트로 공략한다. 무의식에 호소하기도 하고 철지난 B급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여전히 스타 연예인을 통한 마케팅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며 사람들은 아직도 광고에 충동구매를 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 마케팅은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모세혈관이다. 앞서 말한 신용과 신용을 기반으로한 금융상품들이 자본주의를 돌아가게하는 심장이라면 마케팅은 모세혈관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본주의의 혜택을 전해주고 동시에 모두에게 자본을 사용하게 한다. 물론 이러한 마케팅이 과하면 사람들은 반발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속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커다란 마케팅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개인이 얼마나 신중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가이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나만 나쁜 결과를 얻었다며 게임의 룰을 바꾸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복지는 퍼주기가 아니다

복지는 퍼주기가 아니다. 행정학을 공부한 나에게 복지는 하나의 보조기구이다. 시장도, 정부도 실패한다는 전제에서 복지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보조기구이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복지=세금퍼주기 라는 인식이 생겨있다. 물론 현재 복지 정책이라 부르는 것들이 앞으로 환경변화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철학을 담기보다는 그냥 국민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 진행하는 것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는 절대 퍼주기가 아니다.

국가가 운영되면서 빈곤문제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방치할 수는 없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복지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지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목적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의도치 않은 희생자를 다시 자본주의 사회 속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복지 정책은 포퓰리즘이 된다. 당장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을 주지만 조금만 지나면 국세를 보충하기 위해 다음 세대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것이 포퓰리즘 정책이다. 복지와 포퓰리즘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복지는 퍼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게 한다.

용두사미의 구성

시작은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후의 내용은 대책없이 단조롭다. 첫 챕터에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보다는 교양적 수준의 이해를 일깨우는 수준을 넘어가지 않는다. 또, 인터뷰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다. 같은 변호사가 몇번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단점은 많지만 한번정도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단, 이 책만을 읽고 자본주의를 다 아는 듯 신념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

레이 달리오는 승계에 실패할 것이다.

레이 달리오는 브릿지워터스의 수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를 운영한다. 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선물을 활용한 헤징, 지수펀드와 같은 개념을 그는 그 시작부터 보아왔고 직접 발전시킨 펀드의 새로운 개념도 많다.

이런 대단한 업적은 사실 위인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이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결정되었을때 기대를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레이달리오라는 사람에게는 큰 실망을 했다. 그가 말하듯 그는 셰이퍼이다. 세상을 바꾸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셰이퍼를 길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벌써 10년이나 승계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레이달리오의 문제이다. 그는 한국말로는 꼰대이고, 영어로는 boomer이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그는 성공적인 승계에 실패할 것이다.

레이 달리오 평범한 투자자들에 대한 조언 -

꼰대 레이 달리오의 Latte is Horse~

레이 달리오는 실제로 헤지 펀드 운용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온 사람이다. 헷징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고 많은 국가 기관들, 지도자들이 그의 인사이트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는 대체불가한 사람이다. 보통 대체불가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긍정적인 찬사이지만 레이달리오의 경우 현재 그가 성공적인 승계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대체불가한 레이 달리오는 그가 말하듯 10대시절부터 주식투자를 했고 성공도 실패도 겪으며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었다. 그는 그가 말하듯 원칙을 공유하지 않다가 브릿지워터스의 직원들에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 공유를 했고 이제는 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그의 원칙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개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목적론적으로 생각하고 목적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그가 말한 것처럼 셰이퍼 혹은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는 그가 말하듯 이타적인 동기보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사실 이를 권장할만한 요소는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 책 ‘원칙’이다.

책에서 그는 그의 성공과 실패이야기를 하면서 원칙을 세우고 이를 따라온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원칙을 공유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강요하는 모습도 나온다. 그러면서 과거에 모든 일은 발생했었고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기에 원칙이 의미가 있으며 원칙에 맞추어 생각하고 원칙을 지속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그가 성공했기에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그의 성공담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과거가 일치할 수 없고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감을 줄 수는 있어도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초반부 그가 자신의 인생담을 이야기하면 원칙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개인적으로는 “아…. 700페이지 짜리 자기 자랑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맞았다.

“원칙”의 오만함

‘원칙’은 보통 과학 이론에서 언급된다. 사회학에서는 원칙보다는 경향성이라는 용어로 순화하여 표현한다. 이는 과학과 사회학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과학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A라면 B라는 명제가 발생할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변수를 통제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고 특히 돌발 변수가 많아 원칙이라는 말로 정리하기에는 예외가 너무 많기에 경향서이라는 말로 예외를 근본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사회학의 측면에서 볼때 Principle, 원칙이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오만함의 상징인 것이다. 물론 그가 정한 원칙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두가 투명하게 약점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경쟁적 대화를 통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대명제에 기반한 것이고 자세한 원칙은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20세기의 사람들과 21세기의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미국의 부머현상과 한국의 90년대생 현상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사회 구성원의 성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 달리오는 20세기에 성공했던 이야기를 가지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이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회사에서 회사생활 잘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왕년의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부장님 같이 말이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원칙이 있을 것

이 책은 저자의 힘으로 잘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브릿지워터스라는 지난 반세기를 풍미한 헤지펀드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새로운 후계자를 찾고 있는 레이 달리오는 새로운 후계자 대신 그를 대신할 체제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만 그의 원칙은 체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와 달리 다른 셰이퍼들은 그와 같이 목적론적이고 경쟁적인 자세로 성공했지만 그의 조직은 열린 조직을 만들어 갔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잃고 혁신을 잃어가고 있지만 내부의 새로운 혁신이 발생할 수 있는 열린 조직을 만들었다. GE나 노키아와 같은 기업도 실패를 겪고 보다 열린 조직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레이 달리오의 브릿지 워터스는 여전히 레이가 없는 브릿지워터스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는 여전히 공동 CEO로 자신의 그림자를 짙게 조직에 드리우고 있다. 떠나야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해서 발을 들이고 뒤에서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를 대신할 새로운 대담한 후계자가 등장해 그를 밀어내지 않는다면 이루어내지 못한다. 이는 원칙이 조직을 얽어 매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금융권은 원래 그렇다는 말로 이를 두둔할지도 모르겠다. 한번의 거래에 수천억원이 오갈 수도 있는데 그런 위계질서나 엄중함이 없다면 유지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는데 과거를 고집하기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 과거의 대명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조직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오랜 세월 세운 원칙보다는 모두가 함께 논의하여 정한 원칙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변동성에 대응해 새로운 헷징 전략을 만들어 혁신을 이끌어 온 20세기 레이달리오와 같이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원칙을 세워야 한다.

요즘에는 티끌모아 티끌이라는 말은 한다. 실제로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어 성공하는 사례는 이제는 불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아주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티끌을 모아 태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일정한 방식으로 티끌을 모아야지 티끌이 태산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티끌모아 티끌?

당신이 매년 새로운 것을 다짐하지만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이 주는 교훈에 비추어 행동하는 것은 둘째라고 해도 우선 내가 해본 수많은 일 중 성공했던 것과 실패했던 것의 차이를 알기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 또한 매일매일 하나씩만 새로운 것을 더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목표 하에 벌써 28년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나는 내가 바란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대답은 “노(NO)”다.

솔직히 내가 계획한만큼 내가 나은 사람이 되진 않았다. 정말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었겠지…… 다만 나는 모든 계획을 실패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퍼센트로 따지면 약 60%는 달성하면서 산 것 같다. 성공 했던 목표도 실패했던 목표도 모두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동일했지만 결과는 극명했다. 

물론 실패 이후에도 달성하지 못한 40%를 채우고 싶어서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해왔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얻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답을 찾았다. 습관에 관한 목표에 관한 이 책의 인사이트는 놀랍다. 

목표 달성 프로세스는 누구나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왜 누구나 달성할 수 없는가에 관해 그는 정말 단계단계 자세히 써두었다. 자기계발서를 보고 보통 쓸모없는 책, 잘됐으니까 쓰는 책 정도로 평가 절하했는데 이 책은 다르다. 작가 본인의 경험에다가 치밀한 분석과 체계화를 거쳐 “목표 달성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이연복 셰프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연복 셰프가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하는 이유

“알려줘도 어짜피 할 사람만 해요”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를 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책 읽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방법을 알아도 하는 사람만 한다. 그런데 왜 그럴까에 대해 고민해본적은 없다. 그냥 웃어 넘기고 뭐 그런거지 하고 넘어갈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걸 분석했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변화를 만드는 사람의 정체성에서 시작해서 습관을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 마음가짐 등을 서술한 책을 꾸준히 따라 읽어가면 어느새 우리는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공했던 습관이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 배우고 실패했던 습관에 왜 실패했는지 배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책은 훌륭한 자기 반성을 이끌어 낸다. 

개인적으로 이 자기반성이 이 책을 작가가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자기 반성만 이끌어 내어도 그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이 후에 행동은 필수가 아니고 더군다나 책이 의도한 것은 아닐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결국 알려줘도 할 사람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자기 반성을 하고 책의 인사이트를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이는 결국 성공적인 습관 만들기의 허들을 낮춘 것일 뿐 허들을 넘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들 프린트 미리보기

결국 거기서부터는 독자의 영역이다. 독자 스스로 책을 적용해 자신을 바꾸겠다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이 책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사소해보이는 습관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독자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묻는 책이다. 물론 독자 모두가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 자체도 허들이다. 실제로 현대 한국인의 48%가 1년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우리 STEW 독서소모임 회원들은 이미 엄청난 허들을 넘은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의 허들을 낮춰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허들을 넘을 것 인가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다. 

당신은 허들을 넘었는가? 대답은 10년 후 자신이 들려줄 것이다.

나는 미국 시트콤을 좋아한다. 작년 종영한 빅뱅이론, 이번 여름 팬들을 위해 특별한 에피소드로 돌아온다고 하는 프렌즈, 캐나다의 한인편의점 이야기를 다룬 김씨네 편의점 등등 많은 미국 시트콤을 보는 편이다. 한번 보고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를 꾸준히 듣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보는 편이다. 집중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 보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정도로는 스토리를 이해하며 보는 편이다.

[How I met your mother] 테드 모즈비

최근에 다시 본 미국 시트콤 중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How I met your mother)]라는 작품이 있다.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 떠도는 테드 모즈비라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재밌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면서 책의 주인공이 테드 모즈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에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지속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소설이 쓰여진 방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 하는 것이었다. 책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고 메꾸어버리면 넘어간다. 드라마 속 테드 모즈비도 비슷하다. 로빈이라는 캐릭터와 첫 만남에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이후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본인이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여 파혼을 겪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하며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편해하게도 만든다. 물론 시트콤이기에 갈수록 과장이 포함된 것은 알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랑에 대한 매우 이기적인 자세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나의 이런 이야기에 대해 드라마나 소설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철학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속의 이야기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단순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호르몬이나 페로몬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단순히 어느 날 마주친 인상 때문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이성적인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저 본능에 맡기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하다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할 수 는 있다. 하지만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낭만을 넘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고 그 사람과 한번더 만나기 위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단어로 자신의 쓰레기 같은 행위를 철학적으로 두둔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위선적이다. 이미 금이 간 그릇을 들고 사랑을 고민하는 것 조차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시멜로한다”라는 말로 이를 멋지게 대체한 것을 보이지만 이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 관계에 커다란 금이 갔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후 찾아온 이별 또한 이미 예정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인은 처음 상대의 호의를 자신의 이기적인 철학으로 포장한 주인공 본인에 있다.

테드 모즈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소설 속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테드 모즈비가 굉장히 로맨틱한 사람처럼 나타내지만 나는 갈수록 로맨틱보다는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맨틱하다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데만 집중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감정을 전하는 것은 어렵다는 나의 평소 지론에 비춰보면 테드 모즈비는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던지고 만 있는 것 같아서 였다. 특히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감정을 던지는 것이 아닌 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전략의 영역이다.

이쯤 읽으면 사랑은 단순한 것이라는 처음의 말과 사랑은 감정을 전하기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모순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지만 그 사랑을 상대방과 교류하는 사랑으로 바꾼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가지가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상대와 사랑을 하는 것은 교류이므로 그에 따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읽기 힘들었다. 단락단락 현학적인 표현을 써가며 애써 어렵게 표현하려는 문단 문단이 힘들었고 그 조차도 내용이 잘 전달안되게 번역되어 어렵지도 않은 내용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 읽으면서 몇번이나 쉬어야 했다. 거기다 주제 자체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라 더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읽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했다. 한번쯤 자신이 정의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한줄평 ★★

이기적인 사람의 이기적인 사랑에 대한 변명

종교는 보통 구원을 약속한다. 믿음을 주고 그 대가로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모여 구현화된 것이 보통의 종교이다. 이런 종교 중에서도 불교는 굉장히 특이한 존재이다. 불교는 구원이 아닌 수행을 이야기하고 수행의 끝에 삶의 연기를 깨달으라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근거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맹신하지 말고 자신 안의 진리를 구하고 깨달으라는 불교의 주요한 요지는 결국은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음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결국에는 죽음을 앞두고 사람은 겸손해지고 지난날을 후회하게 된다. 하지 못했던 선택을 후회하기 하고 하지 못했던 말을 후회하기도 한다. 후회로 어짜피 점철된 인생이라면 지금 순간순간 자신을 믿고 흔들리지 말고 자신은 용서하라고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라고 한다.

너무 당연하고 너무 옳바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감동도 없다.

세상이 너무 힘들다보니 모두가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너무 잘 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아마도 많은 인기를 끌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질려한다. 서점가를 점령한 베스트셀러들이 위로를 건네는 책들인 요즘에야 이런 책을 다시 읽어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게 오히려 정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야기할만한 부분은 있다. 이 책의 저자의 이력과 사례가 모두 의미있는 것이고 실화라는 점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이야기를 하는 책이어서 지금의 내가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서 뭐?’ 였다. 너무 냉소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책을 읽는 설 연휴기간 내내 그 생각만 들었다.

결국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해골물을 먹고도 꿀물처럼 달았다는 원효의 일화처럼, 결국 이 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굳이 이 책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현대의 모든 문제는 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기 보단 마음의 여유를 가질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인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맹장에 무항산이 무항심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재산이 없으면 마음이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재산이 없으므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어 현실이 힘든 사람들에게 원인인 재산이 없을을 해결하기 보다는, 어짜피 너 죽으니까 중간 과정인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만 하는 게 과연 말인가, 방구인가 싶다.

한줄평 ★★☆☆☆

배부른 사람의 잠꼬대

한 줄 평

IoT 입문 오리엔테이션

서평

사물인터넷, IoT, 유비쿼터스 이미 많은 이름으로 알려진 기술에 대한 입문서다. 물론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특히 IoT로 인해 산업 전반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가치는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은 미완성이고 무언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하지 않아 후속편이 있을 것 같은 책이다. 특히 순환기업의 파트가 그러하다.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지멘스와 GE라는 오래된 기업들이 신기술의 적용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장동력을 얻고 있다는 부분은 흥미롭다. 실제 사용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항상 많이 하던 기술인데 책을 읽으면서 데이터라는 것의 활용례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한 5G라눈 무선 통신 기술이 나왔을 때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이 주로 그 수혜자가 될 것이라 이야기 했는데 지금보니 그 이유를 알것 같다. 한번의 비행으로도 몇 백 테라의 데이터가 나오는데 차량주행이나 개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의 양도 그에 못지 않게 대단할 것이라 생각하지 5G기술의 효용이 보다 확실히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던 중 정말 흥미로운 문구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초기 비용을 바탕으로 가격을 책정하지만, 앞으로는 제품의 생애가치를 평가해 책정할 것이다.”

경제학의 기본적 개념을 다시 쓴다는 말로 나에게는 들렸다. 비용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예상하는 말인데 처음에는 응? 했지만 곰곰히 책을 읽다보니 오히려 앞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애주기에 맞춰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행정학을 배우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도 생애주기 소득을 고려하여 연금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연금이나 보험에서는 주로 이야기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제조업 분야에서도 이제 이런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앞으로의 사회는 보다 더 개인 맞춤이 될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개인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이를 보다 압축하여 정말로 개인에 딱 맞춘 서비스와 제품이 앞으로는 시장에 나올 것 같다. 과거 현대 사회에서는 다품종 소량생산,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 제품군이 특징이라 배웠는데 IoT 기술의 발전은 아마도 그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추가하여 책을 읽다보니 지난해 읽었던 ‘콘텐츠의 미래’가 생각났다. 콘텐츠의 미래가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분석을 치밀하게 담은 글이었다면 이번 ‘초연결’은 네트워크 효과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 기술에 대한 글이었다. 이 책이 콘텐츠의 미래처럼 좀더 자세하고 많은 근거와 사례가 있었다면 더 좋은 책이었을 것이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읽게 된 동기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히 읽을 기회는 없었던 책이지만, 2019년 마지막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여서 읽게 되었다.

한 줄 평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서 얻은것, ……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정의에 대하여 다루지만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가 무엇인지 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정의란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 뒤,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답을 내리는 것을 유보시킨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목적론적 사고의 주장을 사례와 함께 다루면서 각자의 논리에서 각자의 변호를 들어보고 그에 대한 반론은 다른 입장에서 제기하는 것이 이 책의 구성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정의를 정의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대와 계층의 변화와 함께 정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며 이런 자신의 강의와 같은 논쟁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들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의 정의에 관한 사례들은 현재에도 통용된다. 한국의 경우 징병제 모병제, 올바른 대입선발제도, 소수우대정책, 빈부격차 문제 등은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한 토의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다. 이런 논의에서 철학적 논쟁은 보통 기저에 깔려있을 뿐 주요한 고려사항이 되는 경우는 없다. 거기에 더해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참여를 통한 논의가 아니라 단순한 다수결의 논리로 치환되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한적 논쟁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모르겠으나 사회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모든 제도가 금방 부작용을 드러내었고 해결되었다는 생각보다는 갈등을 그냥 덮어두고 지나갔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항상 이러한 한국의 정치 방식에 불만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정치논쟁에는 기본이 되는 철학이 부족하고 참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게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껏 압축적 성장을 겪으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도 많은 시간을 할당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이 철학적 논쟁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높이고 개인을 넘어 사회적, 도덕적, 목적론적 관점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민주주의가 오히려 논쟁을 막고 있으며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현재 한국의 가장 이슈 중 하나인 대입제도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제도의 변화에 따른 그 효과성에 대한 논의만 할 뿐 진적으로 대입이 목적하는 것이 무엇이고 대입의 공정이 무엇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논쟁을 하지는 않는다.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 사례에서 보듯 각 대학의 목적성에 과한 논의도 없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여론조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부는 해결책을 발표한다. 신문에서도 자극적으로 그 결과에 대하여 나누기만 할 뿐 사람들 사이 건전한 공론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이야기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모든 현상의 텔레스, 목적을 중시하였고 이를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발전시킬 수 있는 폴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에 대한 부분이 한국사회에서는 분명 부족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뤄낸 국가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논쟁없이 다수의 의견으로만 움직이는 사회는 일견 보기에는 괜찮아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소화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것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분명 글로써는 이해를 하지만 그 의미까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쓰고 있는 서평이 더욱 의미가 있다. 책을 덮은 뒤 24시간도 되지 않은 현재에 내 생각과 이해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후에 책을 다시 펼치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