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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

한국 사회에서의 ‘정상’ 범위는 너무 좁다. 

일전에 친구와, “길거리에 정상적인 사람이 많다는 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올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장 최근에 외출한 날만 생각해보아도, 길거리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는지 떠올려보면 간단하다. 그러다 사회 속 비정상의 통계를 보면 생각보다 큰 수치에 놀라기도 한다. 단순히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거리인 게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야만 편하게 나올 수 있는 거리인 게 아닐까?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가족>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가족이라는 구성원 형태 속 정상 범위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나는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정상 범위의 가족에서 자랐고 가까운 지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게 우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반 자살이 아니라 가족 몰살”

저자는 한국의 특이한 ‘동반 자살’ 포맷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겨 그 처분 또한 부모가 결정할 수 있다는 의식과,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정상가족의 형태가 아니면 자식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공공 역할의 부재가 합쳐져 만들어진 동반 자살. 서양에서는 ‘아동 살해’ 혹은 ‘자녀 살해’, ‘가족 몰살’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말 그대로 나와는 독립적인 다른 인격체를 죽이는 행위에 살해가 아닌 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도 인식을 하고 나니 굉장히 기형적으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자식을 살해한 부모는 동반 자살을 ‘선택’한 부모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흔히 자살자에 가지는 연민을 그들에게도 가지게 된다.

(※스포일러※)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도 동반 자살을 시도한 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서 어머니의 행위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내린 안타까운 결단으로 비춰지거나 모성애로 포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로 인해 성인이 된 아들이 가지는 트라우마와 피해를 적나라하게 그릴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성애’의 아이러니를 꼬집는 명작이었다.

“왜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을까”

미혼부도 존재한다. 보이지 않을 뿐. 

책은 미혼부가 아닌 미혼모만 존재하는 현상에 대해 여성에게 양육을 떠넘기고 남성에게는 책임을 지우지 않으며, 아버지 없이 혼자 키우는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문제로 꼬집었다. 이 또한 일리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미혼부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다.

몇 년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으로 ‘미혼부’라는 개념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영상 속 아버지는 아이를 두고 어머니가 도망을 가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3개월 전 처음으로 미혼부도 아이의 어머니 없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엄마에 대한 서류 없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혼부에 대해 아동이 태어난 즉시 출생을 등록할 수 있는 권리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첫 사례이다. 이처럼 당연한 논리가 2020년에서야 인정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이 또한 이상한 정상가족을 위한 든든한 첫 계단이 되어줄 것이다.

“저를 때리고 싶다면 돌을 던지세요”

책은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폭력에 반대합니다(Never Violence)’ 연설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한 여성이 아들을 매로 가르치려고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하자, 아들이 회초리감을 찾을 수 없었다며 대신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돌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는 일화였다. 이 부분을 읽고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훈육 목적을 위한 체벌에 찬성하는 사람 중에서도 위 일화를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회초리로 때리는 것과 돌을 던지는 것의 차이가 뭔가?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행위의 의도는 다를 지언정 결과는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 두 행위를 구분지어 보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일 뿐이다.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훈육 행위이고 돌을 던지는 것은 죄를 지은 자에게 행하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보는 그 ‘시선’. 결국 사회적 시선이 아직 내면화되지 않은 아이를 통해 우리의 고착화된 관념이 깨지는 것이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정상 가족”

저자는 마지막 챕터에서 이상한 정상가족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아동학대를 해결하기 위한 스웨덴의 예시가 인상 깊다. 아동 체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가정 내 뿌리깊은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스웨덴은 1979년 체벌 금지를 분명히 명시하는 법을 개정했다. 단순히 유명무실한 법 개정으로 남지 않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다양한 언어로 적힌 설명서를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배포하는 등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그 결과 스웨덴 전체 가구의 99%가 이 법에 알게 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본인은 이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위한 미디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미디어는 우리 안의 정상을 규범짓고 내면화하는데 놀랄만큼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한국의 미디어 속에서는 너무나 많은 정상가족만이 등장한다. 비정상 가족이 등장하면 그들은 항상 어딘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상한 비정상 가족으로 비춰진다. 아니면 정상의 범위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응원한다. 정상 규범에서 벗어나면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이상한 정상가족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정상가족에 익숙해지며 이상한 정상가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환상을 심는다. 이처럼 아직은 해결책보다 문제가 많은 세상이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몇십년동안 이상한 정상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상함이 이상해지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

인상 깊은 구절

“선량한 많은 이들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금을 매우 쉽게 긋는다는 걸 깨달았다.”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특정 연령층에 대해 특정한 조건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하는 사회에서는 체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폭력이 더 높은 수위의 폭력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가 된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사랑의 매’라는 표현은 때리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어떤 폭력은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뜻인데, 이는 전적으로 매를 든 사람의 논리다. 맞는 아이들에겐 체벌의 이유가 사랑이든 분노든 다를 게 없다.”

“학창 시절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역향 중 하나”

“체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폭력도 사랑이라고 가르치며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학대가 일어나기 쉬운 취약가정으로 분류한 셈이다… (하지만)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었다.”

“이렇게 예측을 하려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안전은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쓰는 놀이터니까 이같은 동시 폐쇄가 가능했을 것이다. 한꺼번에 이렇게 폐쇄된 곳이 경로당이라고 생각해보라.”

“언론이 ‘동반자살’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유포할 위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이렇게 구조적으로 아이 버리기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아이를 버리는 ‘주범’이 여전히 미혼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삶은 잘못되었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교육받을 권리와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한국의 가족주의에 그 혐의를 두고 싶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가장 특징적인 차이는 혼외출산 비율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다.”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 위기가 닥쳤을 때 위험을 타자와 관련짓는 반응은 근대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어온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경쟁단위다.”

“우리는 왜 중립적 호칭을 놔두고 굳이 가족적 거리를 암시하는 표현들을 점점 더 많이 쓰게 되었을까?”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법 개정의 목적 자체가 체벌이 자연스럽고 양육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문화적 규범을 바꾸자는 거였으므로 스웨덴 정부는 법 통과 이후 이를 알리기 위해 대대적 캠페인을 펼쳤다… 법안 통과 2년 후인 1981년엔 스웨덴 전체 가구의 99%가 이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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