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어두운 세계관에 압도된 기억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게된 자들의 원초적인 갈증을 보며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스튜 독서소모임에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하지만 마찬가지로 어두운 느낌을 받았다.
고통 3부작
소설은 ‘김영혜’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풀려 나간다. 어떤 꿈을 계기로 육식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중편소설 3부작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이 3부작은 채식주의자라는 장편소설로 엮였는데, 작가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고통 3부작’이란 표현을 쓴다.
첫 번째 중편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주인공 김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계기와 이로 인한 배우자와의 이별. 아버지의 가정폭력 등을 풀었다. 사이사이 적나라한 문장에서는 굳이 이런 표현들을 넣어야 했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된 첫 번째 소설은 ‘이게 뭐지?’ 하면서 끝이 나버렸다.
두 번째 중편소설 몽고반점은 김영혜의 형부와 김영혜의 이야기인데, 예술가인 형부가 김영혜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을 보고 성적 매력을 느끼며 이를 예술 작품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내가 책을 잘못 샀나 싶을 정도로 포르노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다. 이 과정에서 언니인 김인혜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보며 너무도 무겁다 싶었다.
세 번째 중편소설 나무 불꽃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나무가 되려는 김영혜의 입장과 이를 막고 함께 삶을 살아보려는 언니 김인혜의 이야기다. 이쯤 되니 ‘고통 3부작’에서 과연 ‘고통’의 주인공은 김영혜인가 김인혜인가를 두고 혼란스러웠다.
작가가 왜 이들과 함께 ‘고통’을 주제로 글을 써내려갔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펼치며 처음 마주한 고통은 김영혜의 남편 입장에서의 고통이었는데, 만약 내 배우자가 김영혜처럼 갑작스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다면. 소설 속 문장처럼 ‘내가 가장 큰 피해자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에서 김영혜의 남편은 물론, 김영혜의 언니인 김인혜. 김영혜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김인혜의 아들 등 고통을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정신병원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그곳 세상이 펼쳐지는 듯 하여 챗GPT에게 정신병으로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을 물어보기도 했다.
작가가 ‘고통 3부작’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만, 어떤 고통을 인지하게 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성공했다.
다른 사람의 삶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유가 없어 책을 연휴가 돼서야 펼치긴 했다만, 단숨에 완독한 걸 보면 소설을 좋아하는 게 맞다. 특히 판타지 소설류는 틈틈이 맛보는 편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에 담긴 캐릭터의 삶이 궁금하고, 이 호기심은 나라는 캐릭터가 가진 원초적인 갈증인 것 같다. 타인에게 관심이 적은 사람도 있지만, 나는 유독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그렇게 알게된 타인의 삶을 내 삶에 대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비교하며 배울 점을 찾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삶이 내가 달리는 어떤 장작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김영혜라는 캐릭터 속으로 들어가봤다. 만약 내가 보고 듣는 것을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어떨까? 사실 이런 경험은 빈번히 겪어 왔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생각한 것을 존중 받지 못했던 경험이 많았는데, 처음엔 무시 당한다 느꼈지만 이후 내가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곤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법에 집중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내 생각을 전달하는 스킬이 꽤 늘었고, 이는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능력치라 생각한다.
과연 김영혜는 생각을 전달하는 스킬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 스킬이 없다시피 한 것 같다. 원래도 말수가 적었거니와 수년을 함께 한 남편에게도 자신이 꾼 꿈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그 누구도 자신의 꿈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김영혜의 고통은 솔직히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했을 뿐 그 고통을 설명하거나 이해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김영혜와 같다. 꿈은 자신만 꾼 것인데, ‘꿈을 꿨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그걸 어떻게 설명하는가? 애써 남편에게 ‘사실 고기 냄새가 나요’라고 말한 부분이 김영혜가 솔직히 말한 부분일텐데, 그것 외 얼마나 자신의 남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김영혜의 이혼의 원인은 대부분 김영혜에게 있다고 본다.
소설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자 고통은 언니 김인혜가 아닐까 싶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장 감정 이입이 많이 된 캐릭터이고, 끝까지 모든 책임을 짊어진 건 김영혜의 엄마도, 아빠도, 남편도 아닌 언니 김인혜다.
19세에 홀로 서울로 상경해 화장품 가게를 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세상의 어려움을 홀로 이겨내려 싸우는 과정은 너무도 힘겨워보였다. 어쩌면 창업 만 2년을 앞둔 나와 가장 닮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작가가 풀어낸 각 캐릭터의 고통은 모두 다르고, 이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것.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이게 소설의 맛이 아닐까 싶다.
한강의 글
부커상은 나무위키에 이렇게 나와 있다.
1969년부터 영국에서 시상을 해온 영국 최고 권위의 소설 문학상이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문학상이다. – 나무위키
지난 도서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도서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작가 한강의 문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작가 한강은 캐릭터를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각 캐릭터가 갖게 되는 감정 변화와 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서사. 그리고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게 이해되는 개연성까지. 확실히 글을 잘 쓴다 싶었다.
부커상을 탔다는 소식에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만, 노벨상을 탄 소식에는 ‘이건 읽어봐야 해!’라는 생각에 스튜 독서소모임 주제로 한강 시리즈를 골랐다. 두 권을 읽은 지금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마무리
현 시대를 살며 시대가 지배하는 사상과 개념을 이해하는 게 지식인의 자격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나는 현 시대의 사상과 개념을 이해하고 싶고, 이를 실천하는 시대 정신을 갖고 싶다. 나는 지식인으로서 살고 싶다.
2년째 법인 대표로 일하며 단순히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를 왜 해야 하며, 이 비즈니스가 돌아가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지속 고민하고 있다. 도서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과연 이 시대의 고통은 무엇이며, 각자가 느끼는 고통은 서로가 어디까지 도와야 하고 나는 어떤 고통을 해결하는데 힘써야 하는지 고민해본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홀로 ‘나는 채식주의자다’ 라고 외치는 부분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한줄평
- 고통 3부작이란 표현 답게 고통스러웠던 소설
인상 깊은 문구
- 그러나 그녀는 영혜를 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 입원비를 대야 했고, 누군가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