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도 지난달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매일 조금씩 읽겠다던 다짐을 어기고, 하루에 몰아서 봤다. 아마도 그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 거다. 이 책이 너무도 읽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일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재미 없고, 남는 것도 없는 유형의 책이다.
꼰대 아웃
헨리 키신저는 지난 2019년 도서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분명 읽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다지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 이력이 빵빵한 아저씨라는 것 정도.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으니 어마어마한 권력가였다.
그래서인지 책 전반에 걸친 내용이 너무도 꼰대스럽다. AI는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하고, 판단할 수 없고, 도덕이란 게 없고,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다 읽은 지금 떠올리면 이런 이야기만 주저리 적어놨던 것 같다.
그리고 각 챕터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알겠다만, 굳이 과거부터 훑어야 하나 싶다. 최근 시간적 여유가 없다보니 말하려는 맥락에서 벗어난, 그러니까 너무 올드한 감성을 만나면 짜증이 치민다.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AI로 딸깍하면 요약버전이 나오는 마당에 이런 콘텐츠는 이제 읽힐 일이 계속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꼰대스러움이 싫은 건 ‘안 되는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세상은 되게끔 만드는 이들의 역사다. 그러니 꼰대는 아웃이다.
대체로 틀린 말이 될 지도
이 책은 GPT-3가 나왔던 시기에 적혔다. AI 산업으로 따지면 한참 전이다. 매주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상황에 GPT-3가 웬 말이냐. 그래서일까? AI 도서로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AI스럽지 않게 읽혔다.
앞으로 AI가 적어도 컴퓨터 성능과 동일한 속도로 발전하며 15~20년 후에는 수백만 배 발전하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와 동일한 규모의 신경망이 탄생할 것이다.
심지어 20년 뒤에 수백만 배 발전할 거란 말은 느닷없는 희망 회로인 듯 싶다. AGI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정적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갑자기 수백만 배 발전이라니. 아무리 저자들이 훌륭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두 현업에서 물러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현실감각이 없지 싶었다.
수용적 사고를 해야 한다
현업에서 사업을 하고, AI 산업에 들어가려는 입장에서. 현 시기에 중요한 건 ‘수용적 사고’지 싶다.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접목하고,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게 이 바닥인데. 이런 은퇴자들의 옛말을 여유있게 앉아서 읽을 기분이 아니다.
한줄평
이 책은 책장에 그냥 꽂아두는 게 좋겠다.
인상 깊은 문구
- 사회를 이끄는 지도력은 소수의 인간과 조직이 장악할 공산이 크다. 현실을 탁월하게 합성해내는 소수의 기계를 운용하는 이들이다.
- 이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AI가 탐지하는 ‘관계’였다. 우너자량과 화학결합 같은 개념은 인간이 분자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AI는 인간이 탐지하지 못했던 관계, 어쩌면 인간이 기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관계까지 포착했다.
- 앞으로 AI의 발전이 당연하다고 해도 그 종착지가 어디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AI의 등장은 역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중요하다.
- 인류의 역사는 기술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술로 인해 사회정치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기존의 체제에 신기술이 흡수되어 우리가 익히 아는 범주 안에서 발전과 혁신을 이뤘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말을 대체했어도 사회구조가 전면 개편되진 않았다.
- 현재 인간과 기계의 협력 시스템에서는 ‘정의 가능한’ 문제와 ‘측정 가능한’ 목표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기계의 등장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 기계는 인간을 계몽하며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 혹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현실을 확장할 것이다
- AI는 예측하고, 결정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지만 자의식은 없다. 즉, 이 세상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을 사유하는 능력은 없다. AI는 의도도, 동기도, 양심도, 감정도 없다. 그런 것이 없어도 주어진 목표를 달성할 의외의 방법을 제법 잘 찾아낸다.
- 튜링과 매카시의 관점이 표준으로 정착해서, 지능을 정의할 때 그 용어의 심오한 철학적, 인지적, 신경과학적 차원을 고려하기 보다는 수행 능력(지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에 초점을 맞췄다.
- AI는 반추하지 못하므로 그 행동의 의의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인간이 AI를 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 앞으로 AI가 적어도 컴퓨터 성능과 동일한 속도로 발전하며 15~20년 후에는 수백만 배 발전하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와 동일한 규모의 신경망이 탄생할 것이다.
- 주요 네트워크 플랫폼이(그리고 그 AI)가 사회, 경제, 정치, 지정학에 미치는 영향은 양의 네트워크 효과로 증폭된다.
- 방한화를 산다고 하면 아무리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전국에서 발생한 비슷한 상품의 구매 내역 수만 건을 분석하고, 최근 기후 동향을 고려하고, 현시점의 게절적 특성을 참작하고, 과거에 자신이 비슷한 목적으로 검색했던 내용을 검토하고, 배송 패턴을 조사해서 최고의 상품을 고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AI는 거뜬히 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