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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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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특히 발병 초기에는 전 세계가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점차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어느새부턴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다루는 언론과 서적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책들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인류가 걸어온 역사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는데요.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보여준 인류의 대서사시, <사피엔스>를 통해서 말입니다.

왜 이 책에 손이 갔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하라리 아저씨가 책 중반부에 친절하게 대신 답해주셨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유발 하라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겸손 덕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필연적인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제도, 종교, 체제 등 모두 과거 인류들이었다면 이게 뭔지 들으면서 기겁했을 것입니다.

대신 저는 필연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무언가들을 인류가 창조하게 된 동력에 주목하였습니다. 바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왔는지 역사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상상력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상의 힘

저는 제 자신을 공상적이지 못한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제 MBTI는 정말 좋은 증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는 지구 어느 동물보다도 공상적인 동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개념은 처음 맞닥들였을 때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이렇게 26년 인생동안 공부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오직 상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라니. 하라리 아저씨가 제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려는게 아닌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패닉하기엔 이릅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사실 허구를 창조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인류 전체 종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인류가 지구 최고 포식자 위치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장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형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

허구를 만드는 능력을 통해 유전자를 뛰어넘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사회가 이에 대한 증명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이렇게나 거대한 그룹이 형성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뭉쳐서 협력을 시작한 인류는 아주 재미난 허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도 이에 해당되죠. 특히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빼먹을 수 없는 핵심 개념들 또한 허구라고 하라리 아저씨는 이야기합니다.

수십억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는 물론이거와 자본주의와 같이 현대사회을 이루는 핵심 룰들도 모두 허구입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믿고 자유라고 외치는 개념들도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상호 주관적” 개념으로 분류가 됩니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유발 하라리

이렇게 온 세상이 허구가 가득한데, 실재만을 바라보는 삶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런 상황 자체가 상상이 안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러한 허구 만드는 것에 동참하는 것 뿐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허구를 만들 수 있는 사회

우리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행운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과학혁명들과 이를 뒷받침해준 허구적 사회구조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규범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인권과 평등으로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까지도 자유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였다는 점인데요. 생각에 대한 자유와 이를 표출한 자유는 모든 인류에게 각자의 허구를 만들어줄 권리를 쥐어줬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칼 마르크스는 왕이 아닙니다. 성공한 재력가는 더더욱이 아니었구요. 이런 일반적인 동네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공산주의라는 허구는 20세기 후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근대 전까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일반인은 허구를 만들어낼 시간조차 부족했으니까요.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발 하라리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는 미국 국민의 2%도 안되는 인구만이 농업인구라고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90%가 얽메였던 과거가 더이상 아니라는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98%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허구를 만들어낼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심지어 농업인구인 2%마져도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저녁엔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도 더욱 더 빨리 변화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허구가 허구를 낳기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사회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라리 아저씨도 오늘날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성을 “끊임없는 변화”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런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새로운 의무가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2020년 7월의 STEW 서평

도서: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작성자 : 김동영

한줄평: “사피엔스가 가장 모르는것은 사피엔스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든 사피엔스

1. 언어

사피엔스가 이토록 발전하게된 이유는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서 사피엔스는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7만년 전에 탄생한 ‘인지혁명’은 지금 우리의 유전자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술을 먹고 깊은 대화를 하며, 책을 읽고 만나 토론도 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러한 행동을 시키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사피엔스는 이렇게 진화했고, 이것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 편견

“1865년이 되자 백인들뿐 아니라 많은 흑인들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객관적으로 지능이 낮고 폭력성이 높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게으르며 개인적 청결에 관심이 적다고 말이다. 따라서 흑인은 폭력, 절도, 강간, 질병의 원인이었다.”

백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흑인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만들어낸 흑인의 편견을 흑인들 조차 믿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인들을 실제로 그렇게 행동을 한 듯 하다. 사실 흑인들에 유전자와 문화에 폭력, 절도, 강간, 질병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은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다. 우리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의 힘에 굴복하지는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3. 돈

예수도 부처도 칼 마르크스도 아직 이루지 못한 성공을 이룬 큰 정복자가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 신’을 숭배한다. ‘이 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라고 믿으며, ‘이 신’을 위해서 땀과 눈물을 흘린다. ‘이 신’에 대한 믿음은 지구 대부분의 퍼져있는 보편화된 것이며,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별보배고둥 껍데기와 달러화의 가치는 우리의 공통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가치는 조개껍데기나 종이의 화학적 구조, 색상, 형태 속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행복을 찾는 사피엔스

1. 기술의 활용

“한국은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이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몇몇의 사람들은 돈을 더 벌면 행복할거야, 집이 있으면 행복할거야, 좋은 직장에 다니면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복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마치 사막의 한 사피엔스가 오아시스를 영원히 쫓는것 처럼말이다.

그런 오아시스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사 오아시스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국은 GDP 기준으로 세계 20위 안에 드는 부유한 국가이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면, 그들은 아주 행복해야 한다.

“한국이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정확히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70년의 과거를 뒤돌아 보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북한 국민보다 행복하다고 입증하는 근거를 찾지는 못 했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지도자를 투표할 수 도 있으며, 며칠에 한 번 쯤은 주말에 침대에 누워 유투브를 봐도 아무도 나를 강제하지 못 한다.

지금부터 70년 뒤에 이 같은 감정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술을 개발하는것 만으로는 굉장히 부족하다. 칼은 나무를 잘라 집을 지을 수도, 고기를 잘 라 먹을수도 있게 하지만 학살에 사용될 수 도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철학과 윤리의 발전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는 기술과 함께 기술을 활용하는 법에 배우고 공부하고 이야기하는것이 필요할것이다. 칼은 학살에 사용되는 것보다 집과 음식에 사용되는것이 사피엔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중세까지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인지하지는 못 했던듯 하다. 그리고 여전히 현대의 사람들도 또 다른 기술에서 그 차이를 모른다.

2. 아체족

이 책에서 나오는 아체족은 아무런 기술도 가지지 못 했지만 행복을 다루는 기술 하나만큼은 현대 사회인들 보다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3. 부처

종교는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 종교로 나뉠 수 있다. 현재 거대한 종교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중에서 불교는 신을 숭배하지 않는 자연법칙 종교이다. 불교에서 따르는 것은 후세에 부처라고 불이는 고타마라는 인간이다. 고타마는 기원전 500년경 히말라야에 있던 작은 왕국의 후계자였다.

“고타마는 29세에 가족과 재산을 뒤로하고 한밤중에 왕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집 없는 방랑자로 인도 북부를 구석구석 떠돌았다. 완전한 해방의 길을 찾을때 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번뇌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6년에 걸쳐 인간 번뇌의 핵심과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명상을 했고, 마침내 그 번뇌의 원인은 불운이나 사회적 불공정, 신의 변뎍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번뇌는 사람과 마음이 행동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위해서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따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처 이야기는 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행복’에 대한 글과 이어진다.

4. 연구

이 책에 후반부에 나오는 중산층 쌍둥이 가상연구가 있다. 이것은 복권 당첨이나 다리 절단 같은 크지만 일시적인 사건들은 장기적인 행복에서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그것들 보다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 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다만 병자가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사피엔스는 원래부터 무언가를 이루면 더 높은것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는듯 하다. 몇몇 사람들은 취업을 하여 연봉이 4000만원이 되면 고과를 잘 받아 5000만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몇 개월 이내에 행복감은 사라지고 6000만원이 되기를 원하는 무한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행복감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른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는데 6월 STEW에서 읽은 <EBS 다큐 프라임 자본주의>이다. 이 책에서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욕구를 줄일수록 행복은 증가한다.”

SAMSUNG CSC

<폴 사무엘슨의 행복공식>

행복은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한 말은, 고고학자 유발 하라리가 행복에 대한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로 말한것과 동일하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소유를 늘리면서 욕망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소유를 늘리겠다는 마음이 곧 욕망이다. 행복해지기위해서 소유를 늘리려 할 수록 빛의 속도로 욕망이 늘어난다. 욕망이 늘면 소유가 욕망을 따라가는데에는 훨씬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한 스님은 이런말을 하셨다,

무소유

<무소유 , 법정 스님>

무소유는 소유를 0으로 만들어 행복을 0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니다. ‘무소유’는 해석하면 공교롭게도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욕망’이다. 불필요한 것을 원하지 않아 욕망을 줄이고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은 3000년 전 부처라 불리는 사나이의 가르침이다.

3000년 전의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무얼슨, 법정 스님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모두 다른 문장으로 같은 의미를 이야기 했다. 이 들은 서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며, 고타마와 법정스님을 제외하면 각자의 분야도 모두 다르다.

이 들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들의 생각과 함께 할것이다.

<김우빈의 운동 전과 후>

이렇게 신체도 노력으로 충분히 단련할 수 있는데, 좋은 신체에 좋은 마음이 깃든다는 말도 있는 마음을 여전히 단련할 수 없다고 믿는가?

5. 앞으로

수렵채집인들과 자본주의자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이 책을 읽기전에는 수렵채집인 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수렵채집인이 더 행복한 수십가지 이유와 자본주의자가 더 행복한 수십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그건 모른다”로 바뀌었다. 두 사피엔스 중 누가 더 행복할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똑똑한 과학자에게 맡겨두고, 나는 현재 자본주의자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것이 더 좋을것 같다. 그리고 누가 더 행복할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여기에 너무 많은 논쟁과 고뇌를 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의 삶도 지금처럼 평화롭고 안정적일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나와 내 주변사람들의 안녕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데 노력을 하는게 좋겠다.


책임을 져야하는 사피엔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술이 우리의 윤리와 책임보다 앞서 나간다면 이것은 분명히 큰 문제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원숭이에게 원자폭탄을 터트릴 수 있는 스위치를 선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를 몰기 전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법과 운전 법률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 또한 가르쳐야 한다. 군인들에게 총을 다루는 법과 포를 쏘는 법 뿐만 아니라, 군인이 존재하는 이유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면 기술을 무턱대고 사용하기 전에, 기술의 역할과 이것이 가져올 부작용 그리고 책임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문제에 ‘관심’을 갖는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인용

  1.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갈고 닦고 훈련할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재능은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수렵채집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사람은 보통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3.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기독교의 분화와 몽골 제국의 붕괴는 역사라는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턱에 지나지 않았다.
  4.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가 우리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5.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돈을 교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6.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7.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 모두가 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근원이며,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 종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많일 그렇다면, 2백 개에 가까운 독립국가는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것이다. 스웨덴인, 인도네시아인, 나이지리아인이 똑같은 인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단일 세계정부가 이들을 지키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겠는가?
  8.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진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9. 과거 뉴에이지 세대의 유명한 구호만큼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또 없다.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성형수술, 아름다운 집, 높은 자리는 우리에게 전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지속적 행복은 오로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에서만 온다.
  10. 또 다른 가능성은,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11.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직한 시련이다.
  12. 우리가 중세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 전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이들은 주관적 행복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세 조상들이 행복했던 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집단적 환상 속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환상에 구멍을 뚫어 파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을리가 없다. 우리가 아는 하나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13.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전자의 복제에 좋은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14. 행복에 대한 불교의 접근방식은 생물학적 접근방식과 기본적 통찰의 측면에서 일치한다.
  15. 번뇌의 진정한 근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16.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
  17.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
  18.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인지혁명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이라는 종이 역사적으로 유일무이 하나뿐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만들어낸 인간 신화일 뿐, 사실 우리는 사피엔스라는 여러 인간 종 중의 하나가 번식한 결과이다. 오히려 왜 호모 중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인지혁명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인간 역사적으로 가장 첫번째로 중요한 변환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임 안에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 등을 언어로 교류하며(결론적으로 서로 가십을 하며)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을 높였다. 저자는 이것이 근본적인 언론인의 목적임을 이야기한다. 미디어학부생으로서 언론과 뉴스에 대해 공부하며 배운 것은, 어떤 것이 뉴스 거리가 되냐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 등 부정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것이 가장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누가 질서를 해치는가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 사회를 보호한다 할 수 있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객관적 실재와 가상의 실재.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가상의 실재’를 믿는다는 능력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실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부재하는 것을 긍정하는 신기한 능력을 인지혁명 기간 동안 획득했고,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저자가 언급한 ‘푸조’가 부재하면서도 모두의 인지 속에 실재하듯, 인간에 대한 당연한 사실 대다수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농업혁명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사실 농업혁명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어떤 동물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 혁명이라는 것은 평생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농업을 시작한 인간은 잉여식량으로 인해 인구수는 늘어날 수 있었지만, 수렵채집 때보다 삶의 질은 곤두박질쳤다. 그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1. 더 많은 시간 일했으며 2. 특정 작물의 생산에 의존하며 오히려 더 높은 굶주림의 위험에 놓였고 3. 전염병의 위험 또한 높아졌으며, 4. 수렵채집에 맞게 진화해온 인체가 농업이라는 노동을 통해 고통받으며 디스크 등 각종 질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들의 경우에도, 가축화되면서 종의 개체수 자체는 늘어났지만 그 삶의 질 자체는 결코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본문에 사진과 함께 나와있듯, 송아지는 어미와 떨어져 자기 몸만한 우리에서 평생을 보낸다. 근육이 생기면 육질이 질겨지기 때문에 평생 자유롭게 뛸 수도 없다. 우리는 그런 육질이 좋은 최상급의 고기를 고가의 돈을 주고서라도 구입하며, 높은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수요가 넘쳐나니 공급 또한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송아지를 그 우리에 가둔 건 우리고, 결국 저자의 말대로 농업혁명의 승리자는 ‘밀’ 뿐이다.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

인류의 통합

“한편으로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돈과 상업의 이동을 막아온 공동체라는 댐을 기꺼이 파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와 종교와 환경이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막아줄 댐을 건설한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이후 물물교환이 등장했을 때, 화폐는 물물교환의 교환율 단점을 극복했다. 또한 부동산 등 공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재산의 거래 및 물리적 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해,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할 수 있었다.

은과 금을 바탕으로 한 화폐 시스템이 곳곳에서 발생하며, 근대 말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가 단일 화폐권역이 되었다. 지금의 미국 달러 같은 통화를 기반으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공통의 신념과 의사소통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돈은 공동체 밖의 사람과도 원활한 교류를 가능하게 하지만, 비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결국 세상을 하나의 비정한 시장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과학혁명

우리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이 결국 고용인, 피고용인, 모두에게 WIN-WIN 전략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론상으로는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지인이 다니던 회사는 직원 2명에 인턴 14명으로 팀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적인 자유시장 이론에 따르면, 회사는 인턴을 회사 시스템에 적응한 인력으로 길러내어 많은 수의 인턴보다 적은 수의 loyal한 직원으로 굴러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결국 고용주는 그보다 값싼 인턴을 대량 고용해 반년마다 갈아치워버린다.

기원전 8500년의 사람은 농업혁명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지만 농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

농업혁명 파트에서도 저자는 ‘돌아가는 다리가 끊어졌’기에 우리는 농업생활 이전 오히려 더 풍요로웠던 수렵채집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농업은 커녕 수렵채집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지언정 그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리 없다. 하지만 이를 자본주의에 대입하니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용하고 비판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더 이상 자본주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은 폭력과 체제의 전복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결말에 대해 긍정적이고 어두운 관점을 모두 제시한다. 그 중 어떤 관점이 현실이 될지는 결국 두고봐야 할 것이다. 마치 사피엔스의 인지, 농업, 과학혁명의 결과를 그 후손인 우리가 돌아보고 있듯이.

“둘 중 어느 쪽이 사실이었든, 네안데르탈인(그리고 여타의 인간 종들)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만일’의 소재다.”

‘만일’이라는 질문은 인간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사고방식이다. 무언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현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싶다는 욕망이자, 개선을 위한 노력의 시작이다.

“일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하지만… 사피엔스의 첫 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생태적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과거의 농업혁명과 지금 누리고 있는 편의성의 인과관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농업혁명이 인간을 위해 가장 중요한 혁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인간의 삶의 질은 점차적으로 떨어지고 대다수 육지 동물의 그것은 곤두박질쳤다. ‘만약’ 농업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인간이 수렵채집의 삶의 방식을 계속 영유했다면 삶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궁금하다. 결국 역사의 어느 시점에는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말았을까, 아니면 인간은 수렵채집을 하며 또 다른 방식의 삶의 양식을 개발시켰을까. 우리 모두 세상 당연한 것에 만일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야 한다.

앎의 향연이다. 나의 무지에 감사하다.

모든 책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가치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작게는 역사라는 객관적 지식에서부터, 크게는 인간이라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놀라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세계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리고 저자는 인간을 고발했다. 우리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지배하는 지구라는 세계의 존재를 당연시했다. 인간이 지배하지 못했다면 지배당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이 본성은, 지구에 대한 지배가 끝나자 인간 내부에서 서로 지배하게 한다. 저자는 이 당연함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관점으로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의문점은 단순한 물음표 라기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타당하다.

저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방대한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에는 아직 내 습득이 미미하기에, 일부분을 늘여보려 한다.

너무 약한 그들

저 머나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잠깐 해보려 한다. 사피엔스. 사실 우리는 동물이다. 그것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힘이 세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너무 약한 동물. 아마 그 당시에는 먹이사슬 아래쪽에서,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를 상위 포식자를 두려워하다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가졌던 두 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뇌가 예외적으로 크고 직립 보행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기는 몇 년간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할 만큼 나약했다. 결국, 이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생존해야 했기에.

뇌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쓰면 쓸수록 뇌의 기능은 발전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생존하기 위해 모인 사피엔스는 자신들만의 소통법을 만들고, 다양한 자연법칙들에 대해 배워가게 된다. 불을 다루게 되고, 협력 체계를 갖추게 되자 이들의 먹이사슬 순위는 급등한다.

사피엔스의 욕심이 여기서 멈췄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떨까? 상위 포식자로서 자연과 공생하며,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으로 멸종했을까? 결국, 사피엔스는 절대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실타래를 풀었다.

너무 불쌍한 그들

농업혁명. 점점 자연을 이해하게 된 그들은 밀을 재배하면 이동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농업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자연재해에 의해 농업의 결과는 달라진다. 지금도 이런데 단지 씨앗을 심으면 자라서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지식만을 가졌던 그들은 어땠을까? 수렵채집만을 하며 살았고, 그에 맞춰 발달한 몸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자연재해가 오면 굶어 죽게 되고, 농사에 의지한 나머지 수렵채집을 하던 때보다 다른 영양소는 부족해졌다.

그리고, 경작지와 축적된 농작물이라는 사유재산이 생겼다. 사유재산은 침략이라는 행위와 지배, 피지배 계급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인간은 앞만 보고 달리는 동물이기에 악순환은 커졌다.

진보라고 생각했던 착각은 스스로를 불쌍한 존재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배 계급과 침략에 성공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끊이지 않는 혁신으로 지금의 우리는 안전과 편리함을 누리며 산다. 우리는 행복할까? 저자는 책 중간중간 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기 때문에 진보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이 만들어낸 현재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을까? 대부분의 현대인은 현재의 매 순간을, 미래의 매 순간을 걱정과 함께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돈의 노예라 생각한다.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종교가 만들어낸 소비지상주의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안정된 지금, 소비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마약이 되어 끝없는 불행의 터널로 인도하고 있다.

매년 전세계에서 나오는 통계 중,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통계가 있다. 행복 지수이다. GDP와 행복 지수는 대체로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이다.

너무 잔인한 그들

저자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을 통해 인간 진보의 주요점들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인간 진보의 가장 큰 원동력은 지배계급의 탄생인 것 같다. 그 순간을 만든 원인은 꼬리를 물고 있으며,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서 하나로 좁힐 수 없지만 말이다.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신화와 종교를 만들었다. 믿음만큼 강력한 통치체제는 없기 때문에. 이 믿음은 나와 너를 구별하게 했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인간 역사를 살육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십자군 전쟁은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

지배 계급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문화는 계급 사회를 공고히 했고, 피지배 계급의 관심을 권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렸다.

권력의 원동력은 부의 창출이기에, 피지배 계급뿐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닭, 돼지, 소, 양 등 공생자였던 그들을 피도 눈물도 없이 처참한 도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과학혁명은, 현재의 자유와 평등 시대에 새로운 계급 구조를 만들려 한다.

인간의 역사는 99% 피지배 계급의 피와 눈물로 만든 1% 지배 계급의 기록이다.

너무 나가는 그들

과학 혁명이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저자의 예측은 너무 소름 끼쳤다.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되었듯이, 사피엔스는 사피엔스가 만든 초인류로 인해 멸종할 수 있다는.

어릴 적 공상과학 영화들을 봤을 때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는 나올 수 없는 수백 년 후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늘을 비행하는 자동차, 민간인의 우주여행, AI 등… 하지만 이것들은 이미 세상에 나오고 있다.

가장 무서운 분야는 유전자공학이다. 2020년 7월 26일 오후 7시 인터넷에 유전자공학을 입력했더니, 우리나라에서 노화 속도를 늦추는 유전자 변형 대장균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봤다. 게놈프로젝트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조선 시대만 해도 평균 수명은 30살도 안 됐다고 한다. 3배가 늘어난 지금, 100년이 흐른 뒤 인간의 수명은 어떻게 될까?

유전자 변형으로 생명도 취사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아기의 성별을 고르고, 원하는 외적 모습을 만들어내는 등. 이제 빈부격차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 것이다. 부자들의 자식은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모두가 연예인 같은 모습과 운동선수 같은 건강, 아인슈타인과 같은 뇌의 명석함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다. 과거의 계급 사회와는 차원이 다른 계급 사회가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내가 모르는 엄청난 혁명의 소용돌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기에 더욱 미래가 무섭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한 끗 차이다.

책의 파트별로 읽을 때도 충격의 연속이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가 말한 사피엔스 역사의 많은 객관적이며 모순적인 내용이 머리에 모이자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한줄평

‘인간’이라는 당연한 단어가,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책

인상 깊은 문구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예외적으로 크다…인간의ㅡ 또 다른 이례적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 p26

그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 p29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하지만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 p48

인지혁명 이 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 p60

이야기들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행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P62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p66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 p83

하지만 역사적 기록은 인류를 생태계의 연쇄살인범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 p108

사피엔스의 첫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 p115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p124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밀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p126

수천 년의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 p128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오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 p129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외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34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p135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 p143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 p148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정되었다…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 p152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 p153

164~165P

상상의 질서란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p166

  •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 p211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 p225

모순이 없는 물리법칙과 달리,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내적 모순을 지닌다. 문화는 이런 모순을 중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런 과정이 변화에 불을 지핀다 – p236

중세문화가 기사도와 기독교를 어떻게든 조화시키는데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엔진으로서,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한다. 서로 충돌하는 두 음이 동시에 연주되면서 음악작품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듯이,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은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 p238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 문화가 하나도 없다 – p244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 – p256

신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왜 금융 시스템이 우리의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 시스템과 그토록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준다 – p259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이다 – p268

설령 우리가 더 이전에 존재했던 진정한 문화를 재건하고 지키려는 희망에서 잔인한 제국의 유산을 모조리 거부하더라도, 보나마나 그때 우리가 지키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덜 야만적인 제국의 유산에 불과할 것이다 – p293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298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 – p301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 p314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 p357

과학은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할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의상 과학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해야 마땅한지를 안다고 허세를 부릴 수는 없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뿐이다.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 p38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 p399

과학이 제국에게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라고 믿게 되었다 – p425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 p439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 p442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든 뭔가 정말 큰 건수를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 p446

신용대출은 새 발견을 할 자금을 공급했고, 발견은 식민지로 이어졌고, 식민지는 수익을 제공했으며, 수익은 신뢰를 만들어냈고, 신뢰는 더 많은 신용대출로 바뀌었다 – p448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할 수 없다. 속임수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할 경찰, 법원, 교도소를 설립하고 지원함으로써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정치체제가 할 일이다 – p465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 p468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 p493

윤리의 역사는 아무도 그에 맞춰 살 수 없는 훌륭한 이상들로 점철된 슬픈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를 모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불교도는 부처를 따르는 데 실패했으며, 대두분의 유생들은 공자를 울화통 터지게 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준수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윤리가 천국을 약속하는 대신 내놓은 조건은 부자는 계속 탐욕스러움을 유지한 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소비할 것, 그리고 대중은 갈망과 열정의 고삐를 풀어놓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구매할 것이다. 이것은 그 신자들이 요청받은 그대로를 실제로 행하는 역사상 최초의 종교다 – p494

2002년… 전쟁 사망자 17만, 폭력 범죄 56만, 자살 87만 – p518

첫번째.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로 바꾸어놓았으며,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익성이 좋아졌다 – p527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가난한 농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지능은 황태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우리의 후계자들은 신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 p581

우리는 새로운 특이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개념-나, 너, 남자, 여자, 사랑, 미움- 이 완전히 무관해지는 지점 말이다. 그 지점을 넘어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 p582

그럼에도 역사상의 위대한 논쟁들은 중요하다. 적어도 이 신들의 첫 세대만큼은 인간 설계자들의 문화적 아이디어이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이미지에 따라 창조될까? 자본주의? 이슬람? 페미니즘?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그들이 가는 길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 p585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 p586

<사피엔스>, 이 책은 불편하다.
불편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고 추적이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는 어렴풋이 짐작하던 사실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있다.

이 책은 이제는 명실상부 지구상의 지배자로서 자리매김한 지극히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종’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에 대한 자기고백이고, 자아성찰이다.
분명한 건 ‘사피엔스’는 지구 최악의 종으로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들을 억압하고 멸종시켰으며 필요이상으로 파괴해왔다는 점이고, 그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문제인식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와서 환경 등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단순히 그것이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그것은 절대로 범지구적인 사랑이나 그것을 초월하는 가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생존과 정복을 위한 도구고 수단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상, 종교, 국가 등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태초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것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왜’라는 질문에 부딪치게 되는데, 지배층들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위해 의도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닌 듯 하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사상들이 생겨나면서 집단은 통일된 생각과 방식을 추구하게 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사상’이라는 미명하에 통치하기 쉬워졌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종교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듯 착각을 하며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획일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는 사회적 합의로써,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에 의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국민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개별 국가들은 거대한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숨긴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하는 등 국민과 국가의 관계가 주객전도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상, 종교, 국가가 세상을 통치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든 것은 ‘돈’의 지배 하에 있다. 화폐가 등장하면서 빈부격차는 가속화되고 자본주의 등장으로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의 우월함이 입증되었고, 모든 인간들을 ‘돈’이라는 세속적인 가치아래 통합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모든 행위와 가치에 대한 기준이 ‘돈’이라는 환산가능한 가치로 전이되면서 서열화되고 경중을 따지게 되었다. 사피엔스가 이루어온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 ‘돈’ 역시 사회적인 합의에 지나지 아니하며 모두의 공통된 합의, 즉 약속없이는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가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돈의 종속되기를 자처하며 모두가 제로썸 게임에 동참하고 있다. 그것은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파괴하며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상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체계화시켜온 것인데, 이러한 상상의 비약들이 결국은 사피엔스 종족 내에서도 서로를 파괴하며 그것을 성장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피엔스가 무지하고 욕심많은 신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들이 누구보다 연약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결핍과 생존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 하여금 소통하고 기록하게 하였고, 그러한 과정들이 수많은 우연과 필연들을 거쳐서 지금의 사피엔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속에서 있었던 불편한 진실과 잔인하고 비열한 역사들은 승자들에 의해 재편집되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우리 개개인만 보더라도 각자의 과거와 과오에 대해 재편집하고 왜곡하지 않는가, 그렇게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 되어가고 그 기록의 저편에는 수많은 희생과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는 그 어떠한 것도 당연하지 않고, 떳떳하지 않을 수 있다.

<지리의힘>에 느꼈듯, 우리가 노력과 성장의 결과라고 생각해온 것들은 사실은 필연에 기반하여 우연히 발생한 사건들이 모여서 이뤄낸 산물이고,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것들을 취하고 향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결과는 오롯히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자만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쉬운 점이나 불만들은 차치하더라도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으면서 의식주와 교육의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지금 책상앞에서 졸린눈을 비비며 서평을 쓰면서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이 ‘출근’이라는 점은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끝으로, 사피엔스의 ‘결핍’처럼 나에게도 ‘결핍’은 나의 노력의 원천이고, 성장에 대한 동력이었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려왔고, 그것에 대한 감사함들을 잊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나의 ‘결핍’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약탈과 폭력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없으며, 현재의 사피엔스들은 서로가 평등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하고 냉소스러운 현실속에서도 나는 우리가 결국에는 나아갈 것이고, 조금씩 변화속에서 더 좋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변화를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지않은 것들을 당연하다고 했을 뿐이고,
그러한 행위들을 해온 당연하지 않은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 서평은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현재를 불만족스러워하며 한편으로 무책임한 나에 대한 기록이자 자기반성의 글이다.

2009년부터 쓴 서평이 어느새 190개가 됐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200번째 서평을 달성한다. 그리고 그 중 2회 독은 딱 한 권이 있었다.

한국의 기획자들은 내가 2010년 대학생 때 읽고, 2016년에 다시 읽은 책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고, 서평을 쓴 것은 이게 유일하다.

6년 만에 읽은 이 책은 다 읽고 나서야 읽었던 책임을 깨달았다. 그만큼 읽은 내용을 많이 잊고, 그만큼 새롭게 읽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피엔스는 두 번째로 2회 독을 마친 책이다.

2회독, 변한 건 나다.

STEW 독서소모임에서 이 책이 결정되고 살짝 실망했다. 이미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정보를 읽고, 배우기 위해 나는 늘 새로움을 찾았다. 때문에 이미 읽은 책은 내게 흥미 없는 종이였다.

어쨌든 사피엔스를 다시 펼쳤지만, 1회 독처럼 역시나 속도가 나지 않아 짜증도 났다.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데 같은 내용을 다시 읽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사피엔스는 2017년에 전자책으로 읽었다. 3년 만에 다시 전자책을 열자 몇몇 밑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 밑줄이 얼마나 신경 쓰이던지, 내가 읽었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에 30분씩, 그렇게 며칠 읽었을까? 세상에, 내가 이 책을 읽었었다고?

밑줄을 의식해서인지,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부분에 밑줄을 쳤는지, 또 다른 부분은 왜 밑줄을 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STEW 독서소모임의 장점으로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점’을 꼽는데, 3년 전의 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밑줄 친 분량 자체도 달랐는데, 3년 전에는 81개 밑줄을 친 반면, 이번에는 280개 밑줄을 쳤다. 3배가 넘는 곳에서 배웠으니 3년 전에 제대로 읽은 건가 싶었다. 분명 그때도 정독했는데 말이다.

글을 시작하며, 서평 190개를 자랑스럽게 적었는데 190권 중 과연 얼마나 소화했을까 싶다. 190권을 다시 읽어서, 190권 모두 새로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책을 안 사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변한 내가 다행스럽기도 하다.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래, 그게 더 한심스러울 것 같다.

이 정도 깊이 책을 2회독 하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시 3년 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 변화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정독을 2회 하고 나니 책값이 정말 아깝지 않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

책은 크게 4파트로 나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등이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인지혁명으로 많이 요약된다. 나 역시 1회 독 때는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2회 독에는 과학혁명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최근 관심을 두는 ‘자본주의’를 재밌게 봤는데 이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아무튼 사피엔스가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왔다는 것에 스스로를 되돌아봤고, 적절한 시기마다 과학의 힘이 성장을 증폭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무지를 인정하고 성장한 점에서는 내 커리어가 떠올랐다. 3년 전 나는 꽤 무거운 도전을 했다. 내가 독립할 수 있을지, 내가 비즈니스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사람으로 홀로 설 수 있는지. 즉, 나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했고, 싸웠다.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6만 ~ 7만 년을 “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중요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일축하고 싶어질 수 있다.

현재 내 캐릭터를 만든 것은 3~4년 전이다. 그때 배움으로 현재 모습이 됐고, 꽤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니, 다시 무지를 인정하고 성장을 위해 몸을 던질 시기가 곧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지를 인정하려면, 무지해져야 한다. 때문에 나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스스로를 무지의 늪으로 던진다. 새로운 사람을 보며 자극받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 작아진다. 그렇게 늘 불편함으로 나를 몰며, 성장을 향해 걸어왔다.

진보는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아이디어는 곧 경제용어로 번역되었다. 진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리적 발견, 기술적 발명, 조직의 발전이 인간의 생산, 무역,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스스로 ‘꽤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는 나태한 발언을 하는 지금, 사피엔스는 적절한 도서였다. 지금보다 무지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고, 지금 얻게 된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다.

성장을 위해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면, 지금이 꽤 적절한 시기다.

사피엔스 성장 동력, ‘자본주의’

최근 내 관심사 중 하나는 ‘돈’이다. 내 자산을 분배하고, 투자하는 등 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큰 자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관심을 둬야 하는 것에 공감했다.

STEW에서 투자소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있다. 이제 어떤 사건을 보면, 자본주의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했다.

인류의 경제는 근현대 기간 내내 어찌해서든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왔는데, 이것은 오로지 과학자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발견이나 장치를 들고 나온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 내연기관, 유전자 복제 양 같은 것을. 은행과 정부는 돈을 찍어내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사피엔스 역사에 자본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농업혁명으로 밀과 함께 정착하면서부터 인류는 자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일 걱정을 하지 않던 인류가 내일을 걱정하게 됐다는 것에서 자본의 함정에 빠졌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를 이용하는 방법 뿐이다. 난 산으로 들어가긴 싫거든.

자본주의를 깨닫고 나니, 지난 30여 년 간 어째서 늘 곁에 있던 이것을 몰랐을까 싶다. 심지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만 9년을 향해 가는데, 너무 늦었다 싶기도 하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어쨌든 사피엔스 역사는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더 행복한 방향으로 왔냐는 질문에 그렇다 답할 수 없는 게 슬프긴 하지만, 역사를 바꿀 수 없으니 미래를 만드는 것을 택해야겠다.

마무리

책을 읽는 내내 유발 하라리는 나를 무수히 많은 역사 속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내게 묻는다. 뭘 원하냐고. 아니, 뭘 원하고 싶냐고.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3년 전 그 물음에 ‘내 이야기’를 만들겠다 답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내 이야기’를 만들었냐고 물으면, 만들고 있다고 답하겠다.

이제 무엇을 원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더해서 ‘무엇을 원했는지’를 물을 차례다. 원했던 것을 얻었냐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해야겠다.

이제 나는 나에 관한 무지를 인정할 수 있다.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했던 것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나를 몰랐다 인정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장했다. 이제 나는 다시 성장할 자격을 갖췄다.

3년 뒤 내게 다시 묻고 싶다.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3년 뒤에도 무지를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줄평 ★★★★☆

사피엔스의 성장 동력은 ‘자본주의’다.

인지 혁명

이 책은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대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믿었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그 이론을 완전히 부정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공존했으며 그들은 서로의 부족을 죽임을써 더 강한 종족이 살아남아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생태계를 교란시킬만큼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인간은 약한 종족이었다. 우리의 큰 뇌는 쓸모없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뇌가 소모할 많은 에너지를 찾아야 했고, 큰 뇌는 우리의 근육을 퇴화시켜 다른 종족들보다 약한 몸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맛좋은 부위를 다 먹은 후 남은 것들을 가져와서 먹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점점 그 단계를 높여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로 언어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상상력에 있다고 한다. 동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며 서로간의 친밀성이 커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언어의 공이 크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정보를 공유했고 빠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들도 언어를 사용했지만 인간의 언어는 다양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효율적이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위험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또 좋은 이야기이던 나쁜 이야기이던 뒷담화를 통해 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유대감을 키웠고, 동족을 더 빠르게 늘려갈 수 있었다. 언어와 상상력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일 수 있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강한 힘을 주었다.

농업 혁명

아직까지 정확하게 어떻게 농업이 시작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 사람들은 녹말에 중독 되었다고도 하고, 신에게 바칠 재물을 위해서 농업을 시작 했다고도 한다. 어쨋든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이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축복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농업은 하나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냥을 하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했다. 동물을 먹으면서 단백질을, 채소를 먹으면서 섬유질을 골고루 섭취했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하면서 한정된 종류의 곡물 만을 먹게 되었고, 이는 영양소 불균형을 가져왔다. 우리는 평소 배가 고플 때 나가서 사냥을 했고, 그 이외의 시간은 자신들의 시간을 즐기며 보냈다. 하지만 농업 혁명 이후로 우리는 그 시간을 농사짓는 데 써야했다. 또한 날씨가 농사에 중요했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농사는 사람들을 정착하게 만들었고, 정착을 통해 늘어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했다. 또한 농사를 위해 길들인 가축들은 인간들에게 질병을 퍼뜨렸고, 정착 생활은 질병을 옮기기에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 과연 이것이 인간들이 자신들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해온 행동 일까. 진정으로 우리가 원했던 발전은 이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의 통합

우리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구들이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비슷한 이념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통햡한 것은 언어였을까. 언어는 이렇게 많은 숫자들을 모으는 데 있어 기반을 마련했을 뿐, 더 강력한 통합의 방법으로 아래의 3가지를 꼽는다.

첫번 째는 재화이다. 첫 거래는 물물 교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가진 사과 3개와 고기 한덩이를 교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원하는 것이 달랐다. 나는 고기 한덩이를 얻고 싶었지만, 상인은 사과가 아닌 딸기를 가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나는 복잡한 물물 교환을 통해 딸기를 얻어 다시 고기 상인에게 가야할 것이다. 이는 비효율적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색을 칠한 종이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종이가 주는 가치를 신용하였고, 이를 통해 더 편리한 거래를 할 수 있다. 재화가 주는 통합의 가치는 문화의 가치보다 크다. 문화는 국가적으로 한정되어 있을 수 있지만 재화는 범세계적인 통합의 수단이다.

두 번째로는 제국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들은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를 통치하기 쉽도록 문화의 망각에 밀어넣었다. 지금은 제국주의라는 것이 모욕적인 단어로 들리지만 제국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제국주의는 피지배국에게 문화적 산물을 낳았다. 피지배국은 이를 테면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 아프리카, 아랍, 중국, 망뢰족 사람들은 영어를 배웠고 인권, 민족자결의 원칙을 신봉하였으며, 서방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페미니즘 같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는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동의한다. 현재 자유주의, 인권에 대한 중요성,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받아들인 이념이다. 하지만 그 문화가 전달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그 문화가 정말 모두를 위한 좋은 문화라고 할지언정 그 과정에서 인도주의적이지 않다면, 그 행위를 가치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문화는 새로운 문화와 섞이며 다양성을 통해서 발전한다. 따라서 피지배국이 지배를 당한 후 문화가 발전된 것은 그들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피지배국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우월함과 탐욕을 위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것이 우연히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게 만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종교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창조한 상상력을 얼마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지, 이러한 믿음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흥미로웠던 내용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종교가 인간의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한명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이 노하여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벌을 내리는 형식을 통해, 인간이 동물들과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또한 악마를 통해 일신교는 다신교를 믿고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신은 우리를 창조시켰고, 우리는 그 신을 믿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일신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악마라는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신이 하나 더 있다. 하지만 일신교란 하나의 신만을 믿는 종교인데, 어떻게 그 신과 동등한 악마라는 신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악마를 믿어 지옥에 가게 만든다면 신은 왜 우리는 창조했는가. 그것은 지금까지도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들 중 하나라고 한다.

종교에 대해서 가장 재밋 었던 부분은 바로 이념에 관련된 부분이다. 나는 항상 이념이라는 것은 종교와 완전히 분리했으며, 종교는 무언가에 광적으로 신뢰하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념은 객관적인 생각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념 또한 종교와 같다고 이 책에서는 설명한다. 종교란 자신들이 상상한 무언가를 믿고 그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 주제가 신이 아닐 뿐 이념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를 외치는 우리들도 자본주의라는 종교에 열렬한 신봉자 일지도 모른다.

과학 혁명

우리는 무지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과학을 발전하게 했다. 처음으로 이전의 능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얻기 위해 도약했다. 우리는 그 동안 알 수 없었던 익명의 신에게 호소했던 무언가를 기술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우리는 앎으로써 힘을 얻어갔다. 그동안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범위라고 생각했던 생명의 탄생과 죽음도 우리는 그저 기술적인 문제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 혁명의 부분에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과학 기술들과 공존하기 위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념과 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치게 되면 법은 어떤 판단해야할까. 우리가 영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이념을 가지고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 나가야 할까. 라는 문제에 우리는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인간이 생태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우리의 잘못을 꼬집으며, 지금이라도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앞으로를 다시 계획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중략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 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운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2020년 8월 지정도서

  1. 일시 : 2020년 8월 2일 오전 10시
  2. 장소 : 강남역 스터디 카페
  3. 도서 : 사피엔스
  4. 저자 : 유발 하라리
  5. 발제자 : 김동영

(Brainstorming)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문구 하나씩을 이야기 해보자.

  1. 인지혁명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사피엔스는 엄청난 협력망을 만들고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 중에 사상이 있다. 예를 들어, 백인은 백인우월주의를 믿고 전파했다. 그리고 흑인조차 나중에는 이 편견을 믿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백인우월주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예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 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믿고 그렇게 행동해온 사상과 편견에는 어떤것이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2. 

우리는 저번 달 도서 “지리의 힘”을 읽으며 전 지구를 통합하는 보편적 질서 체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다면 세계는 지금 점점 다양해 지고 있을까, 정상 상태(더 이상 변하지 않는 상태)일까, 통일화되고 있을까. 이 저자는 세계는 통일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통일화되고 있는 것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지배적인 요소는 돈, 제국, 종교이다.

이 중 이 시대 최고의 정복자는 미국도, 기독교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바로 ‘돈’이다. 돈은 이 세상 대부분의 지역에서 통용된다. 자본주의와 돈의 태생에 대해 책에서 자세히 나와있다. 그리고 장점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주의가 있을까. 자본주의도 약점을 가지고 있고, 점점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지는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자본주의가 앞으로 더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고 기독교와 불교처럼 오래 존속할 수 있을지, 세계 최고의 종교가 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3. 제국

제국은 나쁜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이미 이 세상 대부분의 것은 제국의 유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수 없다. 우리나라 또는 가까운 나라 일본,중국,북한에서 제국의 유산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 이전의 각 나라의 전통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이야기 해보자. 또 미래의 지구제국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자.

4. 종교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 중심의 종교로 기독교, 이슬람교가 있다. 자연법칙 이데올로기로 불교, 유교, 인본주의가 있다.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진화주의적 인본주의 등 으로 나뉜다. 이에 연관되어 자본주의, 공산주의도 탄생했다. 우리는 각자 어떤 종교들을 믿는지 생각해보고, 이 종교가 각자의 생에서 하는 역할과 영향을 이야기 해보자.

(plus) 5. 행복

행복에 관한 5가지 인용문을 나열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 유발 하라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쇼핑은 패배가 예정된 게임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소비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았을 것이다” –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행복한 소비를 욕망으로 나눈 것” – 폴 새무얼슨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따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 – 고타마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스님

이 책의 저자는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조건이 행복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조건은 물질적인 풍요, 건강 그리고 좋은 공동체 등 이 있다. 주관적인 조건은 모든 개인마다 다른 행복에 대한 특질이다. 부처와 법정스님 그리고 폴 새무얼슨은 욕망을 낮추면 자연스레 편안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3000년에 걸쳐 이 들은 다른 문장으로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만약 이 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주관적 기대와 욕망으로 불리는 이 것을 변화시켜 행복해 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단순한 역학관계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인권이나 도덕, 윤리와 같은 가치 아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예를 살펴볼수록, 지리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지정학적 안보, 힘의 논리가 현재 인류의 상황을 결정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향방 역시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실감하면서 약간의 무력감, 두려움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서유럽의 이야기가 그나마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일 흥미로웠다. 서유럽은 유럽연합(EU)을 결성하면서 지금까지 유사 이래로 벗어날 수 없었던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고 가장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비록 프랑스와 독일의 생존게임과 같은 전략들이 어느 정도 숨어있기는 하지만,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벗어나 인류애를 회복하려는 매우 고무적이고 담대한 첫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8년 그리스의 구제금융위기, 시리아 난민 수용의 문제, 영국의 브렉시트로 견고할 것 같았던 연합이 흔들리면서 – 역시나 – 지리의 법칙에 굴복할 것인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인류의 변화는 ‘지리’라는 원초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사실을 가감없이 인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축적해 놓은 인간의 존엄성, 인류애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인 것 같다.

한줄평

지리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의지를 확인해보고 싶도록 하는 책

인상깊은 문구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p40)

STEW 2020.7월 지정도서 <지리의 힘>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30개 가까운 나라들을 다녀왔던 것 같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정작 세계지리에는 무지했던 것 같다. 이번 지정도서를 읽으면서, 지리의 힘, 자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단연 ‘미국’이다. 

미국이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강대국을 유지해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리적 축복을 타고난 것도 있지만 운이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위로는 이민족의 침입이 어려운 자연환경을 가진 캐나다가 있고, 아래로는 사막이 방패역할을 해주는 멕시코가 있다. 책에서 말한다. “미국은 침략과 정복이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라고 말이다. 또한 에너지마저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미국은 강대국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땅에 지배 당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땅의 문제만은 아니다. 강과 산, 사막과 호수, 그리고 바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상황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리적 이유 때문에 피해를 받았다고 하면 받은 지역이다. 수많은 산맥들이 있지만 알프스 산맥 같은 제대로 된 산맥이 있었더라면 침략을 그렇게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열린 구조였다는 것이다. 물론 침략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진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각 세계의 지도자들의 성향과 이념, 기술 말고도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일시적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산맥, 천연자원이나 식량 자원에 대한 접근 등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까지 진출해 가는 한 우주 공간에서의 정치 투쟁도 불가피해보인다. 지리의 중요성을 알기에, 우주로 진출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해 나가고자 하는 모습에서, 자연이 준 것에서 최대치를 얻어 내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이러한 도전이 빛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지리가 과거, 현재, 미래를 주시하는 만큼, 또한 앞으로 지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계 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 하는지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줄평 : 늘 그렇듯 지리적 요소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별점: ★★★★

인상깊은 문구: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