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작년 7월에 부서 이동을 하고부터는 환율 관련된 책만 읽다가, 간만에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책 표지에는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렇게 길지 않았고 특히 각 장도 길지 않아서 읽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무거웠고, 읽는 내내 불편했다.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40년 전 실제로 우리네 사회에서 벌어졌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어서 그랬을까? 책을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참 무거웠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여 25년 STEW 독서소모임 첫 번째 시즌은 한강 작가님 스페셜로 결정됐다. 첫 책이 바로 “소년이 온다”였는데, 아마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독서소모임의 지정 도서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먼저 찾아서 읽진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현생이 바쁘고 공부할 것도 너무 많은데, 굳이 이미 지나간 안타까운 역사를 다룬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을 테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을 읽기 전에 소년이 온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설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어딘가 모르게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소설의 특이한 구성
소년이 온다는 총 6개의 장과 에필로그까지 총 7개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각 장에서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며, 화법, 시점, 묘사 이 전부 조금씩 다르게 구성이 되어 있다. 가령 1장은 “동호”라는 소년을 “너”라고 지칭하며 2인칭 시점으로 서술이 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2장에서는 이미 죽은 “정대”의 죽은 영혼이 1인칭 시점으로 여러 피해자를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구성이 굉장히 낯설었다. 소설 자체를 오랜만에 읽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인물에 대한 사전 설명이 없고, 갑자기 시점이 바뀌고, 심지어는 죽은 영혼까지 등장하니 처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보니, 저자는 최대한 다양한 희생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장에서는 친구가 죽은 걸 알지만 죄책감에 시신을 찾으러 상무관으로 들어간 동호를 2인칭으로 바라보고, 동호를 잃은 어머니의 심정은 독백으로 효과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죽은 정대는 영혼을 등장시켜 1인칭으로 서술하는 등 이들의 비극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려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불편하게 했는가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읽으며 참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권력에 대한 욕심 탓에 무참히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 희생자들은 아직도 1980년 5월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국가가 앞서서 지켜줘야 할 지극히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었고, 대학생, 소년이었다.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지금이 아니라, 1980년대 광주에 있었다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내가 얼마 전 계엄 사태를 보면서도, 나 하나 뭘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당장 내일 가서 일할 게 더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절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내가 평소 즐겨보는 슈카월드 채널에서 경제는 안정된 정치 위에서 피어나는 꽃(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슈카가 정확히 저렇게 얘기했었는지 확실하진 않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실제 계엄 이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났다. 특히 개인적으로 환율 관련 부서에서 외환 거래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계엄 선언과 같은 국내 정치적인 이벤트가 환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이 소설이 와닿았고, 반성하게 됐던 것 같다.
앞서 잠깐 이야기하긴 했지만, 작년 12월 3일 45년 만에 우리나라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물론 바로 국회 과반수 동의를 얻어 계엄이 해제되긴 했지만,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 자체가 워낙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계엄이 선포된 그 순간 바로 여의도 국회 앞으로 뛰어나간 국민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예전에 역사 관련된 책을 읽을 때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동호, 선주, 은숙, 진수 등과 같은 그 당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지켜온 소중한 가치다. 내가 만약 그 당시 광주로 돌아간다면 자신 있게 그들처럼 맞서 싸웠을 거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을 잊지 말고 그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독서소모임 발제를 위해서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는데, 당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인터뷰를 봤다. 벌써 40년이 지났는데도 그 어머님은 당시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이분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에 정당한 보상이란 있을 수 없다. “소년이 온다”라는 현재진행형의 제목처럼, 우리는 그 소년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인상 깊은 문구 >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 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생이 나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 김진수에 대해 물은 뒤 생각했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온 선생과 이곳에서 만날 약속을 잡은 뒤에도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왜 그는 죽었고, 아직 나는 살아 있는지.”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심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 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게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입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너무 평범해 누구와도 혼동될 듯한 얼굴, 눈을 떼는 순간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 전남대학교로 가자고 했다. 5.18 연구소 일층 전시실에서 비슷한 얼굴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빨리 스쳐지나간 장면이었으므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영상이 맨 앞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다렸다. 두번, 세번, 네번 반복해서 보았다. 그 소년 역시 너무 평범해 누구와도 혼동될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머리를 깎고 교복을 입은 소년들은 모두 비슷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저렇게 순한 외꺼풀 눈은, 키가 크느라 야윈 볼과 기름한 목은.”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