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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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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주식을 시작하신 분들이 정말 많다고 하죠? 저를 포함해 제 주변 분들도 정말 많이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대형 경제 유튜버 신사임당 님, 삼프로 님, 슈카월드 님이 나와서 새해 방송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주식이 되었건 부동산이 되었건 하나를 파는 것이 30대의 전략인 것 같다. 그리고 하나를 성공한 경험으로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은 전략 같다.

신사임당 님

한 시라도 빨리 시작해라. 주변에 보니 가장 부자가 된 친구들은 사업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슈카월드 님
https://www.youtube.com/watch?v=tb93cz7-RuM

이분들의 말은 저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주식이 제가 할 수 있는 돈벌이 중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주린이었기 때문이죠.

하긴 주식 관련 책이나 뉴스는 많이 찾아보고 정리도 했었는데요. 실제로 부동산이나 사업에 관한 이야기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더라구요.

근데 STEW 독서 모임에서 제 관심사를 들으셨는지 이번 달 선정 도서가 사업과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특히 골목 상권에 주목했던 책 <골목의 전쟁>이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사업, 주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사업이 여태껏 제가 관심있게 지켜보던 주식과 닮아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믿었던 저에겐 큰 충격이었죠.

책의 저자이신 김영준 님은 책에서 다른 도서 인용을 많이 하셨는데요. 특히 주식 분야가 가장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투자 분야에서 유명한 리처드 번스타인의 책 <스타일 투자전략>을 시작으로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 등 수많은 책들이 인용됐습니다.

운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주장했던 나심 탈레브 아저씨입니다.

주식 분야와 관련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통찰력이 사업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사업의 운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요. <행운에 속지 마라>를 인상 깊게 읽었었기에 사업 영역에서 운의 큰 영향력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투자의 세계보다 선택의 요소가 훨씬 더 많다. 게다가 관측이 어려운데다가 기간도 길고, 비즈니스에서 운의 요소를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칫 운의 요소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투자자와 비교하면 사업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했다면 자신의 성과로 돌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이 틀렸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아이템 만능주의(아이템이 좋으면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등 성공한 사업가들이 직접 성공 요인의 허점을 책에서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특히 신선한 재료가 사업의 “원인”이 아닌 성공적인 사업으로 인해 회전율이 높아진 “결과”라고 지목했던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주식에서나 사업에서나 운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노력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운칠기삼에 담긴 진짜 의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생각보다 개인의 노력과 실력이 미치는 영향은 보잘것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작은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는 것 말이다.

호구될 걱정보다 신뢰를…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우리 소비자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소비자가 무지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한 것이죠.

흔히 우리는 장사하는 분들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곧이곧대로 믿다가는 호구 잡힐 것이라고 주의하는 것인데요.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가격 논란이 일었던 블루보틀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격이 더 높은 것을 보고 스타벅스, 블루보틀 등 해외 기업에 우리나라 국민이 책잡힌다, 혹은 재룟값만을 보면서 원가 얼마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등 다양한 불신이 있습니다.

저도 부끄럽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골목의 전쟁>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디폴트였던 저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폭리가 절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매우 낮다. 폭리 논쟁은 오해와 그로 인한 불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미국보다 소득이 낮은 한국에서 스타벅스 커피가 훨씬 비싼 이유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경영전략과 임대료, 미국과는 다른 소비성향, 해외 본사 지급 로열티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폭리라고 말하긴 어렵다.

책 저자 말대로 폭리가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시장 가격에 대한 적당한 신뢰를 가질 만하다는 것이죠.

특히 요즘같이 인터넷을 통해서 어떤 사업이든 바로 리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요. 더욱이 호구 잡힐 걱정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적절한 신뢰를 보여줬을 때 그 이익은 우리 모두가 같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무지로 인한 불신은 소비자와 생산자 양쪽을 더 각박하고 괴롭게 만든다. 당장은 가격을 깎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행위가 ‘나를 속이고 이용하려는 자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성취감을 줄 수도 있지만, 그 행위는 소비자에 의한 생산자 착취이며 이로 인해 정상적인 생산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소비자로서 무지하지 않고 생산자를 조금 더 신뢰한다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인정받고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미래 치킨집 사장이 될 우리들에게

우리나라는 특히 자영업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우리의 진로는 치킨집 사장님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웃픈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죠.

물론 아직은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요.

JTBC에까지 나온 우리의 치킨집 사장 이야기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예 사업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박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전체 취업자 중에 25% 이상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에서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미래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매우 진부한 말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대비를 지금부터 미리미리 하라는 점이 이전과는 달랐던 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절박함을 오히려 피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자리 잡은 인생을 기반으로 사업을 한다면 무리한 도박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야기한 애플과 나이키 사례가 재미있었습니다. 공동 창업가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만드는 와중에도 HP라는 대기업을 다녔고, 필 나이크도 회계사 일을 병행하면서 나이키를 만들었다고 말이죠.

이런 창고만 보고 노는 아저씨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자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실패를 줄여주고 더 오래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언젠가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기에 로스쿨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꼭 로스쿨을 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로스쿨에 투자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줬습니다. 인생에 최소한의 안전망을 주기 때문이죠.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현재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실 겁니다. 정말 원하는 것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도 많을 것이구요.

물론 절박함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이 책의 조언대로 미리미리 준비해서 안정감을 갖추고 나가게 된다면 더욱 성공한 제2의 삶까지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무리는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조언을 해준 법륜스님의 유튜브 영상과 함께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생존이 보장받는다면 그 이후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지속하며 많은 자영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생계에 어려움은 물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도 들리는데요.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시대정신을 나누기 위해 이 책을 골랐습니다.

발제1.

대만 카스텔라, 인형 뽑기, 핫도그 등 잠시 생각해도 다양한 유행 상품이 떠오르는데요. 빠르게 잊혀진 아이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을 나눠봅시다. 그에 관한 추억도 함께 나누죠.

발제2.

▲대만 카스텔라는 <먹거리 X파일>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고 ▲아이템은 만능이 아니며 ▲프랜차이즈의 밝은 면이 있고 ▲전통시장의 적은 대형마트가 아니다. ▲임대인의 적은 임차인이 아니며 ▲자영업 투자금이 클수록 리스크 회피형이고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건 긍정적이다.

저자는 너무도 편하게 치우친 우리에게 논리적인 반박을 들려줍니다. 그 반박이 수긍되는 것조차 너무 편해 놀라운데요. 저자의 논리 중 가장 놀라웠던 챕터를 나눠봅시다.

발제3.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 1/4이 자영업자라고 합니다. 가족 등 주변 자영업자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발제4.

당신이 가장 즐겨 먹는 배달 음식 또는 동네 음식점을 떠올리며, 원가를 계산해봅시다. 아마, 처음일 테죠. 그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발제5.

언젠가 우리도 자영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문성이 없는 분야에서 말이죠. 만약 당신이 지금 50세에 퇴직을 하고 벼랑 끝에 몰려 자영업을 해야 한다고 가정합시다. 은행 금리 2%로 1억 원을 5년 간 대출 받는다면, 어떤 창업을 하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유발 하라리, 2020년의 혼란을 예측하다

2020년 마지막 날, KBS에서 2020년 1년 동안 전 세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 상영 중이었습니다. 저 모든 것들이 365일 안에 일어난 것이 놀라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한 해더군요.

민족주의의 심화, 코로나 19 팬데믹,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한 각종 시위,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유혈사태. 1년에 하나씩 와도 벅차게만 느껴질 일들이 매달 찾아오는 진기한 경험을 한 것이죠.

정말 정신 없던 2020년

이렇게나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대학원 수업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 세계화의 위기 등을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런 위기들을 목격하니 적잖이 당황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살고 사회문제 앞에 나와 직접 대면하고, 상황을 분석했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분명 2018년에 쓰인 글이지만 이미 2020년을 미리 보고 온 건가 싶을 정도로 현재 상황에도 적절한 주제 선정과 통찰력을 보여줬습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YES24

사라지고 있는 인간의 권위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단연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식상하게 들릴 정도로 이미 많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 권위가 이동하는 문제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단순히 4차 산업혁명이고 일자리가 없어지고의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이죠.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대량 실업의 위험과는 별개로도, 우리가 훨씬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인간의 권위가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글 아이>는 알고리즘이 인간 사회를 통제하는지 경각심을 심어줬던 영화였습니다.

특히 유발 하라리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파악하는 존재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요. 그러한 점이 너무나도 편한 나머지 우리가 의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내가 직접 찾아보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추천해줍니다. 또 글을 기재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알고리즘 검색 최적화를 시킬까 는 고민도 하기 마련이죠.

광고 사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객은 사람이 아닌 일개 알고리즘, 즉 구글 검색 알고리즘이다. 사람들은 이제 웹페이지를 디자인할 때 어떤 사람의 취향보다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취향에 더 신경을 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했던 나머지 포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인간의 권위를 알고리즘에 나서서 양도하고 있던 것이죠.

그것도 모자라 편리함에 눈이 멀어 제 데이터를 여기저기 공유하기까지 했으니, 알고리즘이 권위를 가지는 데에 나름 혁혁한 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섬뜩한 일이기도 하고요.

인간은 가축화한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중략)…우리는 지금 거대한 데이터 처리 매커니즘 안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며, 아주 효율적인 칩으로 기능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젖소는 좀처럼 인간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할 줄은 모른다.

데이터-젖소에서 탈출하려면 인간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데이터-젖소 탈출은 시작일 뿐입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의 깊은 본질에는 우리 인간적인 특성이 있는 것이죠.

문제는 결국 인간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을 통해 기술의 발전 이외에도 종교 분쟁, 테러리즘, 민족주의의 유행 등 2020년 우리 사회를 위협할 만한 주제에 대해 논합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종교나 기술이나 모두 그 자체로는 중립적일지 몰라도 그것들은 인간의 특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는 것이죠.

특히 유발 하라리가 말해준 종교는 이러한 특징이 너무나도 잘 드러났습니다. 유발 하라리에게 종교는 매우 특이한 존재인데요.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도 수천 년간 우리 인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하지만 종교가 장수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기능 때문이었습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인류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면서 자신의 힘을 유지한다는 것이죠.

이슬람교, 힌두교 혹은 기독교가 근대 경제 구조 위에 놓인 화려한 장식일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장식을 자신과 동일시할 때도 많다. 또한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이야말로 역사를 이끄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물론 종교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나 절에 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좋은 교리를 새기고 오고 가는 이유도 그 이유겠죠.

종교가 갈등의 대상이 되고 문제를 일으킬 때를 지켜보면 종교를 이용하는 “인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교라는 이야기를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결국 종교도 기술과 같이 쓰는 사람에 의해 좋게 활용될 수도 악용될 수도 있는 대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습니다. 거대 담론들의 문제가 결국 하나로 이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즉, 인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너무나도 거대해서 건들지도 못했을 것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교육과 명상, 21세기 우리가 가져야 할 무기

결국 인간이 가장 중요해서였을까요? 거시적인 담론들로 쉼 없이 달려왔었지만, 유발 하라리의 책 후반부는 모두 개인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겠어요…공부할게요…

우선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부터 알려줬는데요. 그가 강조했던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현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비록 지금으로서는 세부 내용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변한다는 것만큼은 유일하게 확실한 미래의 진실이다

우리 개인의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알고리즘보다, 아마존보다, 정부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 그들보다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적인 레벨부터 인간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문제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올라서자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 이후 자기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능력 또한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인간적인 특성을 파악하기 쉬운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쿵푸판다조차도 명상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의 감정, 그리고 감정을 통해 전해져오는 물질적 감각을 살펴보면서 온전히 내 몸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또 이건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행위죠.

명상은 정신을 직접 관찰하기 위한 돋보기다. 자신이 명상을 하는 대신 다른 어떤 명상가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활동을 관찰만 하는 경우에는 명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성과의 대부분을 놓치게 된다.

사실 책을 처음 다 읽었을 때는 이러한 해결책에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이 모든 거대 담론 끝에 명상이라뇨. 처음엔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인간으로 귀결된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 중 하나인 나를 진정으로 탐구하기엔 명상만 한 도구도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도 유발 하라리의 조언을 따라보려 합니다. 바로 끊임없는 교육과 자기 재발명, 그리고 명상을 말이죠. 거대 담론들이 앞에 있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저 자신을 재발견할 좋은 무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로 전한 메시지를 잊지 못한다. 그가 자료 속 진실을 찾아, 과거를 머릿속에 그리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다. 더욱이 그 그림을 전 세계 독자들 머릿속에도 그렸다는 것은 정말 마법과도 같다. 그렇게 그가 던진 메시지를 떠올리자면, 숙연해질 정도다.

그런 그가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에 이어 쓴 이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2020년 12월을 마감하기에 적절한 책이었다. 최근 내 고민과 올해 아쉬움으로 마친 내 도전을 보면, 유발 하라리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마저 보는 것 같다.

종교, 어리석은 인간을 다룰 정도로만 덜 어리석은 그것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종교를 등에 업은 ‘종교인’을 믿지 않는다.

천주교 모태 신앙이며, 유아세례를 받고, 복사단과 학생회장을 지나 교리교사까지 했던 내가 등을 돌린 건, 어쩌면 현시대 천주교를 말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기도를 하는 부모님에게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TV를 보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가만히 앉아 바라는 걸 되뇌는 행위가 과연 무엇을 바꾸겠는가? 때로는 스스로 화도 났다. 성당에서 보냈던 내 시간을 모아 다른 걸 했더라면, 적어도 조금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신앙생활을 했을 땐 꽤 깊이 그들과 함께했다. 때문에 가까운 종교인들도 있었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봤다. 때문에 나는 그들을 종교와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바꾸려 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 어디쯤 자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귀를 막았고, 지친 나는 스스로 떠났다. 결코 그들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종교라는 것 자체가 싫어지기도 했고, 그렇게 시야가 좁아져 귀를 막은 그들이 미웠다.

이런 내게 유발 하라리는 종교의 무서움을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유.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그들의 이야기.

어쩌면 기계와 알고리즘 세상에서 방향을 잃은 더 많은 사람이 찾아갈 곳은 종교가 아닐지. 그렇게 그들을 조종할 종교란 무엇인지. 마치 펜으로 맨 등판을 벅벅 긁는 듯한 아픔이 있는 글자들이었다.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 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종교가 알고리즘에 침투하고, 기계 속에 자리 잡을 때면 그들은 인간들을 사로잡기 위해 건드린 ‘인간적인 면모’처럼. 기계를 사로잡기 위해 ‘기계적인 면모’를 건들지 않을까.

기술, 인간 역사의 모든 것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망쳤을 때. 홀로 어둠에 남아 집히는 걸 모조리 던지며 눈물을 뿌릴 때. 그러다 지쳐 헛웃음만 나올 때. 문득 생각한다. 그냥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류를 발전시킨 ‘기술’이 결국 모든 악의 근원인가 싶다. 그래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란 기술로 밥 먹는 내게 이는 꽤 큰 딜레마다. 어쩌면 ‘기술’이란 종교에 몸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렇다.

최근 관심 두는 투자자 중 캐서린 우드가 있다. 우드는 ARK라는 성공적인 액티브 ETF 운용사를 이끈다. ARK는 올해 가장 성공적인 ETF 운용사 중 하나다. ARK는 ‘파괴적 혁신, 4차 산업혁명’ 등 키워드로 ETF를 운용한다. 바이오, 핀테크, 인터넷, 로보틱스 등 향후 인류 미래를 바꿀 산업에 투자한다.

캐서린 우드는 지금까지 인류를 뒤흔든 기술로 증기기관, 철도, 전기, 전화,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등을 꼽는다. 그리고 앞으로 인류를 뒤흔들 거라 예측하는 기술과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어쩌면 당신도 ‘기술’이란 종교에 빠졌는지 모른다.

개발자로 꽤 오랜 시간 살아온 덕에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개발자여서 좋겠다는 말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만들고, 웹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지 않느냐고. 만들고 싶은 거 만들 수 있어서 부럽겠다고 한다. 글쎄, 마냥 그럴까.

처음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때보다 경험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나아지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고민이 있는데, 나보다 더 나은 기술자들에 관한 부러움. 그들과 좁혀지지 않은 간극, 그래서 나는 뭘 만들고 싶은 것인가 하는 고민. 그래서 나는 어떤 기여를 하는가 하는 부끄러움. 앞으로 뭘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

결국 똑같다. 기술은 무한하고,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것마저 벅차다. 마냥 기술만 좇아서 될 일이 아니다. 늘 사람과 함께해야 하고, 때론 기술보다 중요한 게 많이 있다. 기술자로 살아가는데도 말이다. 하물며 인류 전체를 본다면, 정말 ‘기술’이 언제나 정답일까.

기술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에는 기술이 그것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앞으로는 기술이 나를 대신해 나의 목표를 결정하고 나의 삶을 통제하기가 너무나 쉬워질 것이다.

알고리즘이 인류를 지배하고, 인류는 인조인간으로 살며 서서히 멸종한다는 이제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언젠가 올 수 있는 미래지만, 현실은 어긋난 텍스트를 정리하고, 인간이 만든 버그에 갇혀 머리를 뜯는 기술자들이 대부분이다.

기술을 모르는 학자들이 떠드는 미래에 관한 수혜자는 결국 그 학자들이 아닐까. 마케팅 용어를 만들어내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고 떠드는 중 결국 그 떠드는 일자리만 생겨난 게 현실 아닌가.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너무도 식상해져버린 비관적인 예측 뒤에 나오는 건, 더 비관적인 예측뿐이다. 모두가 우울함에 빠져서 기술 발전을 막는 게 결국 그들의 해답인가 싶다.

태양이 뜬 낮에도, 네온사인이 켜진 밤에도 왠지 모르게 어두운 거리가 있다. 마치 우리 시대가 그런 거리와 같이 보인다. 그런 거리에서도 누군가는 밝은 얼굴로 힘차게 걷는다. 그들이야말로 기술을 모르는 이들이 말하는 그 ‘기술’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두드리는 종교와 기술이라는 또 다른 종교를 두고, 스스로의 길을 걷는 사람들 말이다. 결국 인류에 관한 해답을 찾는 건, 그들이 아닐까.

그래도 결국, 인간 세상

마치 당장 인류가 멸망하리라 말한다. 마치 당장 내년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 말한다. 아니, 마치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새로운 오늘이 될 거라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지구가 멸망할 거라 말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 속 논리는 꽤 단단해서 숨을 쉬지 못하게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도 인상을 쓰게 하고, 아무런 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읽다 보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들어간다.

사피엔스로 과거를 쑤시더니, 21세기 제언으로 미래를 논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호모데우스를 아직 읽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다.

나는 올해 ‘루틴’에 빠져,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장치를 만들었다. 운동을 하고,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 삶을 빼곡히 채웠다. 부족함 투성이인 내가 부족함을 채우려면 부족함을 수치화할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 발가벗겨진 상태로 추운 겨울 집 밖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상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늘 환자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몸 어딘가에는 늘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무언가 개선될 것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늘 부족함을 봤고, 그래서 늘 불안했다. 사자가 밀림의 왕인 이유는 밀림 한가운데서 낮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라더라. 사지 멀쩡한 내가 늘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 지새우는 이유는 결국 내가 약해서겠다.

조급해졌다. 어느새 주니어를 벗어나 시니어를 향해 다가가는 커리어. 누구도 내게 무거운 짐을 주지 않았지만, 기술을 모르는 학자가 기술을 우려하듯, 미래를 모르는 내가 미래를 우려했다. 마치 그들의 말처럼,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이었다.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특히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특권이 필요하다. 비생산적인 경로도 실험해보고, 막다른 길도 탐색해보고, 의심과 심심풀이의 여지도 둬야 하고, 작은 통찰의 씨앗이 서서히 자라서 꽃을 피우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면 결코 진실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뭐라도 했지만, 뭐든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 최소 2년. 내가 계획하고 성과를 바랐던 시기의 2년 뒤쯤. 정말 작은 것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많은 것을 가졌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2년 뒤에나 가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2년이 흐른 뒤에야 손에 쥔 작은 것을 보며, 이제는 또 다른 것을 원하며 달리는 내 다리를 보며, 그보다 더 멀리 또 다른 것을 고민하는 내 머리를 보며. 그런데 쟤는 왜 나보다 더 가졌나 쳐다보는 내 눈을 보며. 내 영혼이 온전히 머무는 곳이 있기나 한지 스스로 고민하는 내 영혼을 보며.

각자의 세상도 온전히 다루지 못하면서, 더 큰 우주를 바라보는 이들과 나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마무리

어둠 속에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이 적응해 조금 흐릿하게 보이곤 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견뎌보지도 않고 어둠을 논하는 건 꽤 어리석지 않을까.

그저 텍스트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휘젓고, 내 머릿속을 마저 마구 휘저은 유발 하라리의 논리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표한다. 할 수만 있다면, 유발 하라리에게 나에 관한 21가지 제언을 올려보라고 하고 싶다. 그는 과연 내 21가지 문제를 어떻게 고를까.

21가지 제언을 위해서 하라리는 인류의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 읽고, 엮고, 그 정보 속에 살았을 것이다. 나에 관한 21가지 제언을 쓴다 해도 하라리는 똑같이 하지 않을까?

하라리에게 부탁할 수 없으니, 나 스스로 내게 21가지 제언을 해야 할 테다. 나 역시 그처럼 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읽고, 엮고, 그 정보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이라면, 내가 바랐지만 아직 얻지 못한 것들, 여전히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내 이야기 역시 무의미하진 않겠다.

내가 어디에 취했었든, 내가 어디에 취해있든. 어쨌든 나란 사람은 내 세상에 살 테니 말이다.

읽게 된 동기

스튜 독서소모임 지정도서

한줄평

유발 하라리가 되어 내게 쓸 차례다. 21가지 제언을.

인상 깊은 문구

  • 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명료성이 힘이다.
  • 진부한 말이지만 모든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 인간은 사실 숫자, 방정식보다는 이야기 안에서 생각한다. 이야기는 단순할수록 좋다. 모든 사람, 민족은 자기 나름의 이야기와 신화가 있다.
  • 어떤 이들은 옛날의 계층화된 세상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었고, 이제와서 인종적, 민족적, 젠더적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다른 이들은(옳든 그르든) 자유화와 세계화라는 것이 결국에는 대중을 제물로 소수 엘리트에게 힘을 건넨 거대 사기라고 결론 내렸다.
  • 우리는 뇌를 설계하고 삶을 연장하고 우리의 생각도 임의로 죽이는 법까지 터득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데 훨씬 뛰어났다. 강 상류에 댐을 지어 흐름을 조작하는 것은, 그것이 더 넓은 생태계에는 어떤 복잡한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는 것보다 더 쉽다.
  • 초자본주의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도 자유의 보호에는 최소한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굶는 아이에게 자유는 없다.
  • 그런 과두제 아래 살다보면 늘 이런저런 위기가 국민 의료나 공해 같은 따분한 문제보다 우선한다. 국가가 외부 침략이나 끔찍한 전복 사고에 직면했다는데 누가 과밀 병원과 강물 오염에 대해 걱정할 시간이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끝없는 위기의 흐름을 만들어냄으로써 부패한 과두제는 지배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격동이 20세기의 참신한 이데올로기를 낳은 것처럼, 다가오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을 맞이해서도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인간에게는 두 가지 유형의 능력이 있다. 육체적 능력과 인지적 능력이다. 과거 기계가 인간과 경쟁한 것은 주로 순수 육체적 능력에서였다. 반면에 인간은 인지력에서 기계보다 월등하게 유리했다. 그 결과, 농업과 산업 분야의 수작업은 모두 자동화되었지만, 인간에게만 있는 인지적 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서비스직들이 생겨났다. 인간만의 인지적 기술이란 학습과 분석, 의사소통, 무엇보다 인간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지만 AI는 이제 이런 기술에서도 점점 인간을 추월하고 있다.
  • 그 결과 음식부터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어떤 신비로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확률을 계산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온 것이 사실은 ‘패턴 인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 보행자의 의도를 예측하는 운전사, 잠재적 대출자의 신용을 평가하는 은행원, 협상 테이블에서 분위기를 감지하는 변호사는 마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는 상대의 얼굴 표정과 음성의 높낮이, 손의 움직임, 심지어 체취까지 분석하는 방법으로 생화학적 패턴을 파악한다. AI가 적절한 센서만 갖춘다면 인간보다 훨씬 더 정확하면서도 믿을 만하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 AI가 보유한 비인간 능력 중에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는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이다.
  • 미국 연방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이 2012년에 낸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교통사고 사망 사건의 31퍼센트가 과음, 30퍼센트가 과속, 21퍼센트가 운전자 주의 분산 때문이었다. 자율주행 차량은 이런 일을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
  • 따라서 단지 사람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교통과 의료 같은 분야의 자동화를 막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호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사람이지 일자리가 아니다. 남아도는 운전사와 의사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 좁은 범위의 규격화된 활동이 전문인 일은 자동화될 것이다. 하지만 넓은 범위의 기술들을 동시에 구사하고, 뜻밖의 상황에도 대처해야 하는 유동적인 일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란 훨씬 어려울 것이다.
  • 모든 형식의 예술 중에서도 특히 음악이 빅데이터 분석에 가장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입력과 산출을 정확히 수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력은 음파의 수학적 패턴이고 산출은 신경(에서 일어나는) 폭풍의 전기화학적 패턴이다.
  • 결과적으로, 인간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해도 새로운 ‘무용’ 계급의 부상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두 세계의 최악을 함께 겪을 수도 있다. 높은 실업률과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 동시에 닥치는 것이다.
  • 수 세기 동안 체스는 인간 지능의 더없는 자랑거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알파제로는 완전 무지 상태에서 네 시간 만에 창의적 완숙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지도하며 준 도움도 전혀 없었다.
  •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인류의 상당한 비중이 고용 시장에서 밀려난다면 일-이후 사회와 일-이후 경제, 일-이후 정치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정치적 모델이 앞으로 직면할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이제 웹페이지를 디자인할 때 어떤 사람의 취향보다 구글 검색 알고리즘을 취향에 더 신경을 쓴다.
  • 점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 가지 새로운 모델은 보편기본소득제(UBI)다. UBI는 정부가 알고리즘과 로봇을 지배하는 억만장자들과 기업들에 세금을 물려서 그 돈을 모든 개인에게 기본 필요를 충당할 만큼의 급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하고자 제안한다. 이것이 빈곤층에는 실직과 경제적 혼란에 대비한 완충 역할을 할 테고, 덕분에 부유층은 포퓰리즘에 의한 대중의 격분으로부터 보호받을 거라는 구상이다.
  • 보편 기본 소득(자본주의 낙원)을 제공하느냐, 보편 기본 서비스(공산주의 낙원)를 제공하느냐. 어느 쪽이 나을지는 논쟁적인 주제다.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낙원을 택하든 진짜 문제는 ‘보편’과 ‘기본’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정의 내리는 데 있다.
  •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서만 설계되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지만 기대는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조건도 포함된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도 높아지며, 그 결과 여건이 극적으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실험이 일-이후 세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사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퍼센트가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들과 가족들이 굶어 죽지 않는 비결은 흔히 부인들이 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에 부족함이 없도록 정부가 보조금과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야 말로 ‘그런 말이 생기기도 전’의 보편 기본 지원이다.
  •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한 대형 직물공장보다, 남성들이 함께 모여 탈무드를 공부하는 작은 방에서 더 큰 즐거움과 참여감과 통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묻는 조사에서 이스라엘이 상위권에 오르는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런 무직의 가난한 사람들이 점수를 올려주기 때문이다.
  • 국민투표와 선거는 언제나 인간의 느낌에 관한 것이지 이성적 판단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만약 민주주의가 이성적인 의사 결정의 문제라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혹은 그 어떤 투표권을 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박식하고 이성적이라는 증거는 충분하다. 경제나 정치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에 관한 한 확실히 그렇다.
  • 좋든 나쁘든, 선거와 국민투표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는 것이다. 느낌에 관한 한 아인슈타인과 도킨스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느낌이 신비롭고 심오한 ‘자유 의지’를 반영하고, 이 ‘자유 의지’가 권위의 궁극적인 원천이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자유롭다고 가정한다.
  • 우리는 대체로 감정이 사실은 계산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계산의 과정이 자각의 문턱 훨씬 아래에서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과 재생산의 확률을 계산하고 있는 뇌속의 수백만 개 뉴런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뱀에 대한 공포나 성관계 상대의 선택 혹은 유럽연합에 관한 의견이 어떤 신비한 ‘자유의지’의 결과라고 착각한다.
  • 우리는 지금 엄청난 두 가지 혁명이 합쳐지는 지점에 와 있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자들이 인간 신체, 특히 인간의 뇌와 감정의 신비를 해독하고 있다. 동시에 컴퓨터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유례엇ㅂ는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선사하고 있다. 생명기술 혁명과 정보기술 혁명이 합쳐지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은 내 감정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모니터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권위는 아마도 인간에게서 컴퓨터로 이동할 것이다.
  • 사람들은 사상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대문에 그들은 늘 환자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몸 어딘게에는 늘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무언가 개선될 것이 있게 마련이다.
  • 이제 수십억 명이 의미 있고 믿을 만한 정보를 찾을 때 구글 검색 알고리즘을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정보를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구글한다’. 우리가 어떤 답을 찾을 때 구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짐에 따라 우리 자신의 정보 검색 능력은 갈수록 감퇴한다. 오늘날 이미 ‘진실’은 구글 검색의 최상위 결과와 동의어다.
  • 무엇을 공부할지, 어디에서 일할지, 누구와 결혼할지를 선택할 때도 AI에 기대기 시작하면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의사 결정의 드라마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 테슬라가 생산하는 자율주행 차량은 두 가지 모델이 될 것이다. 바로, 테슬라 박애주의자와 테슬라 에고이스트다. 긴급 상황에서 박애주의자는 더 큰 선을 위해 주인을 희생시키는 반면, 에고이스트는 주인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테슬라 에고이스트를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테슬라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고객은 언제나 옳을 테니까.
  • AI 덕분에 막대한 양의 정보를 중앙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AI는 중앙 집중 체계의 효율을 분산 체계보다 훨씬 높일 수 있는데, 기계 학습은 분석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을수록 성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 경제 시스템은 나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다변화하는 쪽으로 나를 내모는 반면, 나의 연민을 확장하고 다변화할 동기는 조금도 부여하지 않는다. 나는 증권거래소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고통의 깊은 원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가축화한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
  • AI가 부상하면서 인간 대다수의 경제적 가치와 정치적 힘이 소멸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생명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제 불평등을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전환하는 일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 동포가 수백만이고 공산당 동지가 수백만에 이른다 해도 그들은 한 사람의 진짜 형제자매나 친구와 같이 따뜻한 친밀감은 줄 수 없다. 그 결과 오늘날 사람들은 더없이 잘 연결된 지구상에서 더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 물리적 공동체에는 가상 공동체가 따라갈 수 없는 깊이가 있다.
  • 진정한 혁명에는 언젠가는 희생이 필요한데, 이것을 기업과 고용자, 주주 들이 감수할 리 없다. 그래서 혁명가는 늘 교회와 정당과 군을 구축한다.
  • 이슬람의 진정한 핵심이 무엇인지를 두고 벌어진 열띤 논쟁은 한마디로 무의미하다. 이슬람교에는 고정된 DNA가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무슬림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 전쟁은 상업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사상과 기술과 사람을 확산시킨다.
  • 오늘날에는 단일한 정치 패러다임이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진다. 지구는 약 200개의 주권 국가들로 나뉘었지만, 이들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외교 의례와 공통의 국제법에 의견을 같이한다.
  • 오늘날 인류가 동질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면은 자연 세계와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국가, 경제, 병원, 폭탄을 만드는 법)에 관한 한 거의 모두가 동일한 문명에 속한다.
  • 스웨덴과 독일, 스위스 같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자유주의 국가들은 모두 민족주의 감정도 강하다. 민족적 유대감이 부족한 나라의 목록을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콩고, 그리고 다른 실패한 국가들 대부분이 들어가 있다.
  • 과학은 기술적 질문에는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데 반해, 정책 질문에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당 의견 불일치가 있다. 가령, 지구온난화가 사실이라는 데에는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지만, 무엇이 최선의 경제적 대응인지를 두고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 시아파의 이란이나,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나, 유대교의 이스라엘이나, 힌두교의 인도나, 기독교의 미국이나 경제 정책에 관한 한 큰 차이가 없다.
  • 미국 복음주의 교회 목사들은 ‘지옥 불’ 설교에 환경 규제에 반대하는 주장을 담는가 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구온난화를 비판하는 운동을 이끌고 있다.
  • 견해 차이의 진정한 원천은 근대 과학 이론과 정치 운동에 있지, 성경에 있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정책 논쟁에 기여하는 바가 사실상 별로 없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종교는 겉치장일 뿐이다.
  •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 일본은 고유 종교인 신도를 일본 정체성의 초석으로 고수했다. 사실 신도를 재발명했다. 전통 신도는 다양한 정령과 신령, 귀신에 대한 믿음이 뒤섞인 애니미즘 신앙이었다. 모든 마을과 신사가 자기만의 정령과 지역 관습을 갖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일본은 국가 공인 신도를 만들면서 수많은 지역 전통들을 억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 신도’에는 민족성과 인종이라는 대단히 근대적인 사상이 주입됐다. 일본 엘리트들이 유럽 제국주의에서 따온 요소였다.
  • 이민 협상을 평가할 때 양측 모두 상대편의 의무 준수보다 위반 사례에 훨씬 큰 무게를 둔다. 만약 이민자 100만 명은 준법 시민인데 100명이 테러 집단에 가입해서 수용국을 공격한다면, 이는 크게 봐서 이민자들이 협상 조건을 준수한 것일까, 위반한 것일까?
  • 이미 굳은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두 허구의 나라를 상상해보자. 이름을 ‘냉대국’과 ‘온화국’이라고 하자. 이 두 나라는 문화적으로 차이가 큰데, 그중에는 인간관계와 개인 간의 갈등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도 있다. 냉대국 사람은 유아기부터 학교나 직장, 심지어 가정에서도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감정을 누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배운다. 고함을 지르거나 화를 내거나 상대가 맞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
  • 반면, 온화국은 유아기부터 갈등은 밖으로 드러내도록 교육받는다. 분쟁에 휘말리면 속만 끓이거나 억누르지 말라. 처음부터 감정을 밖으로 발산해라. 화를 내고 고함을 치고 상대에게 자신의 기분을 정확히 말해주는 것이 좋다.
  • 온화국 사람은 직장 동료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탁자를 치고 고성을 지른다. 그렇게 하면 문제에 집중해서 그것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몇 년이 지나 승진 기회가 생긴다. 온화국 사람은 승진에 필요한 자격을 다 갖췄다고 해도 상관은 냉대국 지원을 선호한다.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네, 온화국에서 온 그 사람은 장점이 많긴 해요. 하지만 인간관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다혈질인 데다 주변에 불필요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우리 회사 문화를 해칩니다.”
  • 냉대국 사람이 온화국으로 이민 갔을 때도 거의 같은 일이 일어난다. 냉대국 사람은 온화국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잘난 체하는 속물이라거나 냉혈한이라는 평판을 얻는다. 친구도 잘 못 사귄다. 사람들은 그가 신의가 없는 데다 사교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상급자로 승진도 못한다. 기업 문화를 바꿀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 사람들은 전통적인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영웅적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사이 전쟁터가 이동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결과 전통적인 인종주의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오날날 세계는 ‘문화주의자들’로 가득하다.
  • 우리는 이민을 둘러싼 유럽의 논쟁이 명확한 선악의 전쟁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민 논쟁은 어떤 협상 불가능한 도덕적 명령에 관한 비타협적 투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두 가지 정당한 정치적 입장 사이의 토론일 뿐이며, 표준적인 민주 절차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 테러범들은 2001년 9월 11일 이래 매년 유럽에서 약 50명, 미국에서 약 10명, 중국에서 약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구촌을 합치면 사망자는 2만 5,000명에 이른다. 반면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은 매년 유럽에서 약 8만 명, 미국에서 4만 명, 중국에서 27만 명 등으로 모두 합치면 125만 명 가까이 된다. 당뇨병이나 높은 혈당 수치 때문에 숨지는 사람도 연간 350만 명이나 되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도 연 700만 명에 이른다.
  • 테러범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는 파리를 닮았다. 파리는 너무나 미약해서 찻잔 하나도 혼자서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파리 한 마리가 도자기 가게를 부술까? 파리는 먼저 황소를 찾아낸 다음 귓속으로 들어가서 윙윙대기 시작한다. 황소는 두려움과 분노로 미쳐 날뛰면서 도자기 가게를 부순다.
  • 프랑스에서는 공식 집계에 따르면 매년 1만 건 이상의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 신고되지 않는 사건도 수만 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강간범과 폭력 남편을 프랑스 국가의 실존적 위협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약속 위에 건설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테러는 훨씬 드문 사례라 해도 프랑스 공화국에 치명적인 휘협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근대 서방 국가는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국경 내 정치 폭력은 불허하겠다는 명시적 약속 위에 정당성을 확립해왔기 때문이다.
  • 오늘날 과학자들은 도덕성이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나왔으며, 그 뿌리는 인류가 출현하기 전 수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한다.
  • 지난 200년 동안 중요한 유대인 과학자들은 대부분 유대교의 종교적 권역 바깥에서 활동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시바를 뒤로하고 연구소를 택한 후에야 비로소 과학에 놀랄 만한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존재의 신비에 관해 늘 궁금해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유대교와 기독교, 힌두교의 성가신 법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고 마침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개인의 합리성이 아니라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 덕분이었다.
  • 집단사고에 의존한 덕분에 우리는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지식의 착각 덕분에 스스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불가능한 노력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남들의 지식을 신뢰한 것이야 말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특히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특권이 필요하다. 비생산적인 경로도 실험해보고, 막다른 길도 탐색해보고, 의심과 심심풀이의 여지도 둬야 하고, 작은 통찰의 씨앗이 서서히 자라서 꽃을 피우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나입할 수 없다면 결코 진실도 찾을 수 없다.
  • 글로벌 이슈를 논할 때 나는 늘 다양한 소외 집단들보다 글로벌 엘리트들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위험에 빠진다. 글로벌 엘리트들은 대화를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관점은 놓칠 수가 없다. 반면에 소외된 집단들은 대개 말이 없다. 그러다보면 그들의 존재마저 잊기 쉽다. 이 모든 게 고의적인 악의가 아니라 순전한 무지에서 생기는 일이다.
  • 설사 세계가 당면한 주요 도덕적 문제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도 우리 대부분은 더 이상 그럴 능력이 없다. 사람들은 수렵, 채집인 두 명이나 스무 명 사이, 혹은 두 이웃 씨족 사이의 관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백만 시리아인이나 5억 명의 유럽인, 혹은 지구상의 모든 교차 집단과 하위집단 간의 관계를 이해할 능력은 없다.
  •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 아담과 이브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지만 그래도 샤르트르 대성당은 여전히 아름답다. 성경은 상당 부분이 허구일지 몰라도 여전히 수십억 신도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연민과 용기와 창의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 사람들은 상자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미 자신들이 상자(자신의 뇌) 안에 갇혀 있으며, 그 상자는 다시 더 큰 상자(무수히 많은 기능을 갖춘 인간 사회)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력, 창의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 기술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에는 기술이 그것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앞으로는 기술이 나를 대신해 나의 목표를 결정하고 나의 삶을 통제하기가 너무나 쉬워질 것이다.
  •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야기는 두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첫째, 내가 맡을 어떤 역할을 부여해야만 한다. 둘째, 좋은 이야기는 무한정 확장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나의 지평은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 어느 현명한 노인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상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소.” 어떤 미래 유산이나 집단 서사 같은 거대 사슬의 서사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가장 안전하면서 가성비 높은 이야기는 아마도 로맨스일 것이다.
  •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초가 튼튼해서라기보다는 지붕의 무게 덕분에 탈 없이 유지된다.
  • 근대 서구에서는 유교가 의식에 집착한 것을 두고 흔히 인간에 대한 얕은 이해와 의고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공자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깊이 꿰뚫어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 문화(중국을 필두로 이웃 나라인 한국과 베트남, 일본)에서 극도로 수명이 긴 사회적 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자기희생은 극단적인 설득의 행동이다. 이것은 비단 순교자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때 시작해서 토요일 일몰 때까지 지속된다. 그 사이에 정통파 유대교도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일을 금한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끊는 것까지 삼간다. 이 문제를 두고 가장 박식한 랍비들이 논의를 벌인 끝에 화장실 휴지를 끊는 것도 안식일 금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고, 그 결과 안식일에 밑을 닦고 싶은 신실한 유대교도는 미리 분절돼 나오는 휴지 주머니를 사전에 준비해둬야 했다.
  • 오늘날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도 단지 무슬림으로만 혹은 이탈리아인으로만 혹은 자본가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 악의 문제는 악이 실제 삶 속에서는 반드시 추악하지 않다는데 있다. 악은 사실 대단히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 IS 조직원들도 실제로는 순교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이 폭격을 맞아 살해됐을 때 분노하는 것 아닌가?
  • 빨간 사과를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도, 똥 덩어리를 역겹게 만드는 것도 오로지 인간의 느낌이다. 인간의 느낌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분자 다발뿐이다.
  • 다른 모든 우주의 이야기처럼, 자유주의 이야기 역시 서사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창조는 매 순간 일어나며 창조자는 나 자신이다.
  • 부처는 우주의 세 가지 기본 현실을 설파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인 본질이란 없으며,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 부처에 따르면, 생에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하는 고통에서 해방되면 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람들의 물음에 부처는 이렇게 조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절대로 아무것도.”
  • 우리 인간이 세계를 정복한 것은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능력 덕분이었다. 그래서 특히 우리는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아는데 서툴다.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만약 그럼에도 차이를 알고 싶어 한다면 시작점은 고통이다.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고통이다.
  •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곳이야말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학문 세계는 내게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신화를 해체하는 도구들을 제공했지만, 인생의 큰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점점 더 좁은 질문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장했다. 결국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병사들의 자전적 기록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 인생의 큰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은 보통 콧속으로 숨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아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기가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내가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생기는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삶을 이해해야 한다.
  •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내 숨이 콧속을 드나드는 것의 실체를 관찰하다 보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정신은 흩어져서 방황했다. 수년 동안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며 나라는 개인 브랜드의 CEO라는 인상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몇 시간 명상만으로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 위빳사나의 기술은 정신의 흐름이 몸의 감각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통찰에 기반을 둔다.
  •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너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 괴로움의 본질은 실체의 거부입니다. 당신은 어떤 것(고통이든 쾌락이든)을 경험하면서 그 밖의 것을 바랍니다. 고통을 경험할 때에는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 어떤 식으로든 ‘책의 경험’을 유지하는 것, 그러니까 140자 트윗이나 유튜브의 1분짜리 재미있는 고양이 동영상 같은 것들을 스치듯 훑고 다니는 게 아니라, 한 주제를 깊이 탐구하는 데 여러 시간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을 다시 기억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을 이어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교수이자 저자 중 한 분이다. 사피엔스를 시작으로, 출시하는 책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지의 행복함을 선사한다. 이번 책 또한 내 무지에 감사함을 느끼며 정독했다.

인간 :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 인간의 사전적 정의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이다.

‘불안한존재’

오늘날의 사람들은 더없이 잘 연결된 지구상에서 더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은 이런 불안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139

내가 존경하는 저자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은 왜 시간이 흐를수록 베스트셀러로 인정받고 있을까? 점점 사람들이 ‘불안’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느끼고 이 알 수 없는 기분의 원인을 알고 싶어서? 난 그랬었기 때문에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었다.

우리는 불안한 존재이다. 언제나 옆을 보고 비교하며,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한다. 각종 SNS를 통해 행복한 척 허구를 보여주며 자존감을 회복하려 애쓰고, 경쟁자에게 난 너보다 위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커지는 건 내 불안뿐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상위 1%는 흐뭇하게 웃으며 쳐다본다.

미스터리한 문제다. 인간은 더 안락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구상의 어떤 종보다 괄목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경고한다. 지금까지 힘든 노동의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불안했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사회로부터 무관한 존재가 되는 상태로부터 불안해진다고 말이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콜라보는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편안한 삶의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의 여파로 일자리를 걱정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1, 2, 3차 산업혁명 당시에도 소멸한 일자리를 새로운 산업의 일자리가 채웠듯, 지금의 기계로 대체되는 일자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일자리로 채워질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말 그대로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고부가가치를 지닌 노동력이 필요로 하므로 대량 실업과 구인난이 함께 올 것이라고. 지금 우리나라 사회를 봐도 적용이 된다. 판교의 IT기업들은 개발자를 돈 주고 모셔가려 해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구인난이 심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발자들의 개발로 반대편의 공장에서는 수 배 인력의 단순 노동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난 영업은 사람과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AI가 원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협상 또한 냉철한 AI가 대신한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직업에 적응할 체력과 유연한 정신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하지만 40대 50대가 됐을 때, 변화에 적응 못 하는 사람에 대해서 단지 그 사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봤고 내가 불안한 존재라는 걸 다시 느낀다. 난 행복하다 생각하지만, 그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내 선택에 대한 불안감이 언제나 함께한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합리화하자면, 불안하기에 더 나은 곳을 바라보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에 인간적인 게 아닐까? 중요한 것은 저자도 말하지만, 자신에 대해 자신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도 알지도 못한다면 다가오는 급변의 시대에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무지한존재, 어리석은존재’

공황도 일종의 오만이다. 이것은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는 우쭐한 느낌에서 나온다. – p41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 p268

지구 생태계의 최강자로 우뚝 선 우리 사피엔스. 난 인간이 어느 종보다 뛰어난 뇌를 가졌기 때문에 최강자가 됐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의 역사가 보여준 상황들은 단지 욕망덩어리의 어리석은 존재로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저자도 말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대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한 편에서는 거짓을 사실이라 말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선동한다. 한 편에서는 상대편의 잘됨이 자신들의 불이익이 될까 봐 대항하기 위해 소리친다. 그사이에 새로운 편에서는 소리 없이 새로운 자신들만의 장을 만들기 위해 전략을 펼친다. 우리 역사에 언제나 있는 패턴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며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며,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해왔는지 말한다.

그리고 향후 미래의 펼쳐질 급격한 과학발전으로 인한 사회문제나 생태계 문제들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가 하나의 생각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도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상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처럼, 인류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처해야지만 세계가 합심하겠지만 그때는 너무 늦는다는 게 문제다.

저자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 특히 대중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함구하는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종교가 인간의 응집력을 통한 발전,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하는데 좋은 영향도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허구의 이야기인 종교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이 이 허구를 진실로 보고 진실은 외면하는 사태에 대해 촌철살인한다.

나 또한 무신론자이지만, 모든 종교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정치나 문화적인 영향력을 떠나, 불안하고 나약한 사람이 어떤 것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아니면 안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종교를 통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십자가 전쟁 등 종교의 어리석은 결정을 떠나, 세계대전 등을 보면 인간은 언제나 어리석은 선택을 해왔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는 핵이라는, 인류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환경에 놓이게 하였고, 생태계를 끊임없이 파멸시키며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다.

마무리

책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분간해서 결코 허구의 이야기를 실체로 오인하지 않고, 허구적인 것을 위해 실재하는 것들을 해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 p 483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은 명제이다. 아무리 거시적으로 봐도 현재와 같이 각 국가가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에 편중된 정치를 하는 한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변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인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깨닫지 못하면 다가오는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급격한 발전에서 인간이지만 인간이지 않은 존재로 될 가능성이 있다. 내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비합리적인 것에 정신 팔려 진실을 보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지속해서 만들어야겠다. 다시 한 번 저자에 감사한다.

한줄평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함께 하며, 나를 돌아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

인상 깊은 문구

모든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 p11

디지털 독재 -> 착취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관함 (사회에서 관련성을 잃고 하찮은 존재로 전략한다는 뜻) – p13

비판하지 않고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결점을 고치거나 극복할 수는 없다 – p17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은 경제와 사회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데 훨씬 뛰어났다 – p2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 p29

하지만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 말이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파이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감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 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 p40

공황도 일종의 오만이다. 이것은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는 우쭐한 느낌에서 나온다. – p41

이런 감정과 욕망이 사실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면, 이런 알고리즘을 해독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 컴퓨터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 밖에 없다 – p47

AI가 보유한 비인간 능력 중에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는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이다 – p48

우리가 보호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사람이지 일자리가 아니다 – p51

인간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해도 새로운 무용 계급의 부상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두 세계의 최악을 함께 겪을 수도 있다. 높은 실업률과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 동시에 닥치는 것이다 – p60

앞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재훈련할 수 있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인간이 그런 끝없는 격변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 p64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서만 설계되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기대는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조건도 포함된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도 높아지며, 그 결과 여건이 극적으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보편 기본 지원이 2050년 평균인의 객관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꽤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주관적으로 더 만족하는 것과 사회적 불만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p78

감정은 합리성의 반대가 아니다. 감정이 체화한 것이 진화적 합리성이다 – p86

나의 내부 영역을 제도와 기업, 정부 기관이 이해하고 조작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자유 의지에 대한 나의 환상은 산산조각 날 가능성이 높다 –  p88

오늘날 이미 진실은 구글 검색의 최상위 결과와 동의어다. 길 찾기 능력은 근육과 같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 -p96

모든 결적적인 의사 결정을 구글 알고리즘이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편안한 인생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생이란 정확히 어떤 인생일까? 그런 인생을 의미 있게 해줄 모델이 우리에게 있는가? – p99

세계화는 수평적으로는 세계를 통일하고 국경을 없애지만, 동시에 수직적으로는 인류를 분할할 것이다 – p127

수많은 사람이 이제는 다른 어딘가에서 목적의식과 지지받는 느낌을 찾고 싶어 한다 – p137

오늘날의 사람들은 더없이 잘 연결된 지구상에서 더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은 이런 불안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139

지난 세기 동안 기술은 우리를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실제로 자신의 느낌마저 점점 더 온라인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 p142

옛 전통을 왜곡하는 일은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 p154

국수주의 경향이 나날이 심해지며 먹고 먹히는 싸움이 횡행하는 세계에서, 한 나라가 기술 개발에서 고위험 고수익 노선을 추구하면 다른 나라들도 뒤져 일을 수 없는 이상 따라갈 수 밖에 없다 – p188

종교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정책 논쟁에 기여하는 바가 사실상 별로 없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종교는 겉치장일 뿐이다…거대한 정체성이 기반으로 삼는 모든 것은 허구의 이갸이지, 과학적 사실이나 경제적 필요가 아니다 – p205

불행히도, 그런 점에서 전통 종교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의 치유책이 아니라 일부이다. 종교는 여전히 민족의 정체성을 다지고 제 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수 있을 만큼의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 p211

따라서 테러의 궁극적인 성패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가 테러범들에게 상상력을 납치당하고, 우리 자신의 두려움에 과잉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성공한다. 반대로 우리가 테러범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균형 있고 침착하게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실패하게 돼 있다 – p250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 p268

유일신교가 한 가지 확실하게 했던 일은, 사람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편협하게 만들어 종교적 처형과 성전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 p286

텍스트들은 상상력이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쓴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선조가 사회 규범과 정치 구조를 정당화하려고 발명한 이야기일 뿐이다 – p298

세속주의의 가치는 진실이다. 단지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진실이다…..세속주의자들이 중시하는 또 다른 가치는 연민이다. 세속주의 도덕률은 이런저런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데서 나온다…… 세속주의의 쌍둥이 가치인 진실과 연민에 헌신하는 태도는 또한 평등을 향한 헌신으로 귀결된다….끝으로 세속주의는 책임을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 p308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일련의 절대적인 해답을 믿지 않으면 인간 사회는 와해될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꺼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곤란한 질문을 제기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모든 구성원이 단일한 해답을 무조건 수용해야만 했던 사회보다 더 번영했을 뿐만 아니라 더 평화로웠다. 자신이 믿는 진실을 잃을까 겁내는 사람은 몇 가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사람보다 더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질문을 불허하는 답보다 훨씬 낫다 – p312

개인의 합리성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믿음 자체가 자유주의자들의 집단사고의 산물일 수 있다 – p329

세상이 짜인 방식이라는 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무지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정작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진실을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돼 있다 – p337

한 번 한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지만, 천 번을 반복한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 – p355

“나는 안락함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 p384

우리 개인의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알고리즘보다, 아마존보다, 정부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 그들보다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 p402

여성들이 왜 연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져오라고 요구할까? 연인이 그만큼 막대한 금전적 희생을 무릅쓴다면, 스스로 그만한 가치 있는 일을 위한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433

악의 문제는 악이 실제 삶 속에서는 반드시 추악하지는 않다는 데 있다. 악은 사실 대단히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파시즘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p443

만약 자유의지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면 물론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 하지만 자유 의지가 욕망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뜻한다면 인간에겐 아무런 자유 의지가 없다 – p453

책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분간해서 결코 허구의 이야기를 실체로 오인하지 않고, 허구적인 것을 위해 실재하는 것들을 해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체인지 허구에 불과한지 알고 싶다면 그것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라고 물어야 합니다 – p484

공짜로 무언가를 얻는 경우 당신이 상품이다. 공짜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의를 포기하는 대신 낮은 품질의 정보를 얻는 것은 정신 나간 짓입니다 – p493

기술 발전

어느 날 뉴스에 알파고라는 이름이 나온 적이 있었다.
구글에서 개발한 알파고는 이세돌이라는 우리나라의 천재적인 바둑기사와의 대국을 앞두고 있었다.
대국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국에서 이세돌의 승리를 예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AI, 머신러닝의 분야가 각광받게 된 상징적인 경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AI의 능력에 관심을 가졌고, 그 후 더욱 빠르게 개발되어 현재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술이 되었다.

하지만 새로움에는 항상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유발 하라리는 AI가 자유 주의 즉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릴 수 있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보의 기하 급수적인 증가로 인간은 완벽하게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일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졌다.
하지만 AI는 기계 하나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 집권화된 정보에서 필요한 정보를 내려받는 식이다.
그리고 각 기계는 중앙 데이터에 다시 자신이 모은 데이터를 보낸다.

많은 데이터는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돕는다.
인간과 기계의 데이터 처리량의 격차는 이미 인간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의 의사 결정 판단을 선택해야 한다면, 기계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처음에는 작은 의사결정이겠지만, 이후에는 거의 모든 부분의 판단을 기계에게 맡길 수 있다.

의사결정을 AI가 대체한다고 해서 그리 큰 일이 일어날까.
우리의 인생은 한편의 의사 결정 드라마와 같다.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의사 결정에 놓이고, 선택을 통해 인생이 변해간다.
그 의사 결정을 모두 AI가 대체한다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주체가 자신이 아님을 느끼며, 허무주의에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피하기 보다는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저자는 이 문제가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세계가 공동체로써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노력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큰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우리는 세계화를 막는 작은 문제들부터 해결해야한다.

이민

세계에는 다양한 이슈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민에 관련된 부분이다.
지금까지 이민을 논할 때 우리는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의견만을 내놓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도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인종차별주의가 아닌 문화주의라는 사상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이 우리와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차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민자들과 시민들은 아래와 같은 논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이민에 관련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첫 번째로는 이민자는 이민하는 국가의 핵심 규범과 가치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전통 규범과 가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민자들이 만약 첫번째를 잘 받아들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당장의 이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사람들의 문화주의적인 생각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지역의 우월성을 객관적인 우월성과 혼동하지 말며, 우월성을 주장할 때에도 잣대와 시기, 장소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너무 일반적인 주장으로 개인을 예단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문제를 파악하고 세계를 돌아봤으니 이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할 차례가 왔다.
앞으로의 우리 삶에 아래 두 가지의 생각을 꼭 해야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한다.

첫 번째로 넘겨 짚기를 주의해야한다고 한다.
세상에 다양한 가짜 뉴스가 있다. 그리고 그 뉴스의 영향력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진실을 찾기 보다는 가짜를 믿는 것에 더 치중한다.
복잡한 문제를 보다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착오적인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그 뉴스의 진실을 보기 보다는, 정보를 축소하고, 휴면 스토리에 집중하며, 음모 이론에 귀기울인다.
사람들은 어려운 정보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감정을 건들이는 이야기는 항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쉽고, 간단한 정보들은 이해하기 편하며, 음모 이론은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넘겨 짚기를 통한 예단이 아닌 진짜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두 번째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한다고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직업은 이제 내가 누구인지 규정할 수 없다. 자신의 기술 또한 AI에 대체될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을 받들고 있는 여러 개념들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무너지기 쉽다.
이럴 때일 수록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야한다.
저자는 명상이라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추상적인 가치에 나의 존재를 의지하는 것보다, 지금 물리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숨을 내쉬고 마시며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느끼기를 권유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정의한 이후에야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서 흔들림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책을 끝마치고 있다.

현재 도래한 사회부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부수적인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필수적이지만 등한시 했던 문제들을 일깨워 주었고, 책을 읽으면서 관련된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앞으로 직업이 사라지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한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나는 직업과 일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현재 나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직업은 4차 산업 혁명과 가장 잘 맞는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을 잃는 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대학교를 들어가는 2013년만 해도 컴퓨터 공학과는 그렇게 좋은 과가 아니었다.
이처럼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AI분야가 미친듯이 성장하고 있는 지금, 나의 직업도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사라질 수도 있을 것 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정의해야할까.
나는 저자과 말한 것과 같은 명상을 이용해 볼 예정이다.
명상이 처음에야 어려운데 후에 지나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적인 걸 싫어해 매일 유투브를 틀어놓고 지내지만 하루 10분만이라도 시간을 내보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결국에는 혼란 안에서의 나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 아닐까.

2021년 1월 지정도서

  1. 일시 : 2021년 1월 3일 오전 10시
  2. 장소: 온라인
  3. 도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4. 저자: 유발 하라리
  5. 발제자: 오형진

(Brainstorming) 책에는 총 21가지 제언이 각 장마다 정리되어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장이 무엇이었나요? 왜 해당 제언을 가장 유심히 읽으셨나요?

인류가 맞이할 위협들

책의 전반부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맞이할 다양하고 파괴적인 위협에 주목하였습니다. 거대한 인간의 데이터를 처리하여 여러 방면으로 악용될 수 있는 AI, 그런 인간의 데이터를 수집하게 만들 생명과학,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같이 인류가 맞이할 생태적 위협 등 매우 다양했습니다. 이 중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두려움을 주었던 위협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나요? 책에 나오지 않았던 위협이 있었다면 그런 부분도 공유해보도록 합시다.

교육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다.

유발 하라리는 세상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끊임없이 효과적으로 배우며 자신을 재발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신적 강인함과 새로운 것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 등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자신이 최근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끊임없는 학습에 얼마나 준비됐다고 생각하는지 공유해보도록 합시다.

자유의지

자유의지는 우리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것에 기반이 될만큼 강력한 개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법체계와 경제 이론 등이 탄생했죠. 그러나 생명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존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인간의 몸이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인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통찰이 우리 뇌와 몸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제시하는 견해는, 우리의 감정은 인간만의 어떤 독특한 영적 특성이 아니며 어떤 유의 ‘자유의지’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여러분은 인간이 자기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만약 있다고 믿는다면, 자신의 자유의지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의미

유발 하라리는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인류 사회의 전 체계가 이야기 위에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요.

이야기 위에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의 전 체계가 구축되고 나면, 이야기를 의심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개인적, 사회적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여러분의 정체성에 있어 가장 중요했나요? 또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시나요?

세속주의

유발 하라리는 세속주의에 대한 제언을 했던 14장에서 세속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이들에게 세속주의란 이런저런 종교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기보다 나름의 일관된 가치 기준으로 규정되는, 대단히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세계관이다.

세속주의는 진실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관찰과 증거를 활용합니다. 이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종교와 대비되는데요. 이러한 측면에서 유발 하라리는 세속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합니다. 세속주의를 행함으로써 도그마적인 신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도 인정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어떤 신조를 따르든지 불가피한 그늘을 인정하고, “우리에게는 일어날 리 없다”라는 안일한 확신을 피해야 한다.

해당 챕터에서는 사회나 문화의 그늘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이것을 개인의 레벨로 가져오는 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신의 약점, 혹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새해에 이러한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요?

“아유, 우리 아들 공부하다가 20대 다 보내겠네”

제가 요즘 저희 어머니한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인데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또 대학원 수업에 입시까지 준비하며 고통받는 제 모습이 여간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하긴 과제하다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 시간도 벌써 새벽 6시를 훌쩍 넘겼으니 그러실 만도 하네요.

하지만 진짜 무서운 사실은 제가 평생토록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워낙 복잡한 데다가 빠르게 발전하니 공부할 것이 줄어들 수가 없다는 것이죠.

저 사실을 무섭지 않게 만들 방법은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즐기면 그만인 것이죠.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에게 “즐거운 공부”는 마치 “뜨거운 얼음” 같은 표현처럼 들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공부하면 망한다는 것이 진리이거늘…

그래도 20살에 애플 최연소 팀장을 했던 제임스 마커스 바크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줬습니다. 그가 썼던 책 “공부와 열정”에서는 공부가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다고 말하는데요. 많은 걸 느끼게 해준 책인 만큼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공부할 자료가 없다는 핑계는 먹히지 않는다

Rich Chigga의 데뷔곡이자 히트곡인데요. 1억 6천만 뷰를 훌쩍 넘길 정도로 센세이셔널했습니다.

위 영상은 제가 즐겨들었던 인도네시아 출신의 래퍼 Rich Chigga의 뮤직비디오입니다. 그는 성숙한 목소리는 물론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며 고작 16살이라는 나이에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그가 단 한 번도 외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리치 치가가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데에는 인터넷의 공이 큽니다. 유튜브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래퍼의 음악을 듣고 인터뷰를 보면서 영어를 스스로 체득했기 때문이죠.

바크는 진작부터 인터넷의 이런 힘을 믿고 있었나 봅니다. 그는 자기가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당장 나가서 그 공부를 하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죠.

내가 배우는 지식은 내 주변 어디에나 깔려 있다. 나는 이를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승인을 구걸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터넷이 이렇게나 발달한 21세기에 배울 곳이 없다는 말은 힘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검색하는 능력만 조금 키우면 지식 그 자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지식 내용 그 자체보다도 그 지식을 찾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지식 노동자의 성공은 현재 아는 사실이 아니라 배우는 방식이 좌우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책 중반부에서 소개되었던 여러 가지 공부 방법들은 매우 유익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계기로 공부법 그 자체에 관한 관심도 생길 수 있었죠.

“자기”가 빠져버린 것 같은 “자기소개서”

근데 제가 즐거운 공부를 하기 위해선 있어 공부법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바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가 공부를 사랑하게 된 방식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분야들을 공부하고, 이들을 연결 짓고 문제를 풉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배움은 공부를 통해 ‘자아’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얼마나 즐거울까요? 자기가 세운 기준에 따라 자신만의 공부계획서를 만들고 이를 실행해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저 구절을 읽는 순간 제가 왜 최근에 공부로 스트레스 받았는지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입시를 위한 공부가 바로 그 원인이었습니다. 입시의 가장 강력한 힘이 저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죠.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자격”을 받기 위해서 별 관심 없는 공부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남이 만든 일련의 기준을 넘지 못하면 공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준 좌절감이 컸던 것이죠.

팩트로 때리지 말아줘…

더 큰 문제는 공부 뿐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활동마저도 이제는 남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크의 말대로 하나의 경험을 통해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만큼 경험의 힘은 정말 막강한데 말이죠.

샛길의 지혜란 원래 하려던 일이 아닌 옆길로 빠지면서 배우는 많은 지식을 뜻한다. 이 원리가 가능한 이유는 인생살이가 딱 그 교훈만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갖가지 교훈을 동시다발로 전하기 때문이다.

합격을 하기 위해서 저는 입학사정관 마음에 드는 활동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연스레 “이 활동을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엮으면 스토리라인이 맞을까?” 등 공부뿐만 아니라 활동을 할 때도 저런 생각을 하며 활동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죠.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저의 자아를 찾기는커녕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도 온전히 그 경험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값진 경험만큼 제 자아를 찾아줄 인생의 공부는 없는데도 말이죠.

물론 덕분에 자기소개서는 정말 잘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2년간 있으면서 제 모든 공부와 활동을 자기소개서에 적은 “오형진”에 맞춰져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자아를 찾는 즐거움에서 꽤나 멀어진 것 같았습니다. 최근 제 공부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을 찾아낸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오형진”이 아닌 자기소개서 속의 “오형진”이 되기 위한 공부가 재미있을 리가 있을까 싶네요.

지금이라도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내가 쏜 화살이 어디에 꽂히든 그곳을 중심으로 과녁을 그리는 것이다.

제 상황에서 바로 이것이 책에서 찾은 저의 솔루션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수많은 화살을 쏘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것이죠. 마치 스티브 잡스가 했던 “점들을 이어라”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Connect the Dots” 여태까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입시를 때려치우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분방한 제가 법 공부를 하겠다며 이런 생활을 2년째하고 있는 것인데요. 입시를 포기할 생각은 여전히 1도 없습니다.

다만 법과 정치와 관련된 점을 그리면서도 제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는 것입니다. 바크의 말대로 의식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죠.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알아낼까? 내 감정을 살피면 된다. 내 감정은 다양한 행동에 무관심하거나 동요하는 모습으로 반응한다.

도대체 뭘까 내 마음의 소리

저는 사실 제 취향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저 자신에 대한 탐구가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것에 큰 욕심이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바크의 조언을 다 받아들인 이상 더이상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입시도 신경쓰고 대학원도 신경쓰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것 말고 저만의 항해를 하루 빨리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크의 말처럼 바로 행동해야겠죠.

뛰어들기! 이게 바로 핵심인데, 행동하지 않으면 내 의식은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주도 학습에서는 바다 멀리 나갔다가 마주친 기회를 잘 활용할 때에 가치 있는 것을 많이 건지게 되므로, 나는 뭔가 발견했다 싶으면 바로 배우기 시작한다.

많이 방황하는만큼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저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이어서 읽어볼 책들

  1. 오리지널스
  2. 폴리매스
  3.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공부와 열정. 제목을 듣자마자 알았다. 이 저자와 나는 안 맞는다(그래서 사실 발제 투표도 안 했는데 다수 앞에서 소수는 힘이 없다). 어쩜 이리도 나에게 없는 두 가지만 쏙쏙 골라놓은 책이 있는지. 하지만 독서에는 여러가지 목적이 존재하며, 그 중에는 나에게 없는 이상을 쫓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인체 드로잉 책을 읽었으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라는 책을 읽기도 했다. 자신이 겪지 못한, 하지 않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의 나와 이 책을 덮었을 때의 내가 조금이라도 변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버커니어 학자

저자는 스스로를 버커니어 학자라고 칭한다. 버커니어 학자란 17세기 ‘버커니어’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순 해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래 프랑스, 영국 출신의 사냥꾼, 농부들을 칭하는 말이었는데 이후 스페인의 공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약탈을 시작하고서도 버커니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17세기 버커니어는 신대륙 발전의 주요 동력이 되며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매력을 느낀 저자는 버커니어의 일부 자질을 본따 ‘버커니어식’ 학자 및 학습법을 정의내린다. 바로 대담하고 적극적이며 자유롭고 순발력 있는 모습이다. 단순히 학교에서 주어지는 주입식 교육에 순응할뿐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자유롭게 나의 열정을 일깨워주는 주제를 탐구하는 모든 사람들을(비록 학교라는 기관에서 공부를 할지라도) 그는 ‘버커니어 학자’라 칭한다.

약탈한 배!

책 속에서 저자는 굉장히 구체적인 11가지 버카니어 독학 비결을 공유한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비결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버커니어 학자라는 컨셉에 충실한 점이 유쾌했고, 적절한 예시들로 쉽게 읽히는 좋은 글이었다.

  1. 철저한 물색: “(물색은) 고전적인 버커니어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사냥감을 찾아 바다를 누비는 행동으로, 희생양이 갈 만한 곳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2. 진정한 문제: “(버커니어는) 선원들에게 동기 부여 할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자기네 배를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결국 물에 빠져 죽게 생기자 다급해진 버커니어들은 온갖 보물이 가득한 새 선박을 망가뜨리지 않고 재빨리 포획했다.”
  3. 인지 파악: “내 의식은 항해하는 배와 같다. 의식을 항해하는 방법은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게 아니다. 의식을 항해한다고 곧장 바람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나는 이따금씩 삭구를 손보고 선박 표면을 긁어내야 한다.”
  4. 지식: “어떤 운전사가 전에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자동차에 탑승한 경우, 그는 곧바로 조작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운전법을 알아낸다. 모든 차량이 유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동차를 알게 되면 여기서 생긴 ‘자동차 스키마’가 다음에 다른 차량도 몰 수 있게 가르친다.”
  5. 실험: “컴퓨터에 대해 배워야 하는가? 컴퓨터를 한 대 사서 만지작거려라. 나는 처음으로 요트 수업을 받은 지 5분 만에 요트에 몸을 실었다. 10분 후에는 요트를 끌고 바다로 나갔다.”
  6. 여유 시간: “버커니어 학습에서 방황은 호사가 아닌 필수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방황하려면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는 허비해도 좋은 시간이다.”
  7. 이야기: “미국 문화에서 버커니어 이야기는 월트디즈니사와 피터 팬이 완전히 장악했다. 버커니어 하면 당장 떠오르는 모습이 롱 존 실버와 후크 선장이니 말이다.”
  8. 아이디어끼리 비교: “나는 사물끼리 충돌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은하나 차량, 암석, 원자끼리 충돌하거나 아이디어끼리 부딪치는 모습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때로 어떤 아이디어를 이해하려면 다른 아이디어와 충돌시킨 다음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9. 다른 두뇌들: “나는 동료 해적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내가 작업상 실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데, 내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언하는 요령을 안다.”
  10. 단어와 사진: “훌륭한 버커니어는 단어 앞에서 위축되는 일이 거의 없다. 단어를 정복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또 그 단어가 쓰인 글을 형편없게 보는 것이다.”
  11. 시스템 사고: “어떤 대상을 단순화하려면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혼잣말한다. 단순한 실들이 매우 복잡한 직물을 짜 낸다고.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패턴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설령 내가 틀렸어도 이를 깨달을 때면 이미 많은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이처럼 놀라운 열정의 색깔

정말 배가 고프면 기를 쓰고 먹을 것을 구하려 할까요, 아니면 빈둥거리다가 굶어 죽을까요? 저는 세상에 게으른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정말 갈망하는 대상을 찾지 못했을 뿐이죠.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었다. 게을러서 고민이라는 학생에게 저자가 해준 조언이었는데 왜인지 이 문장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사회는 열망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쉽게 게으름이라 이름 붙이고 이를 부정적이고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겨오지 않았나? 그렇기에 열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 열망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subject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인상 깊었다. 버커니어 학자의 공부법을 떠나, 이처럼 열정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은 책이었다.

우선은 유튜브 영상을 먼저 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공부’와 ‘열정’ 이 두 가지 단어를 좋아한다. 수험생 때보다 20살 이후에 내 삶을 지배해온 두 단어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행위는 지겹고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삶은 공부의 연속이며 열정이 강요된다. 그것은 세번째 직장인 이곳에서 더욱 통용되는 가치관이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지식의 체화를 통해서 성장하고, 오늘도 지적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실 나는 이 과정을 즐기고 있다.

세용님의 적극적인 추천과 제목이 흥미로워 이 책을 기대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했다. 인사이트를 주는 생각들이었고,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잘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좀 더 곱씹어보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불편하다. 어쩌면 이 책이 절판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잘난 척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정할 수 없이 저자는 눈에 띄는 성과와 모두가 납득할만한 업적들을 쌓아왔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따뜻함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저자는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맹목적인 믿음과 일방적인 견해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대학생 때 교육기부단체를 만들고, 멘토링캠프를 다년간 기획, 운영하면서 공교육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교육을 대체할 이상적인 교육에 꿈꿔왔다. (현재도 최종적인 목표는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깨달은 것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과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며, 주변의 도움과 인프라 등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에 우리의 재능과 성과를 공유하고 환원할 필요가 있다. (위의 유튜브 영상을 꼭 보길 바란다.)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살펴보자.

  1. 나는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본 적이 있다.
  2. 나는 교과서나 교재를 사는 돈이 없어 못 산적은 없다.
  3. 성적, 입시 등에 관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멘토링을 받은 적이 있다.
  4. 모르는 것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부분 선생님을 통해서 해결되었다.
  5. 나는 집에서 혼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간단한 5가지 질문 중에서 1가지라도 YES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제법 괜찮은 교육을 받은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당신이 잘 모르는 지역의 어느 학생보다 유복한 환경에서 공부를 배우고, 더 유능한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육환경과 인프라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최신 입시와 교육 트렌드를 알고 있는 교사, 그리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 등… 그렇기에 나는 화자에 접근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에 오는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저자의 노력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부유했고, 그러한 부를 남길 수 있었던 시대가 인정한 대작가를 아버지로 둔 만큼 그 유전자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부유했기에 더 좋은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했을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번의 기회를 놓치거나 실수해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혹은 그 실수가 용납이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런 특수성을 배제하고 개인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방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부유하지는 않아도 부족함 없는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았고, 항상 주목받는 아이였지만 방황들로 힘든 재수생활을 경험했고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수능성적과 입시결과를 온전히 나의 노력의 결과로 착각하는 과오를 범했었다. 그래서 필자가 그동안 받았던 교육, 누려왔던 인프라, 그리고 재능 등으로 인해 시작점이 달랐고, 노력이 더해져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개인적인 아쉬움과 호기심 그리고 재미로 시작했던 멘토링캠프를 통해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멘토링하면서 느낀 점은 개개인마다 발달의 시기가 다르고, 성장의 속도가 다르며 그에 대한 니즈와 열정 또한 상이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교육의 기회와 교육의 질이 너무나도 상이하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학생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서로 다른 동기부여 요소, 교육환경 등 고려해야 할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개인별 맞춤 교육과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것이고, 가장 위험한 것은 획일화된 교육을 주입식으로 제공하고 표준화된 학습법이나 동기부여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현재의 공교육은 정답이 될 수 없고, 대안 또한 마땅치 않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공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 공교육 자체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교육의 한계도 명확하지만, 이점과 의의도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는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되기에 생략코자 한다.)

저자와 같은 사람도 있고, 충분히 존중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무조건 열정과 노력 만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내가 해냈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나의 노력보다는 행운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 ‘공부’와 ‘열정’ 두 가지 모두 의미 있고, 좋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원하는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며, 개인이 가진 재능에 맞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기회와 능력이 주어진다면 그런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 보다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재단이나 비영리법인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마치 패배자인듯 보는 시선을 거두고, 각자의 개성과 재능 그리고 성향을 존중하는 사회, 좀 더 따뜻하고 그리고 모두가 조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개발자의 위상이 높아지고, 코딩교육이 보편화되어가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컴퓨터가 없어서 과제를 제출하려면 피시방에 가야하고, 프린터가 없어서 프린트물을 출력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과,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두뇌와 재능의 한계로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주어진 기회와 환경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