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독서소모임

Category

(Brainstorming) 책을 읽으면서 제일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견해는 무엇이었나요?

  1. 작가는 우리의 의식과 제도에 스며있는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경계합니다.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고,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보아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로 가족구성원을 지배하는 세태를 비판하는데요, 이 견해에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또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녀의 수가 줄어든 요즘에도 교육을 중심으로 한 ‘부모의 희생과 헌신, 자녀의 보답’을 아름다운 관계로 바라는 오래된 가족주의의 경향은 약해진 것 같지가 않다. 되레 가족이 더욱 응집돼 자녀를 두고 ‘너의 성공=우리의 성공’이라고 바라보는 등식이 더 심해진 듯하다.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부모의 헌신’과 ‘자식의 보답’ 구조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부채의식을 갖도록 만든다. 헌신과 보답의 도덕적 의무로 서로에게 짐을 지우는 이 가족주의의 구조 안에서 행복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p184

스웨덴의 이상적 가족이란 부부가 각자 일을 하며 서로에게 경제적으로도, 양육의 부담으로도 의존적이지 않은 성인들, 그리고 가능한 한 이른 나이에 독립하도록 고무되는 아이들, 서로가 서로의 신체적 온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가족적 가치’를 갉아먹는다기보다 사회적 제도로서 가족이 현대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p221

2. 작가는 한국이 유달리 배타적 가족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 이유로 한국의 가족이 압축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 없이 복지와 교육, 의료, 부양 등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오롯이 떠안으면서 각자도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는데요, 이 견해에 동의하시나요?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공연한 멸시, ‘정상가족’의 범위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미혼모,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서슴지 않는 심성도 이처럼 내 가족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배타적 가족주의에서 비롯됐다. – p199

‘정상가족’의 안팎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의 문제들을 지켜보며 내가 한국 가족주의에 대해 가졌던 의문들, 즉 가족 안에서는 개별성, 가족 밖에서는 다양성이 왜 존중받지 못하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본 답은 이렇다. 첫째, 가족의 생활을 지원하는 공공의 역할 부재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 없이 사적 안전망인 가족에게 모든 ‘보호’를 떠넘겼고 당장의 생존이 목표인 가족이 구성원의 개별성을 고려할 리는 만무하다. 둘째,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가족 단위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개별성과 다양성의 설 자리는 없다. 셋째, 자기 집단만 중시하는 가족주의가 사회로 확대되면서 배타적인 태도가 굳어졌고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p203

3. 당신이 생각하는 “체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러한 체벌을 찬성하시나요 혹은 반대하시나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녀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기 때문에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체벌은 엄연히 별개인 인격체에 대한 구타이고 폭행인데도 아이의 관점이 아닌 성인, 부모의 관점에서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p28

미숙한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열등한 상대에 대한 교정 목적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오래된 논리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적 연구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고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에게도 반성보다 공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p29

4. 부모의 친권은 부모의 “권리”인가요 “의무”인가요? 그리고 자녀에 대한 친권행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요? 예컨대, 자녀의 통장개설부터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친권과 자녀의 기본권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 설정이 필요할까요?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긴급보호조치로 집을 떠나 시설에서 살게 된 아이의 경우 국가에게서 수급자로 지정받아 의복비, 식비 등 필수적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문제는 수급비를 받기 위한 통장을 개설해야 하는데 미성년자인 아이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려면 친권자인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이를 학대에 결국 격리를 당하기까지에 이른 부모가 통장 개설에 순순히 동의해줄 리가 없다. -p102

5. “가족”이라는 영역은 사생활의 영역에 해당할까요? 그렇다면 이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허용될 수 있을까요? 국가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국가는 어린이를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가 아니라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개인으로 간주하여 보호제도를 운영한다. 국가가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일정 부분 떠맡으며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부모 뜻을 거스르면서까지도 강제한다. 아이들의 인격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전통적으로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던 가정 내에 개입해 ‘투명한 가족’을 창출한다. -p215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p217

아이들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모-자녀는 생애의 가장 일차적 관계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부모의 친권이 아이의 인권을 침해했을 때, 이 경우에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부모의 권리보다 우월하고 정당하다. 이게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이자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할 공공의 역할이다. – p248

6. 작가는 개인과 가족, 국가의 관계 설정에서 이상적인 모델로서 스웨덴을 제시합니다. 개인의 자율을 보장하되,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그 자율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하면서 차가운 신뢰 cool trust를 이야기하는데요, 우리나라도 이러한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발표자들은 이처럼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중심에 있는 스웨덴 식의 사회적 계약방식을 국가주의적 개인주의 statist individualism 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개인의 자율에 대한 강조가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신뢰와 상반되지 않는다. 되레 국가는 시민들의 동맹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조력자다. 오히려 개인들 사이에 위계와 불평등이 심한 전통적인 가족의 가부장제가 국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이 맞서야 할 상대다. -p223

7. (자유토론)

언젠가 읽어보자, 읽어보자, 마음 속에 간직만 해두었던 책인데 이번 기회로 좋은 책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비록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나에겐 너무 어려운 책이었지만 인생, 특히 사랑에 대한 좋은 문구를 많이 접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첨언할 말은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구. 그 가벼운 마음이 너무 소중하다. 사랑은 은유라는 우연에서도, 평소보다 늦은 발걸음에서도 생길 수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언제 공격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프란츠의 사랑이란 언제 공격이 올지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랑은 나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굳이 가장 약한 속살을 내보일 필요는 없지만, 이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는 마음의 상태.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크리스티나 양이 메러디스 그레이를 표현할 때 사용한 표현이 있다. “내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만약에라도, 그렇다면 내가 가장 먼저 불러서 같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할 사람은 메러디스야.” 드라마 역사상 이만큼 사랑을 잘 표현해주는 문구가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멍한 상태에 빠뜨렸고 동시에 그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라고 그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의 무기력함에 구원받았다. 그의 무기력함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불능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인과관계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결정이 선택이고 선택은 포기라는 것이다. 그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결국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것은, 선택(이자 포기)을 외면한 도피성 낙원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Movie ref) 미스터 노바디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동정심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을까? 일생 동안? 한 달 동안? 딱 일주일만?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회귀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불확실한 선택에서 오는 확실한 불확실보다 이미 한번은 입증된(같은 결과리란 보장이 없음에도) 과거의 선택으로 회귀하는 것이 불확실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심리적으로나마 줄여주기에, 우리는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확실한 도전을 하는 건 더 큰 행복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테레자가 그의 친구 Z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그가 느낀 유일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다.

세상에 우연 아닌 결과나 우연 아닌 운명은 없다. 모든 것(물건, 생각, 행동, 현상까지도)은 그것이 비롯된 우연에 의하고, 그 우연도 우연에 의한다. 우연이라 칭해도 운명이고, 운명이라 칭해도 우연인 것이다. 그 둘이 같은데, 무엇이라 부르든 의미는 없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한 번(저자에 의하면 의미가 없다는 그 횟수)’이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없다. 과장의 신경통은 토마시의 삶과 상관 없으면서도 그의 인생의 끝자락까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자신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독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몸이 아니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 혹은 핵심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다.

문학의 핵심은 empathy다.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 상황에 공감하고, 기쁨에 공감하고 사랑에 공감하고 절망에 공감하는 것. 모든 위대한 문학의 의의는 그 공감에서 온다. 그 공감이 나와의 동일시에서 온다면 그것은 자아성찰일 것이고, 그 공감이 나와의 이질감에서 온다면 그것은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1부의 여운을 한 장 사이에 두고 저자는 나의 공감의 대상을 종이 위에 분해해서 펼쳐놓았다. 비록 그것이 채 한 문단이 되지 않는 길이였다고 해도, 저자는 순간적인 강렬한 이질감을 통해 비로소 이 글 너머에 있는 저자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했다.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그는 정중한 말투로 말했고, 테레자는 자신의 영혼이 그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그녀의 모든 정맥, 모세혈관, 모공을 통해 표면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가 뭐래도 운명을 믿는 낭만론자들에게 이는 드물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서로의 짝을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고요함 속에서 시끄럽게 외치는 나의 존재를.

* Movie ref) 팬텀 스레드

8월 마지막날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완독했다. 초반에 조금 달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지루하게 느껴져서 덮어두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심각해져셔 강제 집콕라이프를 하게 되기도 했고, 곧 서평 써야 할 날이 다가오는 기운(?) 을 느끼면서 책을 다시 펼쳤다. 이 책을 읽던 나의 모습은 부푼 기대 > 약간의 실망 > 다시 생긴 호기심 > 흠… > ?! 순서로 설명된다. 분명 완독은 했는데 어딘가 가려운 곳이 덜 긁힌 느낌이었다. 평소 책을 읽을 때 1회독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갖고는 하지만, 이 책은 뭔가 다른 느낌의 찝찝함(?) 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찝찝하다는 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각의 시선을 통한 서술이 꽤 흥미로웠다. 테레자, 토마시, 사비나, 그리고 프란츠까지 적어도 그 부분을 읽는 동안은 나는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침투하여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 예로 토마시가 테레자를 처음 만나 첫눈에 반하고, 한 줄기의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조금은 억지스러운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설레이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다가 사이사이에 툭툭 튀어나오는 작가의 생각들, 그리고 철학들을 읽어내는 은근한 재미도 있었다. 작가의 말들 중에서는 꽤 공감가는 문장들이 있어서 나올 때 마다 메모지에 한자 한자 눌러서 적어두었다.

아무도 모르는,

테레자의 솔직한 내면의 심리,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비참한 생각들이 가감없이 서술되어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들고있던 책 한 권이 상징하는 바, 신분 상승의 욕구, 술집에서 당한 수모로 인해 받은 수치스러움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늙은 토마시를 보며 느끼는 죄책감.. 처음부터 끝까지 테레자의 깊은 내면의 심리를 파헤치며 글을 읽어나갔다. 유년기에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깊게 자리잡힌 테레사는, 사랑 앞에 당당할 수 없었다. 토마시에게 솔직하게 불만을 말하고 싶은데, 바람피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가 떠나갈까봐 말하지 못하는 테레자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말하지는 못하지만 티를 내고 싶은 그녀의 유치한 행동들도 이해가 가며 안타까울 정도로 사랑에 목매는 테레자가 가여웠다. 그녀에게 토마시는 세상의 전부였다. 진짜 운명이건, 운명으로 가장한 우연이건,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나는 테레자에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라고, 당신은 토마시 없이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밖으로 꺼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피하고 싶은 선택의 순간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번째, 세번째, 혹은 네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A안과 B안이 있을때. 단 1 퍼센트라도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종종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노력들이, 결국 내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 조금이라도 나은 대안을 선택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선택을 해야하는 그 상황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으니까.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조금이나마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원하니까. 인간의 본성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A를 고르던, B를 고르던, 내가 한 선택에 대해 100퍼센트 만족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99퍼센트는 만족할 수 있겠지만, 1 퍼센트는 결국 후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의 후회가 항상은 남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이 선택에 관한 나의 평소 생각을 이끌어냈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것과 같이 가벼운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일까? 반대로, 베토벤이 말하는 필연적인 것, 무거운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토마시가 그동안의 바람을 정리하고 의사의 삶을 포기하며 테레자와 함께 무겁게 살아가는 것만이 옳은 선택일까? 보헤미아 귀족이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권 대사 두명을 내던져 버린게 과연잘 한 선택일까?

리허설 없는 인생이다. 우리에게 두번째, 세번째 인생은 없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완전한 선택이란 없다. 우리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뒤섞여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정답은 없다. 이분법적으로 정의할 수도 없다.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한번만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우리가 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내면에 축적되어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기준이 될 가능성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자. 뭘 더하자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인식하고 있으면 된다.

마무리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처럼 나도 혼란스러웠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이 지금 작성하고 있는 서평에 녹아있는 것 같다. 알쏭달쏭한 드라마를 한 편 본 것 같다.

한줄평

최소 5년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인상깊은 문구

  •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번째, 세번째, 혹은 네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 사비나의 삶이 음악이었다면, 중산모자는 그 악보의 모티프였다.
  •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것이다. 마치 한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사실 이런 고전소설을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번 달 지정도서로 이 책이 정해졌을 때, 오히려 책의 두께보다 이런 류의 책을 읽게 된 신선함에 더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사실 책의 1/3 가량 읽을 때 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어도 되는 고전소설이 맞나?’ 이런 생각을 했다. 조금은 불쾌하고, 내 머릿속으로는 이해 안되는 행동들이 꽤 있었다. 토마시의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태도, 사비나와 테레자의 관계, 프란츠의  전부인에 대한 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책이라고 꼽히는 책이었지만 내가 이해하기는 아직 조금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들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진리 속에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늘 우리는 군중, 대중 속에서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즉,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한다.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 속에서 살기’란 사적인 것과 공개적인 것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했다.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과 공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은 별개이며, 자신의 인생에 이를 깨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사비나에게 “목걸이가 흉측하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는 계속해서 거짓 속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부분을 통해 더 이상 그는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그의 부인에게 대놓고 상처를 주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그의 심정은 홀가분 이었을 것이다. 이후 프란츠는 사비나와 함께 하기 위해, 그의 부인과 이별을 했지만, 결국 사비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여기서 사비나는 그동안 그녀를 짓눌렀던 감정들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인생을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물론 정답도 없다. 하지만 단 한 번 뿐인 인생은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모순 속에 있기에 인생을 너무 무겁게만 대할 필요도 없는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람마다 각자의 사랑 방식이 있고, 각자가 살아가는 인생이 다르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책 속에서 토머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주인공들이 삶의 많은 변화를 통해 각자가 깨닫는 바가 다르 듯, 나 역시도 인생의 변화 속에서 수많은 변화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줄평: 연애세포가 살아날까 하는 부푼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나, 나에게는 심오하고 또 심오했다.

평점: ★★☆☆☆

한줄평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한 관계, 우울한 사회상이 어울어져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서평

실제로 이 책은 나에게 꽤나 재미있었다. 매우 속도감있게 전개가 이루어져 읽는데 집중하기도 용이했다. 하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책이다. 다른 멤버들은 인생의 책으로 꼽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고 뜻깊은 책이겠지만 나에게는 ‘아 무언가 있긴 한데 나는 모르겠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서평도 길지 않게 쓰려한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했던 부분까지만 써보려 한다.

수면 위의 행동은 수면 아래 감정을 나타내지 못한다.

토마시, 테라자, 사비나, 프란츠, 시몽, 카레닌 등 주인공들은 모두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소련의 공산화가 진행중인 동유럽을 배경으로 각 인물들은 매우 인상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들의 관계는 혼란이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글을 전개하며 작가는 각 인물 한명한명의 심리를 세밀히 묘사해준다. 특히 불륜이라 할 수 있는 관계에서 토마시가 가지는 태도, 사비나의 예술관을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묘사하는 기자에 대한 항의, 죽음 직전 법적 아내를 보는 눈빛에 대한 프란츠의 심정 등 다양한 장면에서 수면 아래 숨어있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람의 행동은 그 감정을 오롯이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정말 인상깊게 활용한다.

토마시

토마시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다. 그는 분명 배우자를 사랑한다. 그 스스로도 헷갈려하고 다른 여자를 습관적으로 만나기는 하지만 결국 그녀가 테레자에 가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사랑에는 육체적인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테레자와 그 사이와 같은 사랑의 형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뿐이다.

성공한 외과의사에서 정치세력에 찍혀 유리닦이, 트럭운전수로 지속적으로 그의 사회적 지위는 하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갈수록 더욱 안정되어간다. 그의 혼란은 사실 테레자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는데서 시작했다. 사랑을 의심하던 그는 지속적으로 다른 여자를 만나며 그 의심을 이어나갔지만 사회적 지위가 하강하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지면서 줄어들었으나 의심이 사라지진 않았다. 결국 시골에 가서 테레자와 카레닌을 묻으며 서로 간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안정을 찾게 된다.

토마시 이야기 중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매우 와닿았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통해 그는 공산화의 모순을 꼬집었고 당시 사회 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렸다. 그런 소신을 그는 끝까지 꺾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소 오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정말 생각지도 않게 나에게 이 책을 각인시켰다. 아마 10년 뒤 이 책을 떠올릴 때 나는 다른 이야기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는 아마 내가 소설 속에서 현실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대 대한민국에도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지만 스스로는 정의감에 불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디 그들이 더이상 부끄럽기 전에 오이디푸스의 과오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응당한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테레자

테레자는 시골소녀다. 사랑에 빠져 도시의 혼란에 몸을 던졌고 도시의 혼란이 점점 심해지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혼란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프라하에서 취리히에 가서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시골소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었으나 결국 그것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처음 도시에 나온 사랑하는 토마시마저 버리고 프라하로 돌아간다. 프라하에서도 그녀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돌아온 토마시와 함께 할 시간마저 없는 뒤바뀐 생활을 하게 된다.

토마시의 여성편력은 지속적으로 테레자를 괴롭혔고 그러한 토마시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여자의 냄새를 배고 온 토마시에 대해서도 그녀는 말 한번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국 정말 시골 소녀였던 것이다. 시골소녀가 자신의 소중한 것 하나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는 것과 같이 자신의 사랑인 토마시가 정말로 떠날까 두려워 혼란에 빠진 것이다. 결국 테레자는 시골에 돌아가서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다. 카레닌과 함께 소를 치면서 좋아하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그녀는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카레닌의 죽음을 통해 토마시와의 관계를 재발견하고 춤을 추러 가는 장면은 그를 무엇보다 확실히 보여준다.

사비나

소설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작가의 작품관을 표현하는 듯한 사비나의 예술관이었다.

사비나는 배신이 목표인 여자였다. 프란츠에게 사비나의 배신은 그녀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정도이다. 그녀의 그러한 배신은 처음에는 모든 것에 대하여였다. 조국을 도망나온 뒤 조국을 침략한 세력에 관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끝에 가서 사비나는 그녀의 배신은 키치에 대한 배신이라 했다. 사실 아직 키치가 어떤 것인가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나름 짐작으로는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 좋다고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은 불행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보통의 관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삶은 극적이게도 그가 바란 키치에 둘러싸여 끝나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가 상류층으로 그녀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가식적인 문화에 스며들어가는 것으로 그녀는 살아가게 된다. 이런 그녀의 삶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부정하려하지만 이미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프란츠

프란츠는 엄친아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없는 것을 동경했고 그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진흙탕으로 뛰어들어갔다. 예쁜 부인, 안정적인 직업, 소득, 사회적 지위를 다 버리고 사비나라는 자신과 전혀다른 존재를 추구하며 새로운 자신을 찾으려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그러한 시도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가 믿었던 대장정은 결국 허구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죽음을 맞게된다. 대장정은 허울뿐이었고 어떠한 사람도 대장정에 진심인 사람은 없었다. 단지 구호만을 외치고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운동일 뿐 실제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모순을 죽음으로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를 비롯한 현대에도 여전히 진행중이 대장정의 모순과 위선을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가 프란츠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후 그의 의사와는 상반되게 그는 결국 자신이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은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사비나가 배신했던 곳이다.

시몽

토마시의 아들이라는 시몽은 매우 신기한 캐릭터다. 마지막에 가서는 겉으로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안정을 찾은 것 같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동경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 아버지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고 아버지를 신성시하며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기자를 도우며 사회운동을 했고 아버지의 사회운동에 대한 미참여를 보고 사회운동에 대한 혼란을 느끼며 결국 사회운동을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며 살게된다.

시골에 가서 살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상상에 기반하여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 어찌보면 시몽은 너무나 이해가 되는 캐릭터이다. 어린 사람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부풀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시몽은 인물 중 사비나와 함께 살아남는다. 이를 그가 젊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시몽은 진정한 안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시골로 돌아간 토마시-테레자와 달리 시골에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찾으려 했기에 그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였다. 사비나 또한 모순된 일상 속에서 혼란을 여전히 겪고 있었다.

카레닌

개인적으로 카레닌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동물보다 못하다. 동물보다 복잡하지만 결국은 동물과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멀리 돌아오는 존재이다. 개의 삶은 인간보다 훨씬 짧다. 짧은 카레닌의 삶은 단순히 반려견이라기 보다는 모든 주인공의 삶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계인이 본다면 우리의 삶 또한 매우 짧을 것인데 왜 우리가 개와 다른가. 창세기 구절로 시작한 챕터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지우며 인간과 개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결국 모든 주인공들이 매우 혼란스러운 일생을 살아왔지만 카레닌과 같이 안정을 추구한다. 카레닌은 극 중 초반부터 안정된 상태로 그 상황에 적응하여 살아왔지만 극 중 인물들은 매우 복잡한 삶을 살다가 결국 카레닌과 같은 안정을 찾고 곧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개와 사람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동일한 목적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이다.

주인공들은 정말 말도안되게 커다란 혼란을 고민한다. 키치에 대한 배신이 그러하고 대장정에 대한 회의가 그러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본질, 사회의 본질과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 모두 거대한 혼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의 끝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조그만 카레닌과 같다. 삶의 모습이 어떤 방식이든 그 사람이 추구한 이상이 무엇이든 결론은 사과 나무 아래 네모난 흙더미가 그의 마지막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정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것 같다. 결국 어떤 사람이든 같은 모습으로 끝이 나기에, 끝에 가서야 이를 깨닫는 존재이기에 그러한 거 같다.

그럼에도 사람은 위대하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명예를 쌓아도 이는 말일 뿐 끝을 바꿔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나누며 전해왔다. 그 결과가 이 세상이다. 21세기의 발전한 문명이 그 증명이다. 물론 여전히 혼란스럽고 갈등하며 결론을 못 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진 않는다. 한 개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혼란은 전해지고 발전한다. 그것은 위대한 것이다. 유한한 삶에서 영원한 혼란을 낳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잊혀질지 몰라도 어떠한 과거의 가벼운 존재가 떠올린 생각, 혼란은 남아 세상에 전해진다. 그렇기에 인간은 개와 다르고 가벼운 존재지만 동시에 위대한 존재가 된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5-6년 전이다. 당시 참여 중이던 독서모임의 발제도서였고, 항상 그래왔듯 다소 억지로 읽어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처음 책을 구입하면서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가끔 헷갈리는, 그 당시의 최대 궁금증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까?

말장난일지도 모르지만, 책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어느 하나라고 단정 짓지 않아도 무방하지 않나싶다. 만약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라면 그때 이미 천재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 틀림없다. 그 당시에는 독서량도 지금처럼 안정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거 자체가 곤욕이었기 때문에 어떤 책이든 읽기 어려웠던 터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모임 날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테레자, 토마시 등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하면서 결국에는 우리의 삶과 사랑으로 대화가 흘러갔던 것 같다. 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까지 읽은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나는 분명 어떠한 지적호기심이나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번 지정도서로 결정되고, 오랜만에 낡은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서 첫 장을 넘겼을 때 스쳐 지나간 그때의 감상을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스스로를 상처 많고 여린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이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자존감 낮은 피해망상자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였다. 아마 5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좁은 시야와 단호한 자기주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나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1년의 1권의 책을 읽을까말까 하다가 우연을 계기로 독서를 습관화하면서 매년 꾸준하게 어느 정도의 독서량을 유지하게 된 후에는 소설, 수필, 고전문학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판단하건데, 정독보다는 속독을 추구하고, 옛날 문체가 잘 읽지 않는 나에게 이런 책들은 젬병이었고, 그것은 내공의 부족이고 내가 ‘멋’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이나 취미생활보다는 ‘지적호기심’을 채우는 수단이고, 공부의 일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도서의 대부분은 경제경영, 인문사회, 창업투자 혹은 재테크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며, 최신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베스트셀러를 탐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잠시 머리를 쉬어가는 여정이자, 보다 흥미로운 책이기를 바랬다. 물론 두 번째 독서였지만, 그래서 더 재미없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이 책을 펼쳐놓고 다른 책을 읽었을까.

인류가 사랑한 작가와 세계가 인정하는 고전문학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작가의 특유의 문체와 현대의 드라마 같은 사건구조로 우리의 삶과 ‘사랑’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사랑은 유치하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들은 불편하면서도 유치하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흠칫 놀라면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책에 메모들이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나는 책에 생각을 정리하거나, 혼자만의 질문들을 적어놓곤 했는데 지금 보니 웃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마시’를 ‘테레자’를 대입하면서 읽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주인공들의 상황과 생각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려고 한 노력들이 엿보이며 동시에 치를 떠는 부분들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러쿵저러쿵해도 나의 그때의 연애와 그이후의 연애사에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얼마 전 팟캐스트를 듣다가, 스타트업과 흥미로운 아이디어제품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자신의 운동기록을 피드할 수 있는 스마트헬스케어제품에 대해 진행자가 인간의 돈과 시간은 대부분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쓰이는 것’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며, 그런 점에서 ‘나를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와 같은 질문이나, ‘내가 하반신불구가 되어도 내 옆에서 변함없이 사랑할거야?’라거나 ‘재벌3세 미녀가 대시를 해도 흔들리지 않을거야?’와 같은 질문은 필시 질문 그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욕구가 표출된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내가 그런 질문을 너무 공대생적인 마인드로 대처했기 때문에 사소한 언쟁과 다툼이 있었고, 아직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선한 거짓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욕구가 표출된 장면들이 여럿 있었는데, 결국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욕구들은 결국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생존’을 위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만들어낸 집념일까?

진화심리학에는 ‘자살’을
번식과 진화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도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보는 ‘견해’가 존재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테레자는 끊임없이 토마시의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확인받고 싶어하고, 토마시는 그런 테레자를 부담스러워하고, 버거워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망하고 그녀에게 되돌아간다. 전반적으로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바라는 수동적인 존재이면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고 보살피지만 상대방에게서 모성애적인 사랑을 바라는 것처럼.. (마치 남자는배 여자는항구?와 같이) 묘사되었다고 느꼈는데 그러한 시각이 불편하면서도, 시대적 상황과 주인공의 특색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을 또 한 번 읽으면서 든 확인한 생각은 인연, 운명적인 사랑은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도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과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어 하고, 상대방에게서 나의 존재와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 어느 정도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점 그리고,

‘결국 자존감과 자기이해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된다는 점’

– 인상깊은 글귀 –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미 추억이 된 그시점이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대답 없는 질문들이란 바로, 인간 가능성의 한계를 표시하고 우리 존재에 경계선을 긋는 행위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약 7시간을 무척 아깝게 느끼는 것을 밝힌다.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로 이 책을 펼쳤지만, 이 책을 덮은 지금도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내 귀한 7시간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7시간 동안 뭔가 얻어야만 했다. 이게 내 독서 방식이고, 내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7시간 동안 이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 글을 왜 썼는지 하물며 왜 이 책이 4판 15쇄까지 찍혔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분명한 것은, 내 서평을 읽으면 내가 왜 이 책에 별점 0점을 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거다.

독서 방법론

지금껏 내 블로그에 200개 가까운 서평을 썼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추구하는 독서, 독서 방법론에 관해 논할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또한, 독서에 관한 취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내 관점에서 이 책은 책이 아니다. 내게 책이란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만 한다. 또한 그 정보는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하고, 내 삶과 닿아야 한다. 정보 전달, 내가 원하는 정보, 내 삶과 닿아야 하는 등 이 3가지 관점 중 이 책은 그 무엇도 갖추지 못했다.

첫 번째, 정보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주인공이 각자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정보라면, 내가 생각하는 정보와 개념이 다르다. 주인공이 겪는 사상 전쟁에서의 갈등이 정보라면, 글쎄. 이는 내가 생각하는 책의 관점 중 두 번째에 해당하겠다. 현재로서는 관심이 없다.

2개 정보 외 다른 것이 숨어있다면, 내 문해력이 부족한 탓이겠다. 내 문해력을 탓하면 된다. 나는 내 문해력을 탓하는 만큼 작가의 필력을 탓하겠다.

두 번째, 내가 원하는 정보다. 이 책은 공산주의 사상 전쟁이 나오는 시대로 내 시대와 거리가 멀다. 이는 내 세 번째 개념과도 일치하는데, 내 삶과 닿지 않는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정보도 아니다.

주인공의 방탕한 삶은 그다지 내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여자 200명과 잤으며, 매일 저녁 머리카락에 스며든 다른 여자 성기 냄새를 부인이 맡게 한다는 것 자체는 도저히 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라 평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내 삶에 1cm도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인물이다.

세 번째, 내 삶과 닿아야 하는 것. 체코 전쟁, 주인공 4명의 사랑 이야기 등에서 내 삶에 뭘 엮어야 할지 모르겠다. 작가는 독자에게 뭘 원했을까?

내 독서 관점 중 가장 큰 것은 정보 전달이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고, 때문에 이 책은 내게 책이 아니다.

타인에 관한 관심

나는 이 책을 책이라 생각지 않는다. 때문에 별점을 0개 부여한다.

하지만, 책이 아닌 어떤 글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느낀 것을 말해보겠다. 타인에 관한 내 관심이다.

나는 술자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굳이 듣고 싶지 않은 타인의 필터 없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술기운을 빌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거나, 속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하거나, 술 취해서 그랬다며 방패를 만드는 굉장히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술자리를 이런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내 삶에서 추방한다.

또한, 내 시간을 안주 삼는 것을 혐오한다. 그저 넋두리를 늘어놓는 거라면 나를 찾지 않길 바란다. 나는 타인의 넋두리를 듣고 싶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이란 내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 생각하는 내 사람을 제외한 모두다.

나는 많은 이와 어울리지만, 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빠듯하다. 이는 그들이 덜 중요해서기 보다는, 더 중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명확하고, 내 능력이 미천하기에 그 범위를 한정한다.

늘 부족함을 느끼고, 시간에 허덕이는 내게 하찮은 넋두리 따위로 내 시간을 안주 삼는 것을 혐오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은 내 삶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편이다.

나는 철저히 내게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것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내 범위를 한정한다. 그 범위에 있는 타인에게만 한정된 관심을 둔다. 다시 말하지만, 내게는 더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것 그리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니 이 글은. 내게 넋두리를 늘어놨고, 나를 술안주 삼았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혐오한다.

내가 학창 시절 공부를 못했던 이유

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느낀 적은 드물었고, 딱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게 내가 어떤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충분한데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왜 학창 시절 공부를 못 했는지, 아니 안 했는지 느꼈다. 나는 이런 게 재미가 없다. 또한, 나는 재미가 없으면 하고 싶지 않다. 난 학창 시절에 내가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나를 학창 시절로 돌려놨다. 매일 아침, 이 글을 읽으며 시간이 아까웠다.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어떤 등장인물의 불륜 이야기를 내가 왜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불륜 대상을 사랑한다며, 잡아두는 인물은 더 한심했다.

이런 한심스러운 삶을 아침마다 읽는 것은 굉장한 곤욕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모임에서 정한 지정도서이기에 억지로 읽긴 했다만, 아마 학창 시절 과제였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류 이야기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일까?

마무리

이 책이 많이 읽힌다는 사실을 들었다. 영화화가 되기도 했고, 우리 모임에서 이 책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작가도 유명하다.

책을 다 읽고 그동안의 7시간이 아까워 유튜브에서 책 해설을 찾아 틀었다. 1분 정도 보다가 껐다. 이 책이 이해되버릴까 두려워서다. 7시간을 할애해 읽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고작 10분 영상으로 이해한다면, 내 문해력에 자괴감이 들 것 같았다.

책 속 주인공 4명이 각자 인생을 살았듯, 나도 내 인생을 살련다. 내 인생에 한동안 이런 류 글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으며 음미하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어림없다.

다음 주 STEW 독서소모임에서 부디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한줄평 ☆☆☆☆☆

3류 아침 막장 불륜 드라마.

인상 깊은 문구

  •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 인간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이름을 붙이고 난 후부터 육체에 덜 불안해했다. 또한 이제는 영혼이란 뇌의 피질부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 독학자와 학교에 다닌 사람의 차이 점은 지식 폭이 아니라 생명력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정도 차이다.
  • 앞은 파악할 수 없는 거짓이었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 그들이 만난 직후 처음 호감을 드러낸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는 미남이며 학계에서도 출세가도의 정상에 서 있어서 심지어 전문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그가 보여 주었던 고차원 지식과 자기주장은 동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그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매일 되풀이 해야만 할까?
  •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100만 분의 1의 상이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오로지 섹스에서뿐이다. 왜냐하면 섹스란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복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을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참을 수 없다는 말을 아끼게 된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설정한 미덕 중 하나가 참을성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공존한다. 서로 다른, 모든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규율을 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참기만 하고 살겠는가?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분출하는 과정이 있기에 인간이 인간적이다.

이 책은 프라하의 봄, 소련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외치던 체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체제의 억압 속에서 모든 열망을 참으면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기에 주인공들의 철학적 고뇌는 더욱 진지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영원성이라는 무거움과 일회성이라는 가벼움 사이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지는 않았다. 인간과 역사의 모든 순간은 일회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에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4명의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갈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상황이기에, 조금은 과장되고 민망한 이야기가 많음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야만 한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래야만 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어떤 무거움으로 인해 인생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항상 고뇌한다.

토마시의 연인인 테레자는 사랑과 육체의 대상은 동일해야 한다는 Muss es sein을 인생의 당연함으로 생각하기에,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연인 토마시의 외도 행위로 인해 괴로움 속에 살다가 도망친다. 그리고 토마시의 사회적 추락으로 인해 시골의 트럭 운전사가 되는 과정에서 평안함을 느끼면서도 자책한다.

프란츠는 고리타분한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온 지식인이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 정조를 으뜸의 덕목으로 생각해왔고, 부인에 대한 존중은 여자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부인에게 내재한 여자, 즉 어머니였다. 하지만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사비나를 만나면서 배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무거움과의 배신을 택한다.

내 삶 또한, 나를 위해 살아가자 생각했지만, 결국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사회가 이상적으로 만든 이미지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이미지의 말과 행동을 하며,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내 안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일을 한다.

그렇다고 이런 무거움에 허덕이며 살지는 않는다. 무거움이 있기에 가벼움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표면적으로는 존재의 무거움이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시간이 있다. 나 또한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정신이 가벼워지는 행위를 한다. 이 밸런스가 있기에 자아는 성숙해지는 것 같다.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Muss es sein과 반대되는, 존재의 가벼움을 표현하는 문장이다. 인간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행동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은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

토마시는 외과 의사의 Muss es sein인, 사물의 표면을 열고 들여다보는 행위를 넘어서고 싶어 했고, 그 욕망이 사랑과 육체적 관계를 별개로 생각하게 하여 수많은 여자에 대한 육체적 탐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곁에 있는 한 여자 테레자에게 Muss es sein을 느낀다.

사비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살았다. 그랬기에 사비나에게는 배신, 즉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불렀고 이 끝나지 않는 배신 끝에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가장 완벽한 연인이었던 프란츠 또한 배신한 사비나에게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N극과 S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랑하면서 행복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괴롭다. 이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단어는 인간이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게 하는, 삶에 대한 의지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간은, 연인은 서로를 밀고 당기는 자석과 같다. 자석은 같은 극은 서로를 밀어내지만 다른 극은 서로를 당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봤을 때, 사랑이 실패하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싸우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나에게 없는 모습을 가진 누군가이다.

이 책에서 토레시와 테레자 / 사비나와 프란츠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와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을 욕망하지만, 다르기에 괴로워한다. 이 모순이 사랑의 매력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도 같은 논리인 것 같다. 무거움은 가벼움을 갈망하고, 가벼움은 무거움을 원한다.

책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존재라는 단어 자체는 무거움을 뜻하고, 참을 수 없다는 말은 두 단어 무거움과 가벼움은 서로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뜻 아닐까?

리허설뿐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리허설뿐인 한 편의 연극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하고, 연극은 계속 이어져야 하기에 또다시 나아간다. 리허설이기에 인생의 무의미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연극보다는, 리허설이 주는 실패 속의 깨달음, 피와 땀이 주는 쾌감, 가벼움 속의 무거움, 무거움 속의 가벼움이 주는 시간 또한 아름다운 것 같다. 끊이지 않는 다음 리허설을 위해.

참을 수 없이 어렵지만,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책

인상 깊은 문구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Ja, es muss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 p13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 p17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p28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 p87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재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 p93

꿈은 커뮤니케이션일 뿐 아니라 미학적 활동, 상상력의 유희이며, 이 유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하는 것, 없는 것을 희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다 – p105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34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 p143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브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p152

첫 번째 배신은 그 연쇄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들을 야기하며,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 p157

이 어둠은 우리들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성이다… 사비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아 자기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어둠은 무한성이 아니라 다만 그녀가 보는 것과의 불화,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 보는 것의 거부만을 의미했다 – p161

삶이 잔인했기에 공동묘지에는 항상 평화가 감돌았다 – p174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해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 p187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p202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 p226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17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토마시는 이 100만 분의 1을 발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으며, 그의 눈엔 이것이 바로 그의 여자 집착증이 지닌 의미였다… 따라서 그를 여자 사냥에 내모는 것은 관능의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정복(지상에 머무는 육체를 메스로 개봉하고자 하는)하려는 욕망이었다. – p321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 p358

그는 자신이 언제라도 행복의 집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언제라도 꿈속 젊은 여자와 함께 사는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떠나 테레자, 그로테스크한 여섯 우연에서 태어난 그 여자와 함께 떠나기 위해 자기 사랑의 “es muss sein!”을 배신할 것을 알았다 – p385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부른다 – p399

테레자의 꿈은 키치의 진정한 기능을 고발한다. 키치는 죽음을 은폐하는 병풍이다 – p410

그녀는 이 노래에 감동하지만 자신의 감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노래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 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p415

키치의 원천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다… 정치 운동은 합리적 태도에 근거하지 않고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들에 근거하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정치적 키치를 형성하다… 좌익인사를 좌익 인사답게 만드는 것은 이런저런 이론이 아니라 어떤 이론이라도 대장정이라 불리는 키치 속에 통합하는 능력인 것이다 – p417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p439

잊히기 전에 우리는 키치로 변할 것이다.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 p455

사람들에게는 힘 있는 자들 중에서 범인을 찾고 약한 사람들 속에서 무고한 희생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 테레자의 약함은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아 그녀 품에서 토끼로 변할 때까지 매번 그에게 타협을 강요했던 공격적인 약함이었다. – p502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승픔의 공간을 채웠다. – p506

2020년 9월 지정도서

  1. 일시 : 2020년 9월 6일 오전 10시
  2. 장소 : 강남역 스터디 카페
  3. 도서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4. 저자 : 밀란 쿤데라
  5. 발제자 : 고대승

(Brainstorming) 이 책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명언이다. 가장 공감됐던 문장과 그 이유는?

1. (감정이입) 토마시 / 테레자 / 사비나 / 프란츠 / 기타 중 가장 공감 했던 등장인물 또는 가장 이해가 안 됐던 등장인물은? 그리고 여러분이 그 등장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2. (Muss es Sein vs Einmal ist keinmal) “그래야만 한다” vs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고뇌이다. 책에 나오는 위의 문장이 전자는 무거움을, 후자는 가벼움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하나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문장에 기울게 되는가?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3. (존재의 가벼움) 책의 주인공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길을 만들어나갔다. 우리 또한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낸 무거움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할 때가 있다. 여러분이 충동적으로 느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엇인가?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17

3. (키치) 책에 자주 등장하는키치라는 단어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단어이다. 여러분이 이해한키치 의미는 무엇이며, 여러분은 어떤키치 가지고 있는가?

키치(Kitsch)의 사전적 용어: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 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p415

4. (시선) 439p에서 저자는 우리는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인간을 범주로 나누었다. 자신은 어떤 범주에 속하며, 이로 인해 행복할 때와 행복하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다면 자신이 생각한 자신의 범주는 무엇인가?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무엇도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 군중을 염두해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p187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p439

5. (자유 토론) 

요새 코로나19 덕에 경제가 요동쳐서인지 주식 시장에 자꾸 눈이 갑니다. 목돈 마련을 위한 적금 만기도 아직 몇 달이나 남았는데 말이죠.

그러던 중 의대 친구 놈이 열심히 주식 공부를 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예전엔 막연히 돈벌이가 되기 전까진 열심히 커리어나 쌓자 싶었었는데… 그 바쁘다는 의대를 다니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엄청난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한테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하나 문의를 하게 되었는데요. 일반적인 주식 공부 책이 아닌 엄청 얇은 한 블로거의 책을 추천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경제 블로거 오박사님이 쓴 <자본주의 생존 공략집>이었습니다.

오박사님의 유튜브 채널입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포괄적으로 공유하는 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실질적인 주식 부분이 짧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 뻔했는데요. 마지막엔 오히려 더 본질적인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살아남기 위한 기술적인 접근보다는 올바른 마인드셋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몇몇 좋았던 부분을 같이 공유해볼까 합니다.


주변이 아닌 핵심을 봐라

제 학부 전공은 경제였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거시 경제에 더 관심이 많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주식 공부를 처음 마음먹었을 때부터도 으레 큰 그림부터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가령 한 업체를 분석하기보다 그 전체 산업, 혹은 더 크게는 그 국가를 봤던 것이죠.

지금도 와레버스라는 블로그를 좋은 분들과 운영하면서, 경제 전반에 관한 공부는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박사님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시더라고요. 시장 상황, 경제 상황보다 투자하려는 기업, 그 자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주식 투자를 함에 있어 매일매일 시장 상황을 체크하는 것도 참 에너지 빠지는 작업 같습니다. 그냥 간단히 체크하면 되는데, 솔직히 요새 보면 하나같이 대한민국에 거시 경제 전문가들이 너무 많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오박사

주식에서는 좋은 주식이라면 실적이 계속 좋아지기 때문에 거시 경제랑 크게 상관없이 가므로 장기 투자적으로 거시 무시

오박사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 뉴스 수십 개를 확인하고 큐레이션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녔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이 정보가 산업에 어떤 파급효과를 거둘지는 제가 아닌 전문가라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1일 1큐레이션 도전하고 있는 와레버스

물론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건 제가 좋아서 계속하겠지만서도 이것 때문에 투자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기업에 소홀했던 제 모습에 반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팔 물건이 아니라면 오늘 바로 이 시점의 현재 가격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품질이겠지요.

오박사

기업이 어떤 상품을 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투자는 정말 위험합니다. 심지어 그 잘나간다는 IT업계도 승자와 패자가 있는 마당에, 산업이 좋다고 무작정 돈을 넣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제 돈이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읽길 잘했다…라고 생각한 첫 번째 “A-ha Moment”였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 주식, 부동산, 사업

자본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자본주의가 뻗치지 못한 곳이 전 세계에 거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이념입니다. 세계적인 학자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자본주의를 종교에 비유하기 까지 할 정도입니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인도해야 할 초자연적 질서와 불편의 법칙을 믿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유발 하라리
언제나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를 놀랍게 만드는 유발 하라리

다만 자본주의는 가격과 시장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데요. 시장에서 도태한 사람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정글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무기를 골라야겠죠. 오박사님이 말한 자본주의에서의 무기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저는 일찍이 자본주의 시스템상에서 태어났으면 주식/부동산/사업 중에서 한 가지 주무기를 정해야 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박사

실제로 제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3가지를 다 커버하고 있었습니다. 경제 공부하면서 주식이라는 무기를 제련하고 있고요. 법무법인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부동산이 주력 상품인 P2P 대출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 콘텐츠 사업을 하겠다며 블로그 키우기에도 여념이 없습니다.

워낙에 나무처럼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은 저였기에 이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정글에서 스위스 나이프처럼 용도가 다양한 도구가 유용하듯 말입니다.

하지만 오박사님이 지적하신 대로 하나의 주무기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3개 다 동시에 도전하려고 보니, 이거 학교 다시 시작했다가는 스케줄 관리가 힘들어지겠다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도 뭐에 먼저 집중해서 마스터를 할지에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우유부단한 성격 덕에 아직까지 정하지 못하겠지만, 오박사님이 예지력이 있으신지 여기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에 집중해서 사회로부터 얻는 결과물을 극대화해야 합니다(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보상은 돈이겠죠.)

오박사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들의 성공을 인정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첫 번째겠고요. 두 번째로는 내가 바로 그 ‘원래 강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오박사

아직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 비교우위는 어떤 영역인지 모르는 것이 함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블로그를 채워나가다 보면 그걸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요?


마무리

이외에도 자본주의에서 가지고 있을 유용할 팁과 마인드셋으로 책이 꽉꽉 차 있었습니다. 특히 글의 흐름상 서평에는 비중 있게 다루기를 포기했지만,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었던 “애자일 경영” 부분은 거의 챕터 통째로 밑줄 칠 정도로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빠른 피드백의 힘을 알게 되어 그런가 봐요. 하루, 아니 심지어 한 포스팅에서도 꾸준한 실험을 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절반 이상을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좋았습니다. 워낙 글을 잘 쓰시는 분이 핵심만을 딱딱 던져주시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요.

오박사님을 몰랐지만, 이 책을 계기로 오히려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요. 써왔던 글이 벌써 1,800개가 넘으셨더라고요. 그 짬을 보면서 블로그 측면에서나 투자 측면에서나 좋은 롤모델을 찾은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인상 깊었던 문구

  • “사람들이 원하는 걸 팔아야 하는구나.”
  • ‘금융’과 ‘투자’ 분야에 대해서는 나이와 축적 간의 상관관계가 그다지 강하지 않은 듯합니다. 어리고 젊더라도 반복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금융과 투자 분야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레벨 이후에는 성실성보다는 자본주의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일의 종류는 불법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 차라리 그 20대 초반 때부터 경쟁이 없고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곳에 먼저 들어가서 선점을 하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고는 합니다.
  • 사업 혹은 투자로 결국 돈을 벌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사업과 투자에 대한 공부, 사색, 안목이 아니라 일 잘하는 법부터 배워야 함
  • 자본도 없고 아이템도 없고 그렇다고 투자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거나 훌륭한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 저는 왜 유튜브 오박사TV에서 영상마다 ‘자본’을 외치는 걸까요. 이 말은 단순히 돈을 벌자가 아니라, 곧 우리들의 시간을 확보하고 지키자는 뜻입니다. 그 확보한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쓰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데 쓰는 것이죠.
  • 일단 일을 잘해서 사회로부터 얻은 대가, 즉 몸값을 높이고 꾸준하게 현금 흐름을 발생시키는 사람만이 투자할 자격이 생기게 됩니다.
  • 하나라도 제대로 파고들어 가면 모든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한번 마음먹고 시도한 일이라면 극한을 맛보고 결국 성과를 얻어야 합니다.
  • 저는 일찍이 자본주의 시스템상에서 태어났으면 주식/부동산/사업 중에서 한 가지 주무기를 정해야 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본인의 상황을 냉철하게 잘 분석해서 세운 목표치에 맞게 매월 나가는 고정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존 초기의 기본 스킬입니다.
  • 현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금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당연한 자본주의의 생존 방식이다.
  • 누군가의 메시지 정리
    • 1. 공부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 2. 이젠 바뀌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 세상
    • 3. 모든 것은 경험이고 실패하더라도 젊었을 때의 실패는 나에게 밑거름이 된다.
    • 4. 무엇인가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친구들이 많다.
    • 5. 공부의 부족, 경험의 부족
    • 6. 자산 증가에 방해되는 습관들은 버리기로 했다. 자산 증가에 방해가 안 되는 취미들을 즐기려 하고 있다.
    • 7. 1가구 1주택에서는 내 집 거주 안정성이라는 무형의 가치 때문에 거시 경제 무시해라
    • 8. 거시 경제 예측하려는 분들도 많고 무시하려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예측보다 무시가 맞는 것 같다.
    • 9. 주식에서는 좋은 주식이라면 실적이 계속 좋아지기 때문에 거시 경제랑 크게 상관없이 가므로 장기 투자적으로 거시 무시
    • 10. 자기 돈을 지키면서 종잣돈을 모으는 느낌, 소비하지 않으려는 억제, 소액으로라도 투자의 경험,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기 위한 여기저기 발품 등 이 모든 것이 경험이다.
  • 사람 역시 주식처럼 최소 5년~10년 흐름을 봐야 합니다. 이분은 제가 처음 본 2009년 말~2010년 당시부터 뭔가 언행을 일치시키는 삶을 결과적으로는 계속 살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는 초기값과 그 이후 펼쳐지는 첫 나비 효과가 시간이 흐르며 점점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 지금 당장 팔 물건이 아니라면 오늘 바로 이 시점의 현재 가격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품질이겠지요.
  • 한국의 주식 시장은 기본적으로 메인 미드필더들이 경기 순환주들이라 난이도가 높은 시장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무리하지 않고 꾸준하게 힘을 모아야”하는 것입니다.
  • 주식 투자를 함에 있어 매일매일 시장 상황을 체크하는 것도 참 에너지 빠지는 작업 같습니다. 그냥 간단히 체크하면 되는데, 솔직히 요새 보면 하나같이 대한민국에 거시 경제 전문가들이 너무 많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계속 발전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생태계란 1)투자 공부/기록 프로세스일 수도 있고 2)인적 네트워크일 수도 있으며 3)유튜브/블로그 구독 리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 당신이 투자하려는 그 주식/부동산의 제일 중요한 투자 사유는 무엇입니까?
  • 영업 활동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를 계속 기록하는 회사보다는 꾸준히 양의 영업 활동 현금 흐름을 기록하는 회사를 찾으세요. 왜냐하면 돈을 받고 일하느냐, 일하고 돈 받느냐 이건 꽤 큰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 중요한 것은 ‘미리미리’ 해당 자산에 대한 계산과 조사를 미리 잘 계산을 하여 견적을 잘 잡아놓는 것이다. 애초에 투자에 적절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 아무도 저점을 알 수 없기에 저희는 주식을 살 때 철저하게 ‘분할’로 나누어 사야 됩니다.
  • 빅3 중소형 주의 매도는 마치 토트넘 구단주가 ‘손흥민, 루카스 모라, 델리알리’가 잘하고 있는데 다소 몸값이 비싸졌다고 해서 다름 팀에 이적시킨 꼴이죠.
  • 우리는 각자가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에 집중해서 사회로부터 얻는 결과물을 극대화해야 합니다(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보상은 돈이겠죠.)
  •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들의 성공을 인정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첫 번째겠고요. 두 번째로는 내가 바로 그 ‘원래 강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 체면을 중요시하는 것의 문제점은 바로 유연해지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 한 번에 빅픽처를 그리기 힘든 사회로 가고 있으니 그래서 짧은 주기의 반복 실행을 통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펴야 합니다.
  • 왜냐하면 금융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변화가 극심해졌습니다.
  • 일단 작게 시작하고 계속 상황을 주시하며 때로는 새 시나리오를 적용해 가면서 결과를 최적의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