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에픽하이 <빈 차>
지금도 종종 듣는 에픽하이의 <빈 차>의 일부분이다. 나는 입시에 시달리던 그때, 항상 이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했었다.
그 당시 삶은 마치 쳇바퀴를 도는 쥐와 같았다. 학교, 스터디, 직장 사이를 오가며, 반복되는 나날들을 보내왔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이 들 때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 이 고생을 하나’하는 회의감이 강하게 나를 짓눌렀다.
회의감으로 의욕을 잃어서였을까. 내 입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지금 나는 늦은 나이에 군 복무를 수행하고 있다. 모든 것을 실패하고 난 후, 논산훈련소로 들어가던 그 첫날은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괴로운 기억이다.
그런데 만약 그때 내가 이 책을 접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아갔을까 하는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일본 경영계의 전설, 이나모리 가즈오가 집필한 <왜 일하는가>이다.
3년 전의 실패, 나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이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던 이유를 알기 위해선 내 지난 3년간의 기록을 복기해야 한다. 내 과오를 들추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이렇게 작성하고 기억해야만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기에 짧게나마 써보려 한다.
때는 2018년 6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한국에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우리나라와 해외의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땐 언제고, 나는 로스쿨에 들어가기도 전에 회의감에 빠졌었다. 부동산 가격은 물론이고 팬데믹 이후로는 주식 가격까지 미친 듯이 뛰면서 여기저기 돈을 버는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워낙 그 속도가 빠르니 노동 수익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리 변호사라는 일이 보람찰 수 있지만, 일단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기에,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갑자기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 과정이 예상보다도 더 치열했기에 나는 빠르게 지쳐만 갔다. 이러다 보니 로스쿨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이면 더 많은 부를 누리지 않을까라는 질문까지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이나모리가 머릿말에서 이야기한 일본 청년의 모습과 유사했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경시한다. 죽을 힘을 다해 일하기보다는 주식 투자처럼 편하게 돈 버는 삶을 동경하거나, 하루 빨리 벤처기업을 세워 상장한 후 일확천금을 거머쥐고서 이른 나이에 은퇴해 여유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한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목표한 바에 전념을 다 해도 모자란 판에 내가 하려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급격히 떨어졌으니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나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또 그는 나에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알려주었다. 두 가지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었다.
“다 먹고 살라고 하는 거지”를 외치던 나에게…
자본주의에서 사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거지!”라는 말이 쉽게 들린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하나기도 했다.
그렇기에 돈벌이를 위한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일의 의미가 필요하다. 그런 중요한 고민이었음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일의 본질에 대해 엄청 깊게 질문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를 마냥 미뤘었다. 잠도 4시간, 5시간 겨우 자는데 무슨 고민할 시간이 있겠는가.
하지만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생애 동안 인간은 평균 90,00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 인생의 1/3에 가까운 엄청난 시간이다. 분명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지만, 인생의 30%를 단순히 돈을 벌 목적으로 보낸다면 그런 인생은 얼마나 아쉬울까.
또 돈벌이로서 일의 가치는 최근 많이 떨어지고 있다. 수백 시간 일하는 대신 비트코인과 주식을 하면 몇 초 안에도 떼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회인데, 돈벌이만으로의 노동에 의욕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일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던 이나모리는 이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일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에서 몇 단계는 개념을 격상 시켜 일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통해 그는 노동을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깊게 고민해보지 못한 이들에 비해 압도적인 동기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올곧게 갈고닦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인격의 깊이와 흔들리지 않는 존재감을 마주할 때마다 일하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지를 깨닫는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에게 일은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이었다. 어떠한 일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나 자신도 몰랐던 자아를 찾아내고 성장시킬 수 있다. 또 발전된 자아를 통해 일에 집중함으로써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깊이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선순환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나모리가 특정한 일이나 작업을 짚어 그 일만이 의미 있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어떠한 일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열정을 찾으라”는 말이 유행이 오늘날 매우 신선하게 들렸다.
반쯤은 억지로 맡아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마침내 적극적으로 몰두할 만큼 일이 좋아졌고, 더 나아가 좋고 싫고의 차원을 뛰어넘어 깊은 의의마저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천직’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멋있던가. 이나모리는 분명 수많은 경험과 고민을 통해 이런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근래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나에게 그가 말한 일의 필요성은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나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하나에 몰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는 와중에도 로스쿨 입시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그거로도 모자라 법무법인에서 일하였고, 또 그 와중에 비즈니스 관련 글을 쓰며, 작게나마 개인출판까지 했다.
내가 이렇게 병행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욕심이 많아서였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비가 덜된 것 같아 두려웠고,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하고 싶으면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법조인이 없어진다는 기사만 보면 나는 내 진로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또 코로나19로 빠르게 급변하는 세상과 시장을 보니 그에 관한한 공부를 안 하기에도 불안했다. 그러니 그 당시 나는 변호사 준비를 하면서도 세상 공부를 해야만 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앞으로 몰아칠 세상의 풍파를 멀리서부터 바라보고 두려워 온전히 하나에 힘을 집중하지 못했던 결과는 실패였다. 결과적으로는 어느 한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많은 것들을 한 번에 다 하냐며 내 열정을 칭찬해주고, 잠을 줄여서까지 모든 걸 병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남모를 자부심도 느꼈지만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기라도 한 듯, [4장. 노력을 지속하는가]에서 이나모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대응했던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나는 정반대의 방법을 택했다. 막연한 미래를 내다보고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현실만 보기로 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내 눈앞에 놓인 것 때문이 아닌가.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단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뿐 아니라, 오늘을 돌아보고 그 성찰을 토대로 내일은 반드시 ‘한가지 개선’, ‘한가지 궁리’를 더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그렇다. 미래는 어떻게든 변화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걱정한 방향이든 혹은 안 그런 방향으로든 말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딱 두 가지이다. 미래의 모습은 불확실하다는 점과,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멀리 불확실한 것만 보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우리 인간이 진화하면서 체득한 것이라고 하지 않든가.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은 훨씬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그리고 평온한 상태이기에 앞으로 나갈 용기가 생긴다.
나는 너무 멀리만 보고 두려움에 떨었기에 수많은 것들은 한 번에 병행했다. 그렇기에 최소한 나는 그 누구보다 이러한 방법에 한계가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눈앞에 주어진 일 단 하나에 온 힘을 집중해볼 용기가 생길 수 있었다.
마무리하며…
어찌 보면 이나모리가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들은 당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열심히 살자, 최선을 다하자, 완벽을 추구하자 등등… 일부 독자는 성공한 꼰대 할아버지의 잔소리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당연한 말만으로도 이렇게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적인 것들을 망각하고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을 보면 어느 동식물이든 온 힘을 다해 살아가지 않는 생명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편하고 쉬운 길을 찾는 데 열중한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우리 인간을 제외한 모든 자연의 생명은 생존, 그 자체만을 위해서만이라도 온 힘을 다 한다. 즉, 이는 이나모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다.
만약 아직까지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면 속는 셈 치고 이나모리의 철칙을 따라서 열심히 온 힘을 다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직전인 이 시기 “온 힘을 다하기”는 2022년을 위한 키워드로 뽑아본다면 후회가 적은 한 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